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崇禎 乙亥 仁祖 13年(西紀 1635年)에 遺墟碑가 失石된 것을 비로소 發見하였다는 記錄으로 미루어보아 훨씬 그 以前에 세워진 것으로 確信할 수 있으나 그 年代와 場所는 유감스럽게도 文獻에 記錄이 泯滅되어 未詳이다.
2. 肅宗 43年 丁酉(西紀 1717年)에 官으로부터 竪碑할 곳을 選定하였다.(以自官打量竪碑)
3. 崇禎紀元 138年 乙酉 英祖 41年(西紀 1765年) 3月 日에 官에서 건너편 案山에 다시 碑를 세웠다. 碑 前面글씨는 大山 李象靖先生이 쓰다.(遺墟碑 規格은 높이 165cm, 가로 넓이 65cm, 두께 28cm)
4. 嘉慶 19年 純祖 14년 甲戌(西紀 1814年)에 移建成造都監에 前宣傳 永淳, 助役에 重玉 聲鶴, 鳩財에 鳳翼 等 後孫들이 合力하여 건너편 案山으로부터 忠烈公께서 平素에 所居하시던 草堂遺墟壬坐인 바로 이곳에 移建, 西紀 1814년 5月 25日 未時에 立柱하고 同月 28日 卯時에 上樑하다.(都木手는 前郞廳 權亨中) 건너편 案山밭에는 前에 유허비가 있던 座臺石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옛 모습을 방불케
하고 있다. 현재 이곳의 유허비 거북좌대는 移建當時에 造成된 것으로 보인다.(거북 座臺의 規格은 높이 40cm, 길이 145cm, 가로넓이 125cm)
5. 舊 碑閣은 近 二百年의 오랜 歲月이 經過하는 동안 自然 老朽頹落하여 後孫된 者들로서 恒常 悚懼한 感을 禁치 못하여 오던 바 今般 安東金氏大宗會 總會에서 다시 重建할 것을 滿場一致 可決하고 西紀 1985年 7月 20日에 舊 碑閣을 撤去하고 다시 이곳에 擴張重建, 西紀 1985年 7月 26日 15時에 立柱하고 同月 27日 12時에 上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