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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종합
20) 농암집(김창협 문집) 속의 충무공 기록 (2006. 1. 9. 태영(군) 제공)
김장군(金將軍) 사당
白日松杉閉古祠。한낮에도 옛 사당 솔숲 속에 닫혔는데 靈風颯爽閃旌旗。신령스런 바람 불어 깃발이 나부끼네 至今人說深河戰。지금까지 세간에 심하 전투 전하는데 是處吾看宋老碑。송로(송시열)께서 쓰신 비문 이곳에서 접해보네
其二(두 번째) 漢虜相望列百營。중화와 오랑캐의 대군 서로 대치할 제 東韓壯士死分明。동한 장사 충성 바쳐 장렬히 죽었다네 千秋莫問黃沙骨。사막에 묻힌 백골 천추에 묻지 마오 萬國同懸白日名。충신 이름 만국이 태양처럼 떠받드네
其三(세 번째) 柳樹悲風戰後多。버드나무 슬픈 바람 전투 뒤에 거세지니 魂隨復矢度關河。복 부르는 화살 따라 국경 건너 혼이 왔나 祈連虛起嫖姚冢。기련 본떠 표요 무덤 부질없이 쌓았거니 壟上長悲壯士歌。장사 용맹 기리는 농상가(曨上歌) 구슬프리
其四(네 번째) 長身通臂引雕弧。헌칠한 키 긴 팔로 활을 힘껏 잡아당겨 匹馬陰山獨射胡。필마 타고 음산에서 오랑캐를 쏘았다네 安得丹靑寫酣戰。어이하면 격전 모습 그림으로 그려내되 傍邊更著二降奴。적에게 투항한 두 놈까지 드러낼꼬(강홍립.김경서)
其五(다섯 번째) 怒髮衝兜齒嚼齦。노한 머리 곧추서고 부득부득 이 갈면서 龍泉在握死猶嗔。용천검을 잡은 채로 죽어서도 성난 모습 睢陽厲鬼知何似。수양성에 떠도는 원귀의 맘 어떠할까 痛恨神州尙虜塵。통탄일레 중국 천지 아직까지 오랑캐 땅
其六(여섯 번째) 崔瑩曾聞起鐵城。내 들으니 최영도 철원에서 났다는데 將軍後出更崢嶸。장군은 뒤에 나서 한층 더 뛰어났네 千秋靑史看功罪。먼 후대 역사에서 공과 죄를 살필지니 莫把英雄一例評。영웅은 한가지로 평가하지 말지어다.
瑩與將軍。皆鐵原人。而適當明運始終之際。有犯順效義之異。故云。 최영과 김응하장군은 모두 철원 사람이다. 두 사람이 활동했던 시기는 마침 명(明)나라의 국운이 시작되는 시기와 끝나는 시기로 한쪽은 순리를 거스르고 한쪽은 의리를 실천했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김장군(金將軍)사당: 좌영장(左營將) 김응하(金應河)의 위패를 모신 철원(鐵原)의 포충사(褒忠祠)이다. 1683년(숙종9)에 묘정비(廟庭碑)와 함께 세워 졌는데, 한국 전쟁 당시 불타서 없어졌다. 비문(碑文)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박태유(朴泰維)가 썼으며, 비신 위쪽의 전서체 글씨는 작자의 아버지 김수항이 썼다. 김응하의 자는 경희(景羲),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철원에서 출생하였다. 1618년(광해군10) 명 나라가 요동을 침범한 건주위(建州衛)의 후금(後金)을 칠 때 조선에 원병을 청하였다. 이때 김응하는 부원수 김경서(金景瑞)의 휘하에 좌영장으로 있다가 이듬해 2월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후금 정벌에 나갔는데, 명 나라 군사가 대패하자 3천명의 휘하 군사로 수만 명의 후금군을 맞아 고군분투하다가 전사하였다. 명 신종(明神宗)은 그를 요동백(遼東伯)에 봉하였으며 조선에서도 1620년(광해군12)에 영의정을 추증 하였다. <龍州集 卷19 贈領議政金將軍神道碑銘>
출전: 농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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