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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종합
12) KBS 1 TV 방송 내용 소개 (2002. 8. 13. 정중(도) 제공) * 방송일시 : 2002년 8월 10일 (토) 20:00-21:00 KBS 1TV VCR 3> 명과 후금사이의 실리외교 그리고 자강책
-철원 표충사로 줌인 13" (보다가) -강원도 철원..이곳에 포충사라는 이름의 사당이 하나 세워져있다.
-사당앞의 PD와 3" (보고) -사당내부 4" -사당에 모셔져있는 인물은 조선시대 -영정줌인 10" 무장으로 대명지원군의 부장이었던 김응하..광해군은 김응하를 추모하기위한 사당을 전국 곳곳에 짓는다.
* 후손인터뷰 (3 4153...인터뷰를 살릴지말지..좀 더 생각해봐야할 듯...) 김장군은 1618년..광해군 10년에 명나라의 요청에 의해서 강홍립원수의 휘하장군으로 3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명나라에 가서 천군과 싸우다 40세의 일기로 장렬히 전사...
-비석앞의 두사람 7" -김응하는 후금군사와 싸우다 전사한 장군이다.
-비석 타이트 팬 10" -광해군때 세워졌다는 이 비석엔 김응하의 전투과정을 자세히 새겨놓았는데 -비석 읽는 틸다운 7" 당시 적이었던 후금의 군사들조차 경의를 표할정도로 그 모습이 비장했다고 한다.
* 비석 읽는 후손 목소리...손만 나온다. 버드나무밑에서 검하고 활이 다 하니까 검을 들고 싸우다가 노기가 충천해서
-표충사내부 14" -그런데 광해군은 김응하의 사당을함경북도 종성과 경원등...중국사신이 다니는 길목에 세우라고 명한다. -광해군에겐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걸까..?
-충렬록 책 넘기면 유상과 그림들 13" -뿐만아니라 광해군은 김응하를 추모하는 책까지 펴내는데...충렬록이란 이 책엔 김응하의 전투모습이 그려져있고.. -충렬록안의 시 11" 당시 조정대신들이 쓴 김응하 추모시도 실려있다..
-김응하 전투 모습 16" -명나라와의 전쟁을 피하려고했던 광해군이 이렇게 대명지원군으로 활약하다가 죽은 김응하를 대대적으로 추모한 이유는 무엇일까?
* 한명기 인터뷰 강대국과 약소국사이 외교에서 약소국은 사술을 펼수도 있다. 사술은 사기...명이란 대륙국가 후금이란 당시로선 오랑캐국가 이 사이에서 조선이 생존을 도모하려면 외교밖에 없다. 그래서 충렬록...사당 지은 건 조선의 투항이 의도된거라는 명의 의심을 제거하기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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