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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종합
13) 충무공 전설 (2002. 7. 9. 윤만(문) 제공) 철원군지(하)/철원군지증보편찬위원회/1992. ▣ 김응하장군 전설. pp1489~1505. ○ 김응하장군의 情話(정화)
-- 김응하장군이 급제하기 전 24세 때의 일이다. 그는 이 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사냥을 나가서 철퇴로 한 마리의 곰과 이어 표범 한 마리를 잡고 난 후였다. -- 곰에서 웅담을 꺼내고 표범 가죽을 벗겨 짐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무꾼을 만났다. “여보 젊은 양반, 이 고개를 넘어가면 무서운 땡초 소굴이 있소. 그놈들은 먼저 사람을 죽여놓고 나서 물건을 빼앗는 잔인한 놈들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십시오.”하고 일러 주었다. -- 나무꾼이 땡초라 하는 무리는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들이 산중에 모여 사찰 등을 점령하고 僧(승)인 척 속여 낮이면 동냥을 다니고 밤이면 도적질을 하는 불한당의 무리라고 말해 주었다. -- 이 말을 들은 응하는 속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었으나 나뭇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짐을 짊어지고 고개 아래 마을에 들어섰다. -- 날이 저물어 응하는 이 마을의 조촐한 기와집 문전에 다가서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였다. 주인은 근심에 찬 얼굴로, “오늘밤 우리 집에 도둑떼가 오게 되어 있소. 만일 낯선 사람의 눈에 띄었다가 당장 참화를 당하게 될 것이니 아예 다른 집으로 가 보시오.”하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도둑떼가 온다구요? 그것 참 잘 되었습니다. 내가 막아 드릴 터이니 저녁밥이나 두둑히 먹여주시오.”하고 청했다.그러나 주인은 “공연히 젊은 목숨을 귀신도 모르게 잃지 말고 일찌감치 피할 도리나 생각하시오.”하고 응하의 힘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 이 말을 듣고 난 응하는 짐에서 표범 가죽과 웅담을 꺼내 이것을 모두 자기가 때려 잡았다고 보여 주었으나 이것 역시 믿으려 하지 않았다. 슬그머니 화가 난 그는 마당가에 있는 반 아름이나 되는 배나무를 두 손으로 거머쥐고 용을 쓰자 배나무는 뿌리채 뽑혀졌고 옆에 있는 바위를 후려갈기니 배나무가 두 동강으로 부러졌다. -- 이 광경을 본 주인은 응하가 천하장사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랑방으로 맞아들여 상좌에 앉히고 주안을 대접하고 자기 집안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자기는 원래 경기도 가평 사람으로서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난왔다가 눌러 살게 되었다는 것과 자기에게 조카딸이 있다고 들려 주었다. -- 조카딸은 서울 재상 집안의 금지옥엽같은 귀여운 딸로서 병중이라 요양하기 위해 얼마전부터 자기 집에 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산골에서는 보기드문 절색이라 소문은 곧 산너머에 있는 땡초 떼의 두옥, 마달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달은 그녀를 자기의 셋째 첩으로 달라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한달 전에 조카딸이 데리고 온 몸종을 거짓 조카딸로 꾸며 마달에게 시집을 보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마달은 그 눈치를 채고 바로 오늘 밤 진짜 신부를 곱게 단장시켜 신방을 차려 놓고 기다리지 않으면 집안식구를 모두 죽여서 분을 풀겠다고 잔해 왔다는 것이다. 조카딸은 도적 괴수에게 몸을 더럽히기 보다는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몇 번이나 자결하려는 것을 죽더라도 신방에 들어가서 도적에게 얼굴이라도 보이고 죽어야 집안에 책망이 돌아오지 않겠으니 제발 다른 식구들의목숨을 위해서 신방에 들어가라고 타일러 조카딸을 신방으로 들여 보내놓고 지금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일장 설화를 듣고난 응하는 치밀어 오르는 의분을 감출 길이 없어 자기가 대신 신부 노릇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술을 반동이나 마시고 나서 신부방에 들어가 웃통을 벗고 불을 끄고는 깔아놓은 비단 이불에 누웠다. -- 이윽고 대문 밖에서 떠들썩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안있어 쿵하며 마루에 올라서는 소리가 났다. 마달이 온 것이다. 마달은 방에 들어서자 응하를 신부인 줄 알고 달려들었다. 응하의 쇠뭉치 같은 손이 마달의 멱살을 잡고 주먹이 올라갔다. “어이쿠! 이년이 사람 잡는다.!”