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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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충렬공 관련 역사 유적자료 소개

 

忠烈公 詩와 기타 시문들

 

1. 충렬공의 시

  1)東征過次福州登映湖樓吟詩(일본을 정벌하러 가는 도중 안동의 영호루에 올라 읊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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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루에 걸려있는 충렬공의 시 편액
 

 <원문 및 해석>

 

   (1)<국역 동문선>

山水無非舊眼靑 산수무비구안청 ---산과 물은 모두 옛 눈에 보던 푸르름인데

樓臺亦是少年情 누대역시소년정 ---누대도 또한 바로 소년때 정일러라

可憐故國遺風在 가련고국유풍재 ---기특하여라, 고국에는 옛 풍속 남아서

收拾絃歌慰我行 수습현가위아행 ---악기와 노래를 모두 거두어 모아 내 걸음을 뒤로하네

 

    (2)<우리의 명시>(동아출판사 펴냄, 1990)

山水無非舊眼靑 산수무비구안청 ---산수는 모두 예대로 푸르르고

樓臺亦是少年情 누대역시소년정 ---누대 또한 소년시절의 정경일세

可憐故國遺風在 가련고국유풍재 ---어여뻐라, 고향에는 옛 풍습 남아 있어

收拾絃歌慰我行 수습현가위아행 ---풍악을 울리면서 나의 길을 위로하네

 

   (3)<안동김씨 홈페이지 내> (영환(문) 해석)

山水無非舊眼淸 (산수무비구안청) 산과 물은 옛날 보던 맑음 그대로이고,

樓臺亦是少年情 (누대역시소년정) 누대 또한 어릴 때 정일러라.

可憐故國遺風在 (가련고국유풍재) 애틋하여라, 고국엔 옛 풍속 남아있어,

收拾絃歌慰我行 (수습현가위안행) 노래소리 모아서 내갈길 위로하네.

 

   (4)<안동김씨 홈페이지 내> (항용(제) 해석)

山水無非舊眼靑 산과 물은 옛모습 그대로 푸른 빛이 아닌 것이 없고

樓臺亦是少年情 소년시절 놀던 누각은 변함이 없구나

可憐故國遺風在 어여뻐라 고국에는 옛 풍속이 남아

收拾絃歌慰我行 아름다운 악기와 노래를 거두어 모아 이 마음 달래네

 

   (5) 안사연 종합 해석문 (2005. 3.)

  山水無非舊眼靑  산과 물은 옛날처럼 푸르고

  樓臺亦是少年情  누대 또한 젊은 날 정취 그대로도다

  可憐故國遺風在  가련하여라 고국에는 옛 풍속 남아

  收拾絃歌慰我行  악기와 노래로 내 가는 길 위로하네

 

2) 기타 자료

 

 (1) 도원수 김시중을 축수하는 소[都元帥金侍中祝壽疏] --석 복암 (2006. 7. 14. 태영(군) 제공)

 현관(玄關 불문에 들어가는 관문)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덕화는 감동이 있으면 반드시 통하게 되옵고, 주벌(朱閥 궁궐)의 아래에 복을 비는 정성은 지극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하물며 막측(莫測)한 땅을 정벌하려면, 미연의 우환을 먼저 막아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공손히 생각하니, ★현후(賢侯)께서는 성대에 태어나서, 일찍이 백여 차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두 왕대에 높은 벼슬을 역임하셨습니다. ♠중봉(中奉 중봉대부)과 ♠중찬(中贊)이 모두 높은 직위요, ♠상장(上將)과 ♠상상(上相)이 함께 귀한 자리입니다.

초변(貂弁)과 선관(蟬冠)은 덕망이 중하여서 백관들이 무릎걸음으로 공경을 표하고, 호부(虎符)와 귀인(龜印)은 위엄이 높아서 삼군(三軍)이 팔뚝을 떨면서 명령을 듣습니다.

