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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 내의 자료 (2003. 8. 29. 태서(익) 제공)
2월중찬(中贊)김방경을 국문하여 대청도(大靑島)에 귀양보냈다. 홍다구가 우리 나라와 과거부터 감정이 나빠서 틈을 타서 문제를 일으키려 했는데, 방경의 사건을 듣고 중서성(中書省)에서 와서 직접 국문하기를 청하고, 흔도(?都)도 위득유(韋得儒)의 말을 원나라에 알렸다. 원주(元主)는 왕과 공주에게 함께 심문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리하여 왕은 흔도ㆍ다구와 함께 흥국사(興國寺)에 모여서 다시 방경 부자를 국문하였다. 다구는 쇠사슬로 그의 머리를 감고 못질을 할 것처럼 하며, 매질하는 자에게 그 머리를 치라고 소리쳤다. 종일 알몸으로 서서 추운 날씨에 살이 얼어서 먹장빛처럼 되었다. 왕은 다구에게, “지난번에 흔도와 함께 국문을 끝냈으니 다시 물을 필요가 있는가?” 하였으나 다구는 듣지 않았다. 방경은, “우리 나라가 상국을 하늘처럼 받들고 부모처럼 사랑하는 터이니 어찌 하늘을 거역하고 부모를 배반해가며 스스로 멸망하려 들겠느냐? 나는 억울하게 죽을지언정 거짓말로 굴복하지는 못하겠다.” 하였다. 다구는 꼭 허위자백을 받으려 하여 지독한 고문을 실시하니, 몸에는 성한 살이 한군데도 없었고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고는 하였다. 다구는 비밀리에 왕의 측근을 꾀기를, “방경이 죄를 자백한다면 죄가 유배하는 데에 그칠 것이니, 당신네 나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 하였다. 왕은 그 말을 믿고 또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방경에게, “그대로 인정하라.” 하니 방경은,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신이 군졸 출신으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이몸이 짓이겨 없어질지라도 국가에 보답하기에 부족합니다. 어떻게 저의 몸을 아껴서 허위로 자백하여 나라를 저버리겠습니까?” 하고, 바로 다구에게, “나를 죽이려거든 바로 죽여라. 나는 정의에 어긋나는 일로 너에게 굴복하지는 않겠다.” 하였다. 다구는 이에 ‘방경이 집에 무기를 간직했다.’는 것을 죄로 삼아서 대청도(大靑島)장연현(長淵縣) 남쪽 30리에 있다 에, 흔(?)은 백령도(白翎島)에 유배시키고, 다른 사람은 모두 석방하였다. 방경이 유배의 길을 떠나는데 나라 사람들은 길을 막고 울면서 전송하였다. 다구는 왕에게 청하여, 위득유(韋得儒)를 상장군, 노진의(盧進義)를 장군으로 삼았다
○ 우사의 대부(右司議大夫)정가신(鄭可臣)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분희(李汾禧) 형제가 다구에게 붙어서 김방경의 죄를 얽어매는 것을 보고, 가신은 그들과 같이 벼슬자리에 있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여 돌아가서 어머니를 봉양하겠다고 청하여 나주(羅州)로 돌아가려 하므로 왕은 그를 위로하며 보냈다가 얼마 후에 곧 불러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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