하며 마달은 젖먹던 힘을 다하여 몸을 빼려 하였으나 어느 틈에 도적의 배를 타고 앉은 응하는 돌덩이 같은 주먹으로 북치듯이함부로 마달을 들이쳤다. -- 응하는 몸을 일으키며 닥치는 대로 패거리를 때려 뉘니 마당에는 열 댓명이나 되는 땡초가 즐비하게 쓰러졌고, 마달은 틈을 타서 슬그머니 도망해 버렸다. -- 이에 응하는 신방에 불을 켜 놓고 주인이 차려 온 술과 고기를 양껏 먹은 후 부드러운 비단 이불속에서 하루를 편안히 지냈다. -- 응하는 날이 새자 주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러자 주인은 펄펄뛰며 응하를 붙드는 것이었다. “괴수 마달은 도망하였고 십여명의 졸개가 혹은 죽고 병 신이 되었으니 그 놈들이 기필코 원수를 갚으러 올 터인데 만일 임자가 떠난다면 우리 집은 아주 쑥밭이 되고 말 것이 아니오. 그러니 어떻게 하든지 우리 집 식구룰 살려주고 떠나야겠오.”하며 떼를 쓰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이러고 보니 박절하게 잡아뗄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우선 주인을 안심시켜 놓은 응하는 그날 밤으로 도적의 소굴인 화엄사를 들이쳐서 잡혀간 몸종도 찾아오고 또 그 절의 본 주인이었던 스님들도 구해 주기로 작정을 했다. -- 그날 밤 늦으막하게 응하는 철퇴를 차고 뒷 산을 넘어 화엄사에 도착하니 때는 거의 자정이었다. 마달은 마침 집 주인 조카딸의 몸종을 끼고 있었고 다른 패거리도 여자를 끼고 자고 있었다. 응하는 호통을 치면서 철퇴를 휘두르며 도적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러 방에 흩어져서 자고 있던 땡초들은 제각기 낫과 도끼와 창과 몽둥이를 들고 쫒아나와서 응하를 여러겹으로 에워쌌다. 보통사람이었다면창끝에 가슴팍이 파 산적처럼 꿰어졌을 것이지만 상대방이 천하장사 김응하인지라 펄쩍 뛰어 몸을 반공중으로 속구쳤다가 내려오면서 발길로 두놈을 냅다 차니 쿵하고 마당가운데로 나가 떨어지면서 그대로 뻗어 바렸다. 이 광경을 본 땡초들은 그만 겁에 질려 달려들지 못했다. 응하는 단숨에 여러 도적들을 때려 뉘었다.
-- 도적의 소굴을 단신으로 소탕한 응하는 절에 불을 지르고 땡초 두목의 방으로 가서 몸종을 업고 마을로 내려 왔다. 응하는 몸종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 이튿날 일찍 주인에게 하직을 고했다. -- 그러자 주인은 응하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인도하여 그를 융숭히 대접하면서 비로소 자기의 내력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 자기의 성은 본시 한씨로 일찍이 과거를 하여 양주군수를 지냈고 조카딸은 인목대비의 부친되는 영흥부원군 김계남(옮긴이 주 : 김제남의 오기 임)의 손녀로서 광해군이 간신 이이첨, 정인홍 등의 참소를 듣고 김해부원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후 다시 그 집안 남녀노소를 모두 잡아 죽이기도 하고 혹은 관비로 만드는 바람에 겨우 몸을 피한 조카딸은 다만 몸종 하나만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도망해 오게되었다는 것과 죄인들의 몸이라 드러내 놓고 상당한 가문에 시집가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마침 응하의 용맹을 보니 멀지 않아 국가에 큰 공을 세워 이름을 조야에 떨칠 만한 사람일 뿐 아니라 또 이번에 조카딸을 위험에서 구해 주었으니 이 역시 인연이라 아주 오늘로 작수 성례를 한 후 고향으로 데려가 달라는 것이었다.
-- 이 말을 들은 응하는 자기의 처지와 형편을 이야기하며 굳이 사양하였으나 주인은 끝내 듣지 않고 그날로 비밀히 성례를 시킨 후 응하를 신방으로 몰아 넣어 버렸다. -- 신방에 들어간 그는 눈을 들어 단정이 앉은 신부를 살펴보았다. 비록 열 여섯 살이라고 하지만 의젓하고 단아하여 에법있는 양반의 규수가 분명할 뿐 아니라 용모 또한 아름다웠다. -- 응하는 기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신부의 손을 잡고 “색시는 서울 재상집에서 금지옥엽같이 자라난 귀한 몸이요, 나는 시골의 미천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인데, 오늘 이와 같이 부부의 연분을 맺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맞지 않을 것 같소.”하고 털어 놓았다. 그러자 규수는 “만사가 다 하늘이 정한 인연이 아닙니까? 하물며 도적에게 죽게 된 몸을 구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오면 일생을 두고 갚을지라도다 갚지 못할까 하옵니다.”하고 대답했다. 응하는 현재로서는 변변치 못한 자기를 낭군으로 섬기려는 그녀가 고맙기 이를데 없었다. 신방을 한씨 집에서 보낸 응하는 나흘째 되던 날 신부와 몸종을 데리고 형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웅담과 호피를 판 돈으로 따로 집 세칸을 장만하여 동생까지 네식구가 단란한 신접살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나이 열 한살 때 임진왜란을 만나 여덟살난 동생을 등에 업고 산중으로 피신하여 3년 동안이나 초근목피로 연명을 한 응하 소년은 왜병이 물러가자 고향인 철원에 돌아와 사촌형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한다. 이때 응하 소년의 생활 수단은 사냥이었다. 힘이 남달리 센 응하 소년은 나중에 그의 힘을 겨냥케 하는 설화를 남기었다. 위의 전설은 그의 힘을 짐작케하고 그의사람됨을 더듬게하는 결혼에 얽힌 전설이다.