이제 융거(戎車)를 몰아 왕궁 밖으로 나와서, 장차 훼복(卉服)(주D-001)들을 무찌르려고 1만 군사를 몰아 나감을 제갈공명이 촉(蜀)을 출발하는 듯하고, 1천 척의 배를 출동함은 왕준(王濬)(주D-002)이 오나라를 정벌하는 것보다 승합니다. 이러한 때에 부처님의 도움을 받게 되면 얼마 안 가서 개선(凱旋)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정묘한 공양을 장만하여, 특별한 법식을 차립니다. 이 정성스러운 마음이 부처님의 원명한 거울에 맞으시기 엎드려 원합니다. 운운. 한 돛이 바다를 잘 건너서 왜구(倭寇)들의 항복을 보게 되고, 일만 깃발이 무사히 돌아와서 순 임금 뜰에 첩서를 올리듯 하소서. 공명을 죽백(竹帛)(주D-003)에 길이 드리우고, 세월은 소나무와 참죽나무[椿]처럼 새로워지이다.

<동문선>

[주 D-001] 훼복(卉服) : 섬 오랑캐는 풀[卉]로 옷을 지어 입는다고 해서 일본(日本)을 훼복이라고 말한다.

[주 D-002] 왕준(王濬) : 중국 삼국시대 말기 진(晋) 나라 사람. 정동장군(征東將軍)으로 오 나라 서울을 함락시키고 오 나라 임금의 항복을 받았다.

[주 D-003] 죽백(竹帛) : 예전에 종이를 발명하지 못하였던 때에는 모든 기록을 대[竹] 가지나 비단[帛] 폭에 썼었다. 그래서 역사를 죽백이라고 말한다

 

  (2) 상락공의 옛터에서   (2006. 12. 31. 주회(안) 제공)

한국문집총간    강좌집(江左集) .江左先生文集卷之三  詩  上洛公遺墟。示同遊。  권만(權萬) 19세기

江左先生文集卷之三.  詩

上洛公遺墟 示同遊 /상락공의 옛터

 

異事煙霞夢裏餐 /꿈에 구름안개 머금고 임신했다는 기이한 일이 있으니

仙人天爲降東韓 /신선이 하늘에서 우리나라로 내려왔네

 

英雄壯烈留千古 /장렬한 영웅으로 천고에 이름을 남겼고

父子威名震百蠻 /부자의 위명이 오랑캐들을 떨게 했네

 

上洛臺空秋水遠 /상락대는 텅 비고 가을 물은 아득한데

小孤山在夕陽殘 /소고산엔 석양이 뉘엿뉘엿

 

憑君欲問豪華事 /그대에게 호화로웠던 옛일 묻고자 하니

去上村堦看牧丹 /촌으로 가는 계단 오르며 모란꽃만 바라보네

 

公母夫人夢餐烟霞而娠 巖間有上洛公牧丹黃而有蔓

공의 모부인이 꿈에 구름 안개를 먹고 임신을 했다. 바위 사이에 상락공이 심었다는 모란이 누렇게 덩굴만 있었다.

 

권만(權萬)

1688(숙종 14)∼?174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일보(一甫), 호는 강좌(江左). 아버지는 두굉(斗紘)이다.

1721년(경종 1)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5년(영조 1)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 정자로 재직시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장 유승현(柳升鉉)을 도와서 반역을 꾀한 무리들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46년 병조좌랑으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병조정랑이 되었다. 정조 때 창의의 공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강좌집》이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嶺南人物考, 國朝榜目. 〈金馹起〉

 

  <제공자의 해설>

 

ꁾ권만(權萬, 1688∼1749)이라는 사람이 同遊들과 상락공(김방경)의 옛 터에 들려서 上洛臺, 孤山, 上村, 巖. 上洛公牧丹을 구경하고 시를 지어 보인 것으로 보임.

 

영가지(1608년 간행) 에는 상락대 마암 돌 사이에 비채(부추)를 상락공이 심었다고 전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권만(1688∼1749)은 바위 사이 모란을 상락공이 심었다고 하고 있다.

 

 권만의 선계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으나, 송암 권호문(1532∼1587,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과 상락대와 고산정 여러차례 유람), 용만 권기(1546∼1624, 스승인 서애 유성룡의 명령에 따라 영가지 편찬)의 동향 일족인 듯.

 

아마도 상락공 섯째사위 권윤명의 후계가 아닌지. 이들도 처가, 외가 인연으로 회곡리 인근 계평리, 금계리에 정착한 것으로 볼수 있음.

