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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행사 자료 소개
6) 탄신기념 학생백일장대회 대상 작품 소개 (2003. 12. 21. 윤만(문) 제공)
<대상작품> 제목 : 천안의 자존심 충무공 김시민 장군 (2학년 9반 김 도 영)
앞으로도 영원히 빛을 발할 도시 '천안' 나는 지금 꿈과 희망을 가진 도시 천안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천안에서 나의 고장 천안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 발전의 밑거름이 되 주신 한 분을 떠올리게 된다. 그 분은 바로 임진왜란의 영웅,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다. 천안과 충무공 김시민 장군과는 하늘의 뜻으로 맺어진 인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김시민 장군은 1554년 8월 27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백전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후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25년 동안 천안에서 기거하며 심신을 수련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올곧고, 우유부단하지 않으며 청렴한 성격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또 이런 성격을 발판 삼아 1578년에는 무과급제를 하였고 1591년에는 진주판관으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올곧은 성격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일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훈련원주부 시절 군기가 해이하자 병조판서를 찾아가 군기보수와 훈련강화를 건의하였던 일이다. 그의 이 건의는 번번히 묵살되었으나 끝까지 굽히지 않고 건의하다가 결국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없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사실 조선시대를 생각해보면 신분제가 있어서 모두가 관직을 얻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던 시절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벼슬까지도 박차고 낙향하던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볼 때 그의 대나무와 같은 곧은 성품을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나는 김시민 장군의 이러한 올곧은 성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올곧은 성품을 지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러한 인품과 성격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따르고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592년 선조 25년, 드디어 김시민 장군이 그동안 쌓아왔던 무예와 지혜가 그 진가를 발휘하는 진주성 전투가 일어났다. 이 전투는 객관적으로 절대 승리할 수 없는 듯했다.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3800여명이었고, 왜군은 3만 여명이었다. 수적으로 볼 때 패배가 뻔한 전투였다. 그러나 김시민 장군은 뛰어난 전략과 전술로써 총력 대항하였고, 그 결과 적 2만여 명을 사상시키는 아주 잊혀질 수 없는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실로 엄청난 일이다. 10배에 가까운 많은 수의 적을 통쾌하게 무찌르다니... 김시민 장군이 무예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겸비한 장군이었음을 이 전투를 통해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이 전투가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인정되고 있고 기려지고 있는 것이리라. 전쟁에 미리 대비하는 철저한 준비 자세, 전쟁에 임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지혜 등 이 전투에 임하는 김시민 장군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시민 장군처럼 내 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그 일이 닥쳤을 때 지혜와 기지를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주성 전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장군은 아쉽게도 왜병의 총탄으로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하지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처럼 김시민 장군의 이름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되고 가려지고 있다. 이런 훌륭한 장군이 천안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뿌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장군의 이러한 업적으로 있었기에 이 고장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절로 감탄스럽다. 그런데 이러한 장군의 위대한 일들에 대해 사실 나는 잘 몰랐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김시민 장군에 대해 인터넷, 서적, 팜플렛 등을 찾아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이 천안에 살고 있는 나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 한번 돌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김시민 장군이 업적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못한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김시민 장군이 출생지인 천안에서 부끄럽게도 사당 훼철 이후 130여 년 동안이나 탄신기념이나 행사 등 어떠한 추모행사도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라를 위해 장렬히 목숨을 바친 장군의 출생지에 추모사당 하나 없다니... 이것은 우리들의 관심과 애정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사당 건립을 비롯한 김시민 장군을 기리는 많은 행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 행사를 통해 장군의 진면목을 보고 나 스스로 나라 사랑정신을 되새겼듯이, 나의 친구들과 후배들 그리고 천안의 많은 사람들이 장군을 알고 장군을 통해 나라 사랑정신을 일깨울 수 있도록 많은 기념행사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부터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의 역사를 돌아보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 바친 조상들의 노력과 애국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본받을 만한 인품을 적극적으로 본받아 나라 사랑을 실천해 가야겠다. 그리고 조상님들이 우리에게 힘쓰신 것처럼 더욱 더 열심히 나라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김시민 장군의 인품과 업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보다 더욱더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김시민 장군이 고려 충렬공 김방경 나의 시조로써 나와 같은 안동 김씨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만난 김시민 장군처럼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를 위해 무언가 힘이 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그리고 김시민 장군처럼 떳떳하게 나의 이름을 떨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며 글을 마친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김시민 장군의 인품과 업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보다 더욱더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김시민 장군이 고려 충렬공 김방경 나의 시조로써 나와 같은 안동 김씨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만난 김시민 장군처럼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를 위해 무언가 힘이 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그리고 김시민 장군처럼 떳떳하게 나의 이름을 떨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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