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충갑(金忠甲)1515(중종10)∼1575(선조8)--(제)

(목록 제목을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1. 구암공 소개

 2. 주요 사진 소개

 3. 구암문집 소개

 4. 구암연보

 5. 친필 서찰 및 시문 소개

 6. 신도비명 소개

 7. 출생지 답사

 8. 각종 문헌 자료 종합

 

본문

p11.png 1. 구암공 소개 1515(중종10)∼1575(선조8)

자(字)는 서초(恕初), 호(號)는 구암(龜岩)·오죽산인(悟竹山人). 제학공(휘 익달)의 후손으로 영상공 김석(金錫)의 5자(세칭 五甲) 중 장자이다.

 

공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아우 제갑과 더불어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퇴계 선생에게서 수업을 받았다.  

1543년(중종38)에 생원, 진사과에 합격하고 1546年(明宗 1) 별시 文科에 급제하여 持坪, 獻納, 北平事를 거쳤다. 乙巳士禍 때는 서울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1547년(명종2)에 削職되고, 서청주(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병천면 가전리 앞)에 21년간 유배되었다가 宣祖初에 放還되었다.그 후 安岳郡守가 되었으며 妖僧普雨를 벌할 것을 누차 上疏한 바 있다.  후에 子 時敏의 공훈으로 輔祚功臣 左贊成 上洛君에 추증되었다. 墓는 고양(高陽)에서 1973년에 충북 중원군 살미면 무릉동으로 이안했다가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77년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충민사 뒤로 遷封하였다. 그 후 2006년 4월 능촌리 개향산 합동 묘역으로 이안했다.

 

1824년(순조24) 병천면 가전리 백전의 <충렬사>에 주벽으로 모셔졌다가 대원군때 훼철되었으며 그 초석만이 남아 있다. 문집으로 <龜巖集>(구암집)이 전한다. 시제는 음력 10월 1일 괴산 능촌리 제각에서 합동 봉행한다. 여러 역사적 사실이 <乙巳錄>과 <鑄字洞誌>에 실려 있다.

 

첫 배위 증 정경부인 광주김씨(1517-1544)는 장자 부평공(휘 시회)를 낳고 28세로 일찍 졸하였고 후에 공 묘소에 합폄되었으며, 1547년 공이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근동(병천면 잣밭)에 있는 계 배위 증 정경부인 창평이씨(참봉 李成春의 무남녀)와 혼인하였다. 창평이씨 묘소는 천안시 병천면 잣밭 안산인 도정산 묘좌이다. 이로하여 이곳 백전에 공의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b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