○ 將軍(장군)버들. -- 청나라에 가는 우리 사신들 가운데 무인들은 일부러 요동 심하로 먼 길을 돌아 부차령을 넘는 것을 하나의 무도로 알았다. 그 잿마루에는 장군버들이라고 불리우는 큰 나무가 있었다. -- 이 거목앞에 엎드려 장군의 넋을 초헌하면 그 장군의 용맹이 제 몸에 옮겨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장군버들가지를 몸에 지닌 무인들은 훈장을 가진 것보다 명예로운 것으로 알았으며 또 선망을 받았다. 여행길에 장군버들을 꺾어 바치면 무인에게는 더 없는 선물이 되었다. 그래서 여행길에 나서는 장군들은 일부러 먼 길을 돌면서 부차령을 넘어 그곳에 있는 장군버들을 꺾어 몸에 지니고 갔다. -- 이와 같이 용맹의 샘이 된 장군버들이 지닌 축력의 주인공이 바로 김응하장군. 부차령에서 6만명의 적병에게 포위된 김응하장군은 그 버드나무를 방패로 버티고 서서 단신으로 공전을 하였다. 이때 김철현이라는 통인만이 몸집이 거대한 장군의 투구속에 숨어서 화살을 집어 주었고 장군은 일시삼살의 활 쏨씨로 꼭 일주야를 버티었다. -- 이러는 동안 그 버드나무의 주변은 시체가 성처럼 쌓였다. 장군은 화살이 다 떨어지자 쫒아오는 적과 칼로 싸우고 칼이 부러지자 자루만으로 싸웠다. 장군은 칼자루만 남은 칼로 싸우다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전사한 그의 몸에는 10여개의 창과 수십개의 화살이 꽂혔다고 한다.
※ 김응하장군(1580년~1619년)은 철원군 어운면 하갈리 출신의 명장. 키가 8척에 힘이 세어 장사로 알려졌다. 1604년 무과에 급제, 1619년(광해군 11년) 건주위를 치기 위한 싸움에서 군사 3천명을 거느리고 6만명의 적군과 고군분투하다 전사했다. 조정에서는 영의정에 추증. 1620년 명나라 신종에 의해 요동백에 추증됐다.
○ 金應瑕將軍(김응하장군)의 龍馬(용마).
-- 김응하(1580년~1619년)는 조선조 광해군 때의 무장이며, 자는 경희, 시호는 충무이며 철원군 어운면 하갈리 출신이다. 키는 8척에 힘은 세어 장사로 알려졌다. -- 1604년 25세 때 무과에 급제, 경원판관을 거쳐 삼수군수를 지냈다. 1618년 건주위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명나라는 조선에 군사를 청하였다. 이 때 도원수 강홍립의 부장으로 1619년(광해군 11년) 건주위를 치기 위해 군사 3천명을 거느리고 적군 8만(? 6만)을 물리쳤다. 그러나 태풍에 군사를 잃고 적에게 포위되어 버드나무 밑에서 용전 분투하다가 전사하였다. 그리하여 류하장군이란 칭호가 붙었으며1620년 (광해군 12년) 명나라 신종황제가 요동백을 봉하고 처자에게 백금을 내려 주었으며 조정에서는 영의정을 추증했다. 여기에 소개하는 전설은 김응하장군이 아직 무과에 급제하기 이전의 일이다. 고향인 하갈리에서 매일같이 무예를 연마하고 있던 어느날, 장군은 그가 타던 말의 용맹을 시험하기로 했다. 장군은 자기가 아끼는 말에게 이르기를 “이제 내가 쏜 화살이 땅에 떨러지기 전에 먼저 그곳에 달려가 입으로 화살을 받아라. 만일 받지 못하면 너를 한 칼로 쳐 죽일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장군은 말을 탄 뒤 활의 시위를 힘있게 당기고 말을 몰았다. 말이 뛰다가 멈춘 곳은 칠만암 바위였다. 장군이 말 위에서 보니 말은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날아오지 않고 있었다. 장군은 화살이 먼저 날아가버린 줄 알고 노한 나머지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 「너같이 느린 말은 나에게 필요없다」고 외치면서 말의 목을 쳤다.
-- 그러나 목 잘린 말이 바위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돌아서려는 순간 화살이 말의 궁둥이에 꽂혔다. 세차게 달려와 바위위에 섰던 말굽자리에는 슬프게 죽어간 발자국만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한다.
※ 김응하장군의 용마와 칠만암과 같은 전설 내용은 장수가 태어나면 용마가 난다는 동양 전설의 정석과 맥을 같이 한다. 김응하장군의 용마가 먼저 죽게되므로 용마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주인공의 인생도 끝나는 것으로 이 전설의 특색은 불교사상의 결과로 동물 애호사상의 일면을 보여 주는데 의의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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