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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신. 중시조 방경(方慶)의 손자, 판서공 선의 아들. 영창군(永昌君)에 봉해지고, 1342년(충혜왕 복위3) 조적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어 전(田) 70결과 노비 5구를 받았다. 1352년(공민왕1) 8월 이제현(李齊賢)·한종유(韓宗愈)등과 서연관(書筵官)이 되고, 입시해서 시독(侍讀)할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이어 10월에는 찬성사(贊成事)가 되었으며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치사(致仕)했다. 시호는 양간(良簡)이다. 묘소는 실전이며 단소는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오가리 금수정 내에 있다. 시제는 음력 10월 1일이다.
<단소>
1. 각종 자료 소개
1)<良簡公 諱 承澤 設壇墓碑文> (2001. 8. 10. 영환(문) 제공) 부군의 관은 안동이요,호는 大菴, 諱는 承澤이니,고려국 직량동덕좌리공신 삼중대광 금자광록대부 중서시랑평장사 도첨의정승 永昌君 致仕하고 諡는 良簡이시다. 고조는 상서상 우복야공 휘 敏成이요 증조는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금자광록대부 중서령 병부상서공 한림학사 휘 孝印이며, 조는 선충협모 정난정국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상락군개국공 첨의령중찬 諡 忠烈公 諱 方慶이고,祖비는 냉평국부인 竹州朴씨이니라. 서기 1580년 宣祖朝에 충렬공을 吾門 안동김씨의 世祖로 創譜하였으니,考 2세는 전법판서 상장군 휘 선이요, 비는 순창군부인 순창설씨이다. 三世 長은 대호군 도첨의사사 제조공 휘 資인 바 공의 증손인 밀직부사 휘 精에 이르러 내서사인 재당숙 휘 齊顔과 더불어 申頓 謀朱死에 괴로역살되니 오안동김씨 종가 종손은 탈보되어 수안김씨로 이적하고 휘제안공의 후손계는 사천김씨로 각각 분관하니라. 三世 仲은 보문관대제학 시충숙공 휘 승용인 바 기후손은 판밀직사사공 휘 칠우, 성윤공 휘 칠림, 군사공 휘 칠양, 공조전서공 휘 성목, 밀직부사공 휘 천순으로 각각 분파하고 次가 오파계조 양간공 휘 승택이며, 季가 상서공 휘 승우계인 바 장손 현감 휘 윤계는 청주 김씨로 분적하고 차손이 대호군공 휘 유계로 분파하니라. 오조 양간공의 배위는 시 충선공 휘 흔 지녀이니 낭랑국부인 경주 김씨요, 그 조는 추밀원 부사공 휘 경손이요, 증조는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 시 문장공 휘 태서이니라. 양간공께서는 충렬왕 대에서부터 충정왕까지 고려 6대왕 100년간의 원몽지속하의 조정이 남으로는 왜구의 침입을 방어해야하고, 북으로는 배원정책과 舊疆회복에 진력하여야 하는 국가 수난기 중의 재상이시었다. 고려 전통 유가에 태어나신 유신으로서 서기 1342년 6월에는 종형제인 상락부원군 시 문숙공 휘 영돈과 복창부원군 시 정간공 휘 영순 그리고 계림부원군 이제현 제공등과 더불어 적신 조적의 구난을 평정하여 이등공신에 훈봉되고, 서기 1352년 충혜왕 8월에는 이제현, 한희유, 안진, 백문보, 정간공 영순 등 제공과 함께 서연을 열어 경일시덕함에 원로대신들과 논차로 입시하야 경사법원을 증강하시었다. 부군께서는 천품이 엄의관후하시고, 자혜애인 하시었으며 박학호문 경청경지하고 법도계리 강유상제 하시었는지라 백성이 권세가의 수탈당한 전답 노비와 적년의 송사와 면체한 옥사등은 공평히 양찰하여 국정을 치적하신 명정승이라 쓴 고려사 세가 제38을 써 옮겨준다. 10월에 첨의찬성사의 승서되시고, 공민왕 7년 서기 1358년 7월 태백성이 3개월이나 나타났을 때 서거하시니, 양간공의 후손에는 고려와 조선의 문과 52인 무과 4인이 배출되어 혁혁명문임을 과시하고 있다. 부군의 장자는 숭정대부 중서시랑평장사 상낙군 휘 昴요, 차자는 안렴사공 휘 冕이니, 차계는 도평의사사 소경공 휘 九鼎계로 분파하였다. 오호라! 양간공 승하가 630여년이라. 원래 유택이 개성부 선흥사 북서동이었으나 창상이 이변하고 병난이 중첩되어 후손이 선조의 체혼을 실전한 지 오래였었다. 이에 늦게나마 촌마두인의 정성으로 이 곳 취백림 금수단에 설단하고 궐향 점황의 옷깃을 여미며, 국궁 혜배 하오리니 이 어찌 오문의 일대 경행이 아니리요. 언간에 본역 삼위지설단 추진사업에 포천의 별제공 후손 종중의 협찬이 지대하였음을 치사하면서 제종의 위임을 받아 졸문이나마 불사음기로서 찬하노라.
서기 1990년 3월 양간공 22세손 재승 근찬. 양간공 22세손 재홍 근서.
2. 기타 관련 자료 모음 (2005. 1. 11. 주회(안) 제공)
■ 고려사
1341년(충혜왕복위2) 6월 조적의 난으로 왕이 원도(元都)에 갔을 때 간신들이 변란을 꾸몄으나, 삼사우사로서 왕을 시종한 공으로 정승 채하중, 상락(上洛)부원군 김영돈(金永旽), 김영후(金永煦), 언양군 김륜(金倫), 김해군 이제현, 성산군 이조년, 첨의평리 한종유 등은 1등 공신으로 봉해져 벽상에 그들의 화상을 그리게 하고 그 부모와 처는 세 등급을 올려 작위를 주고 아들 한 명에게 7품직을 제수받고, 아들이 없으면 조카나 생질에게 대신 줄 것이며 사위는 8품 직을 주고 토지 1백 결(結)과 노비 10명을 받았다.
또한 영창군(永昌君) 김승택(金承澤) 등은 2등 공신으로 정하며 부모와 처는 세 등급을 올려 작위를 주고 아들 한 명에게 8품 직을 제수받고, 아들이 없으면 그 대신 사위에게 9품 직을 제수하고 토지 70결과 노비 5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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