 

 (3) 過上洛臺有感 (2008. 1. 1. 태영(군) 제공)

 

白日依山斜城樓 / 밝은 햇살 산에 걸려 성마루로 넘어가고

千里洛江入海流 / 천리의 낙동강은 바다로 흘러가네

孔明有桑子孫計 / 孔明은 뽕밭을 가꾸어 자손계책 하였으나

廉官菲菜退庭愁 / 청렴한 관리는 물러나서 菲菜를 가꾸었네.

 

將相勳業功可惜 / 출장입상 높은 훈업 공적도 아까워라

茶丘猛拷恨千秋 / 洪茶丘의 모진 고문 천추에 한이더라

削立馬巖百尺高 / 깍아지른 마암바위 百尺이나 높고

石臺澄潭將悠悠 / 돌대와 맑은 소는 천고에 유유하네

 

<註>

孔明- 諸葛亮의 字

菲菜- 忠烈公께서 가꾸신 채소

洪茶丘- 우리나라 사람으로 元나라에 아부하여 조국을 배반하고 忠烈公을 모함한 소인배.

 

檜谷村忠烈公先祖遺墟

永嘉府西古園林 / 永嘉고을 서쪽에는 우리조상 옛터인데

塵事空忙此日尋 / 세상사리 쫓기다가 오늘에사 찾았구나

村前小澗西流去 / 마을사이 작은시내 서쪽으로 흘러가고

澗畔孤山霜葉深 / 시내 뚝 孤山에는 단풍잎이 깊었구나

 

忠烈先亭名不知 / 忠烈公이 지은 정자 이름조차 알길없고

上洛遺墟靜漠吟 / 上洛臺 유허비만 고요하게 읊고있네

奕世冠冕吾家長 / 대대로 높은벼슬 우리집의 자랑이나

江山依舊空懷襟 / 강산은 옛과 같고 헛된 회포 뿐이더라

 

<註>

永嘉- 안동의 옛 이름

孤山- 忠烈公의 정자 자리

 

陵洞과 檜谷洞의 先祖님의 考妣位 享祀를 마치고 귀가길에...

大宗會 副會長 昌會賢宗 (都評議公派)

 

<출전>안동김씨대종회보 제71호 2001년 1월 15일자)

 

 (4) <퇴계선생속집>에서 (2008. 1. 4. 태영(군) 제공)

    출전 : 退溪先生續集卷之一(퇴계선생속집 권지일)

   유림학당 김국회(익) 번역

 

三月十六日。謁權判書江亭。亭在桂谷。上洛公金方慶舊游處。

  --3월 16일, 권판서를 강정에서 뵙다. 정자는 계곡(桂谷)에 있으니, 상락공 김방경이 예전에 노닐던 곳이다.--

 

小舟橫渡一江天。(소주횡도일강천) 작은 배로 강물을 가로질러

草屋中閒謁退賢。(초옥중간알퇴현) 초가집 가운데 물러나신 현인을 뵈었네.

上洛巖前千丈水。(상락암전천장수) 상락암(상락공 노닐던 바위) 앞 천 길 못을

從今喚作判書淵。(종금환작판서연) 이제부터는 판서연(권판서 노닐던 연못)이라 부르리.

 

 (5) <목재선생문집>에서  (2008. 1. 4. 태영(군 ) 제공)

출전 : 木齋先生文集卷之七(목재 선생문집 권지칠)

유림학당(김국회)번역

勿溪書院祔金鶴沙時 告上洛公文(물계서원(勿溪書院)에 김학사(金鶴沙)를 합부(合祔)할 때 상락공(上洛公)께 고하는 제문)

人仰盛德。無間古今。(인앙성덕  무간고금)  사람들이 거룩한 덕을 우러름은 예나 이제나 한 가지라

維鶴沙公。寓慕偏深。(유학사공  우모편심)  아, 학사공은 사모함이 더욱 깊습니다.

同堂腏食。爰協衆心。(동당철식  원협중심)  사당에 철식을 함께하옵나니 뭇 마음을 어루만지소서

恭伸虔告。冀垂顧歆。(공신건고  기수고흠) 삼가 경건히 고하옵나니 흠향하시기를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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