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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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충렬공 관련 역사 유적자료 소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김방경(金方慶) 기록 (2003. 4. 11. 윤만(문) 태영(군) 제공)

 

(1)김윤만(문) 제공 자료

▣ 제2권 p408<마전군 사묘(祠廟)>

--숭의전(崇義殿) : 군 서쪽 5리에 있는데, 본조 태조 원년에 예조(禮曹)에 명하여 마전현에 사당을 짓고, 고려 태조(太祖)·혜종(惠宗)·성종(成宗)·현종(顯宗)·문종(文宗)·원종(元宗)·충렬왕(忠烈王) 및 공민왕(恭愍王)을 제사하게 하고 제전(祭田)을 주었다. 세종(世宗) 7년이 되어 유사(有司)들이 말하기를, “나라의 종묘(宗廟)에도 다만 오실(五室)을 제사하는데, 전조(前朝)의 사당은 팔위(八位)를 제사하니, 예에 맞지 않는다 하므로, 태조·현종·문종·원종만 남겨 놓고, 봄·가을 이중삭(二仲朔)으로 향축(香祝)을 보내어 제사했다. 문종 2년에 고려의 후손(後孫) 왕순례(王循禮)를 찾아서 그 제사를 맡아 지내게 하고, 그 사당 이름을 숭의전이라 하여 왕순례를 부사(副使)로 삼았다. 복지겸(卜智謙)·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유금필(庾금弼)·배현경(裵玄慶)·서희(徐熙)·강감찬(姜邯贊)·윤관(尹瓘)·김부식(金富軾)·김취려(金就礪)·조충(趙冲)·김방경(金方慶)·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김득배(金得培)·정몽주(鄭夢周) 등을 배향했다.

 

▣ 제2권 p410<마전군 배향>

--김방경(金方慶) : 자는 본연(本然)인데 안동 사람이다. 벼슬은 삼중대광 첨의중찬 상락공(三重大匡 僉議中贊 上洛公)에 치사하였으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 제3권 p426<안동대도호부 인물 고려>

--김방경(金方慶) : 효인(孝印)의 아들이다. 처음에 방경의 어머니가 임신하였을 때에 꿈에 구름과 노을을 먹었다. 일찍이 사람에게 말하기를, “구름 기운이 아직도 나의 입과 코에 있다. 아기는 반드시 신선 가운데서 왔을 것이다.” 하였다. 출생한 뒤에는 조금만 성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시가(市街)의 큰 길에 누어서 울었는데 소와 말이 피해가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었다. 고종조(高宗朝)에 처음으로 벼슬하였는데 진도(珍島)·탐라(耽羅)·일본(日本)을 정벌하여 다 전공(戰功)이 있었다. 벼슬이 첨의중찬(僉議中贊)에 이르렀다. 사람됨이 충직(忠直)하고 믿음성이 있으며 관후(寬厚)하여 작은 절차에 구애하지 않았다. 전고(典故)를 많이 알았으며, 자신을 근검(勤儉)하게 다루었다. 늙어서도 머리털이 희어지지 않았으며 추위나 더위에도 병드는 일이 없었다. 비록 치사(致仕)하고 한가하게 살 때일지라도 나라를 근심하는 것을 자기집 일과같이 하였다. 나라에 큰 의논이 있으면 임금이 반드시 그에게 자문(諮問)하였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 제3권 p435<안동대도호부 제영>

--산수무비구안청(山水無非舊眼靑) 고려 김방경(金方慶)의 시에, “산과 물은 어느 것이아 예대로 있어 반가워라. 누대(樓臺) 또한 소년 시절에 보던 것처럼 다정하구나 슬프다, 고국의 끼친 풍속으로서 남아있는, 거문고와 노래소리를 수습(收拾)하여 나의 길가는 심정을 위로하노라. 하였다.

 

▣ 제3권 p578<밀양도호부 고적>

--수산제(守山堤) : 수산현에 있는데, 둘레가 20리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고려의 김방경(金方慶)이 이 둑을 쌓아서 밭에 물대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군량(軍糧)을 갖추었다.” 한다. 못 가운데에 죽도(竹島)가 있는데, 세모마름·연·마름·귀리가 보이는 끝까지 가득하다. 세종 때에 물길을 트고 수문(水門)을 설치하여 나라의 둔전(屯田)으로 하였다가, 뒤에 봉선사(奉先寺)에 내려 주었다. 성종 때 다시 나라 둔전이 되었다.

 

▣ 제4권 p64<상주목 불우(佛宇)>

--승장사(勝長寺) : 장천(長川) 부곡(部曲)에 있다. ○김상직(金尙直)의 중창기(重創記)에 말하기를, “고려 충렬왕이 중국 조정의 명령을 받아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을 명하여 동으로 왜구(倭寇)를 정벌하는데 왕이 김해부(金海府)에 거동하여 전송하고 거가(車駕)가 돌아올 때에 이 절에 유숙하고 드디어 천태종(天台宗)에 붙이었다. 하였다.

 

▣ 제4권 p341<창원도호부 산천(山川)>

--합포(合浦) : 부 서쪽 10리 지점에 있다. 고려 원종 15년 봄 정월에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일본을 정벌하고자 하여 합포현을 정동행성(征東行省)으로 삼고, 홍다구(洪茶丘)에게 조서하여, 김방경(金方慶) 등과 함께 합포에서 전함 건조하는 것을 감독하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방경 등이 원나라 도원수(都元帥) 홀돈(忽敦), 부원수 홍다구, 유복형(劉復亨) 등과 함께, 몽고 장병 2만 5천과, 우리 군사 8천, 뱃사공·수군인도수(水軍引導手) 6천 7백, 전함 9백여 채로써 일본을 정벌하였다. 일기도(一岐島)에 갔으나 왜병에게 패(敗)하고, 복형은 난데 없는 화살에 맞아 죽어서, 드디어 합포로 환군(還軍)하였다. 7년만에 황제가 또 흔도(忻都)·다구에게 방경 등과 함께 다시 일본을 정벌토록 명하였고, 임금이 친히 합포에 와서 열병(閱兵)하였다. 황제가 또 범문호(范文虎)에게 만병(蠻兵) 10만을 거느리고 강남(江南)에서 출발하게 하였다.

