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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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김시민(金時敏)

p05.png 4. 주요 행사 자료 소개

7) 충무공 김시민 장군 탄신 450주년 기념 및 유허비 건립 기념 행사  (2004. 9. 25. 항용(제) 제공)

 

2004년 9월 23일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안양으로 향했다. 인덕원 사거리역에서는 아침도 굶고 나와 계신 상석대부님과 약속시간 08:30분에 만났다.

출근길 정체의 1번지로 손꼽히는 인덕원 사거리의 진풍경을 보며 남으로 달린다. 이 길도 만만치 않다. 그런 가운데 멀리 증평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 종손인 효식씨와, 부평공(휘 시회)의 후손이시며 한학자이셨던 상형대부님의 아드님이신 명렬대부님으로부터 광주에서의 출발 전화를 받는다. 북수원을 거쳐 한참만에야 신갈 안산간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힘겹게 경부 고속도로에 올랐다. 그런데 이곳도 지체다.

 

어렵게 수원을 지나오자 좀 길이 트인다. 열심히 달려간다. 남쪽 하늘이 어둡다. 괜한 걱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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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가전리로 가는 입구의 행사 현수막>

 

10:15분 행사 현장에 도착해 보니 벌써 많은 분들이 운집해 계신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대종회 김태인 회장님, 창규 전 문영공파종회장님, 학응문영공파회장님, 남응 김시민 기념사업회 고문님, 재택 안렴사공파회장님, 영묵 제학공파회장님, 관묵 대종회 사무총장님, 청주와 괴산에서 오신 종친 여러분, 기념사업회 허용기 회장님 등 여러분께 인사 올리느라 바쁘다.

 

행사장은 천막이 쳐져 있고 앞쪽 단상 뒤로 충무공 영정을 모시고 제례상이 차려져 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천안 문화원 실내악단 10여 명의 식전 연주가 은은하게 울리고 있었다. 식장분위기 더없이 그윽하고 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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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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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 모인 분들-창규님, 태인회장님, 재택님,허회장님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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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뒤의 영정 및 제례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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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문화원 실내악단의 연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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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응 고문님과 각종 화환들>

 

10:30분 정각, 식이 시작되었다. 개회선언, 국민의례, 순국선열과 선조님에 대한 묵념, 내빈소개가 있었고 이어 감사패 및 공로패 증정이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내가 충무공 김시민장군 책자 발간의 공으로 감사패를 받는 영광이 있었다. 뜻밖이었고 과분했다. 나는 그저 이해준교수와 문중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나의 몫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대종회 김태인회장님께서는 허용기 기념사업회 회장에게 감사패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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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패 시상-좌로부터 출판사 대표님, 김경수 경운대교수님, 김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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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회장님께서 허용기 회장에게 감사패 전달 장면>

 

이어 천안시 지역 초 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백일장 대회의 시상을 하였는데 대상에 천안시의 미라초등학교의 유혜민양(시 부문), 천성중학교 방석호군(수필 부문)이 차지했다. 뒤 이어 유혜민양으로부터 대상 시인 <진주성의 함성>이 낭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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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상자>

 

다음, 경운대 김경수교수로부터 <김시민>책자 발간 경위 보고가 있었고, 김시민장군께 올리는 책자 봉헌식이 있었다. 이어 허회장의 기념사, 천안부시장의 축사, 충남교육위원회 의장의 축사에 이어 우리 김태인 대종회장님의 격려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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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회장님의 격려사>

 

다음, 연단 바로 뒤에 마련된 제례상 앞에서 제례가 있었는데 초헌관에 천안부시장, 아헌관에 허회장, 종헌관에 김태인 회장님이 헌작하였다. 그리고 남응 종친님께서는 우리글로 지은 축문을 독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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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관들의 헌작 장면>

 

다음 김태민 운영위원(유허비 건립 추진 소위 간사. 안렴사공파, 천안 거주)으로부터 유허비 건립 경과 보고가 있었다. 비석(240*84*54)은 충남 보령산으로 매우 좋은 석질인데 660만원짜리이다. 용관석(110*75*60-168만원), 기념비(133*67*127-140만원), 좌대(185*3단 2개-340만원), 경계석 및 기초공사(600*600원-400만원), 장비대(250만원) 등 총 1,958만원이 소요되었다는 보고이다. 비석은 천안문화원장이신 민병달원장님이 찬하시고, 글은 우리 안동김씨 문중의 최대 書者이신 정의공파의 김태국(호-碧樵)님께서 書하셨다. 기념사업회로부터 비문의 서자는 꼭 우리 문중인으로 해달라는 요청에 의해 문중 전체의 공모를 받아 선택된 분이시다. 님의 헌신적인 작업에 감사드린다.

 

이어 유허비 제막식이 이어졌다. 운영위원 및 문중대표 여러분들이 참여했고 많은 종친 및 참여자들은 힘찬 박수로 이 순간을 기념했다. 제막식후에 허회장은 비문 찬자(撰者)와 서자(書者) 소개가 있었고 서자(書者)이신 태국(泰國)종친님은 인사말을 겸해 서체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했다.

 

 "비문의 글씨는 호태왕(광개토대왕)비의 서체를 인용한것으로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의식 고취의 뜻도 담겨 있습니다.  작품제작은 구도기간이 1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그리고 글씨 쓰기는 세벽 3시에 시작하여 약 10시간 정도 소요 되었습니다. 약 4번-5번의 재 제작과정을 가졌습니다. 서체의 특징은 본연의 절(折)을 강조하는 데에 힘썼습니다. 한글과 병서이기에 몇 번 실패하였습니다. 작품을 완성하는 날엔 충무공의 영혼이 내 몸에 실린듯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한번에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저에게 영광을 주신 선조님들의 영혼(靈魂)과 항용 조카님의 덕이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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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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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종친님의 서자 해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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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 후 종친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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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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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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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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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비 옆의 구암 바위와 사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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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태옥(제학공파 총무), 남응, 민병달(천안 문화원장), 항용>

 

다음 모든 참배인들은 한 송이씩의 국화꽃을 유허비에 헌화하는 것으로 님의 얼과 공을 되새겼다. 이어 안동김씨 종친 여러분의 기념촬영과 운영위원 전체의 기념촬영이 있었다. 특히 이 날은 충무공의 종손인 효식(孝植)종친이 참여하여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었으며 앞으로 모든 충무공행사에 종손 효식씨를 더욱 앞세우기로 허회장과 문중인들은 약속하였다.

 

간단한 다과회를 끝으로 공식일정이 끝나자 상석대부님과 창규아저씨, 태국님과 함께 병천시내의 유명한 순대국집에서 행사 주관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점심 식사를 하였다. 다시 일행은 행사 현장에 와서 몇가지 사진을 찍자었다. 그런데 남응대부님은 옷을 벗고 일하는 이도 없이 혼자서 행사 후의 뒷마무리  잔일을 하고 계신다. 늘 존경하고는 있지만 님의 열성에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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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항용, 창규, 남응, 상석>

 

다시 남응대부님을 모시고 갈 곳이 있었다. 지난 봄에 병천의 창규아저씨와 남응대부님께서 창의적으로 만드신 병천묘원을 보기 위해서다. 전통 매장문화와 화장 납골문화를 종합한 최현대식 묘원이다. 행사장 뒤 작은 골목을 따라 충무공 탄생 집터 앞을 지나면 마을 뒤로 넉넉히 감싸 안은 야산이 나온다. 승지공(휘 壽亨) 묘소 아래로 조성된 묘원은 엄청난 대역사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충무공(휘 時敏)의 아우이신 교관공(휘 時進)의 후손, 시정공(寺正公-휘 絪)으로부터 그 후 8대손까지 모두 147위의 묘소를 한데 모은 곳이다. 웅장했다. 400여 평의 야산에 17개의 봉분은 최현대식 둘레석과 상석 표석 등으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었다. 한 봉분마다 7-8위를 모셨는데 약 7000여 만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이 작은 면적에 147위를 모실 수 있다니, 대부님의 창의력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졌다.

 

모든 선조님께 배례를 하고 맞은편 산으로 이동했다. 작년에 세운 도정교를 건너 도정사(桃汀祠)로 간다.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작은산이 백계수(栢溪水)를 마시려고 강가에 엎드려 있다. 산 아래의 도정사 옆에는 문숙공(휘 永暾) 상락백공(휘 縝), 제학공(휘 益達) 설단이 있고, 사간공(휘 顧), 감찰공(휘 孟廉), 주부공(휘 哲鈞), 승지공(휘 壽亨), 참판공(휘 彦默)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산 위에는 창평이씨 할머님과 교관공(휘 時進)의 묘소가 있다. 약 400여 년의 우리 문중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도정강사는 구암공(휘 忠甲)께서 유배와 사시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는 곳이다. 곳곳에 배례하고 선조님들의 유향(遺香)을 느끼며 이곳 저곳을 오간다.

 

이제 상석대부님, 태국종친님과 함께 안양으로 향했다. 상석대부님이 계시는 안양의 기계 종합상가로 갔다. 엄청난 규모에 놀랬다. 상석대부님이 운영하시는 상가 앞으로 가니 상석대부님 누님과 아우가 배드민턴을 치고 계시다. 차를 이곳에 두고 인덕원 사거리로 가서 인근의 횟집으로 간다. 한참이나 이어지는 벽초(碧樵) 종친님의 서예 이야기를 듣고 자리를 일어선다. 벌써 밤이 이슥하다. 집으로 향하는 오늘 하루는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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