 

▣ 제6권 p453-p454 정주목 산천(山川)>

--위도(葦島) : 주의 동쪽 50리에 있다. ○고려 고종 때 김방경(金方慶)이 서북면병마판관(西北面兵馬判官)이 되었는데 몽고병이 여러 성을 공격해 오니, 위도로 들어가 은신하는데 그 곳이 10여리나 되었다. 평평하고 넓어 경작할 만한데 바다의 조수가 밀려 경작할 수 없어 걱정이었다. 이에 방경은 둑을 쌓고 파종하여 백성들이 처음은 고생하였으나 가을철 곡식이 익자 사람들이 믿고 활발하였다. 섬에 또 우물과 샘이 없어 항상 육지에 가서 물을 긷는데 가끔 잡혀 포로가 되자, 방경은 빗물을 모아 못을 만들어 물 걱정도 없어졌다. 고종 14년에 섬에 누렁 뱀이 있는데 크기가 주혈(柱穴)만 한데, 가산(椵山)에 초동(樵童)이 있어 지나면 부르는 소리가 나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어 가 보면 뱀이었다. 그런데 사람처럼 말하기를, “이 섬 사람들이 멀지 않아 난을 일으킬 것이니, 돌아가 감창(監倉)에게 알려 절대로 근신하게 하라.” 하였다. 감창사는 이상하였지만 비밀로 하였는데 주(州)의 사람들이 몽고에 투항하였다.

 

▣ 제6권 p474 가산군 인물 고려>

--한희유(韓希愈) : 이 고을 아전이며, 본관은 평주(平州)다. 말타고 활쏘기에 능하고 담략(膽略)이 있었다. 김방경(金方慶)을 따라서 진도(珍島)·탐라(耽羅)·일본(日本)을 토벌해서 모두 공이 있었다. 뒤에 원나라 설도우(薛闍于)와 함께 연기(燕岐)에서 합단(哈丹)을 깨치니 원나라 황제가 포상하여 회원대장군(懷遠大將軍)을 제수하고 삼주 호부 궁시 옥대(三珠 虎符 弓矢 玉帶) 등을 하사했다. 벼슬이 중찬(中贊)에 이르고 시호는 장렬(壯烈)이다.

 

<출전 : 신증동국여지승람/민족문화추진회/1982>

 

(2)김태영(군) 제공 자료

 

 신증동국여지승람37권 진도군

 

고적 용장성(龍藏城) : 지금의 치소 동쪽 25리에 있다.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3만 8천 7백 41자, 높이가 5자다. 고려 원종 때에 삼별초가 모반하여 강화부(江華府)로부터 들어와 이 섬에 자리잡고 궁전(宮殿)을 크게 지었으나 김방경(金方慶)이 그것을 쳐서 평정하였는데, 이것이 그 옛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38권 제주목

 

 산천 고려 원종(元宗) 11년에 삼별초가 진도로부터 탐라에 들어와서 내외성을 쌓고 험함을 믿고 더욱 창궐하였다. 김방경(金方慶)이 몽고 흔도(忻都)와 더불어 추자도에 머물러 바람을 기다리는데, 밤중에 바람이 급하여 지향할 곳을 알지 못하였더니, 새벽에 보니 이미 탐라에 가까워졌는데 바람과 큰 파도가 세차서 오도가도 못하였다. 방경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국가가 편안하고 위태함이 이 한 번 싸움에 달렸는데, 오늘의 일은 나에게 있지 않은가." 하니, 조금 뒤에 풍랑이 그쳐 마침내 진격하여 크게 물리쳤다. 탐라 사람들이 그 공을 생각하여 후풍도(候風島)라고 이름하였다.

 

고적 항파두고성(缸波頭古城) : 주 서쪽 10리에 있다. 성 안에 샘이 있어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고려 원종 12년에 김방경(金方慶)을 보내어 삼별초를 진도에서 토벌하여 물리칠 때, 김통정(金通精)이 삼별초를 거느리고 와서 귀일촌(貴日村) 항파두리에 웅거하고 이성을 쌓아서 막았다. 방경의 무리가 나아가 쳐서 함락시키고, 천호 윤방종(尹邦賨)을 시켜 원 나라 군사 4백 명과 관군 1천 명을 거느리고 머물러 지키게 하고 돌아왔다.

 

 고성 항파두고성(缸波頭古城) : 서쪽으로 20리에 있으며 가운데 커다란 샘물이 있다. 삼별초가 이 성을 근거지로 삼고 항거하니, 김방경(金方慶)이 공격하여 정벌하였는데, 원(元) 나라 병사 4백 명과 더불어 진에서 1천여 일 동안 머물다가 돌아갔다. 고장성(古長城) : 바다에 연하여 둥그렇게 쌓였으며 길이는 모두 3백여 리이다. 삼별초의 반란군이 근거지로 삼았으며 왕이 파견한 시랑 고여림(高汝霖) 등이 진도에서 이곳으로 와서 탐라의 반란군 1천여 명에 대비하여 긴 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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