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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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김응하(金應河)

p05.png 17. 안사연의 김응하 김응해 장군 묘소 및 포충사 참배기

(2004. 11. 16. 주회(안) 기록, 발용(군) 사진 촬영. 항용(제) 편집 제공). 김응하 장군 관련 내용만 발췌하여 편집함)

산행 개요

일시 : 2004.11.14 07:00~22:00

장소 : 철원 명성산과 민통선 내 김응하, 김응해 장군 묘역

참석 : 영윤, 상석, 윤만, 발용, 주회, 태우, 항용,

       계만(문온공파 감사), 재은(81세, 전 부사공파종회장)

 

(*명성산 산행 내용은 생략함.)

<김응하 장군 묘역>

 

다시 주차장에 도착. 재은 님과 긴급 연락, 재은 님은 지금 응해장군 묘역에 있다고, 우연한 방문에 반가움 가득. 철원군청으로 오란다.

철원군청 앞마당에 한복 노인장. 전 부사공파 파종회장 재은 님(81세).

 

김화 고석정 방향으로 가면서 -갈말읍사무소 지나고 -윗삼성리 지나면서 좌회전-양지 내대 방향으로 가면서-소재지 지나고 한참을 가서 검문소 앞에서 좌회전-지나는 좌우로 군부대 막사가 가득하고-군 작전지역에 진입하는 스릴 약간 긴장감 약간-또 한참을 가다가 검문소 도착-이곳에서부터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이다.

 

김응하 김응해 장군 묘역은 민통선 안에 있다. 재은 님의 출입신청으로 어렵게 통과 (헌병 1명 동승)

민통선 안으로 진입. 인적 드물고 한적한, 약간은 스산하게 내려앉은 시골풍경, 멀리 낮은 구릉을 타고 앉은 묘역이 눈에 들어온다.

빛바랜 사진으로 수없이 보아왔던 곳 김응해 장군의 묘역이다.

 

(김응해 장군 관련 내용 생략)

 

이곳에서 1km남짓 떨어진 곳 동편에 구릉을 제법 경사지게 타고 앉은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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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공 김응하 장군 묘역

 

입구에는 웅장한 김응하(1580~1619) 장군 신도비가 안내하고 있다.

웅장한 좌대와 비신, 역시 총탄자국 가득하고 趙絅(1586-1669) 찬, 李裕承(1835-?) 서, 趙熙一(1869대사성) 전, 대한광무3년(1899) 기해 11월 鄭基會(1829-?) 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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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공 김응하 장군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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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김응하장군 묘역 하의 하마석

 

묘역 상단에는 김응하 장군 묘소. 요동의 벌판에서 모셔온 초혼과 의관으로 쓴 묘. 묘소가 왜소하다. 무인의 대명사 충무공의 묘역에 무인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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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공 김응하장군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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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줄 묘역 좌측에 大孝 金應洛 묘와 묘비 아주 조그만 묘소이다.

응하,응락,응해 3형제는 임진왜란때 14살, 12살, 6살이었다고.

부모님(金地四)이 위독하시자 둘째 응락은 당시 12살임에도 단지하여 요절. 이어 하루 이틀 간격으로 부모 또한 돌아가시어 3초상이 났다고. 응락 묘비는 2001년 재은 립

 

그 오른쪽은 3형제의 부모이신 金地四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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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김응하 장군 부모님(휘 地四)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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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地四) 묘비

 

재은 님의 선조 소개가 이어진다. 부사공(휘 천순)께서는 여조에 밀직부사이었으나 여선교체시 벼슬을 버리고 은둔하였고 손자 大來는 결성면(현 충남 홍성)에서 학덕이 높아 세종이 집현전을 확충할 때 박팽년에 의해 천거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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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孝 金應洛 묘와 묘비, 충무공 휘 응하의 아우

 

세째줄 묘역에는 金益鍊(김응하 장군 1자)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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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공 김응하장군의 외아들 金益鍊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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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맨 아래 입구에는 金應河 장군 신도비 동행한 헌병은 교대시간이 지났다고 재촉하고 아쉬움을 잔뜩 안은채 민통선을 빠져 나온다.

 

막 저녁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철원들판를 왼편으로 끼고 돌다 산자락 아래 구릉 위에 넉넉하게 올라 앉은 포충사에 도착. 김응하 장군 혈손규면님(011-9185-7001)의 안내로 경내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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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철원읍내에 거주하시며 포충사 총무를 맡고 있다고 한다. 경내에 들어서자 거대한 귀부 위에 올라 앉은 김응하 장군 묘정비(廟庭碑)가 시야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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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송시열 찬, 박태유 서, 김수항 전하여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2km떨어진 민통선 내에 있었으나 6.25 전쟁중에 포충사와 (?충렬록) 판목은 소실되고 묘정비만이 노지에 쓸쓸하였다고 한다.

1974년 이세호 장군이 3군사령부 영내에 옮겼으며 1984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한다.

좌대 220*280

거북받침 233*370*높이 125

비신 97*33*높이 215

비갓 161*100*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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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받침은 너무나 웅장하고 우람하여 예사롭지 않다.

명 황제 신종이 요동백으로 봉할 때 내려준 것은 아닌지?

 

묘정비 우측에는 새로 세운 포충사사적비가 깨끗하다.

2003. 9. 6일 김지율 근찬으로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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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라선 사당 안에는 김응하 장군 영정. 일동 모두 숙연한 비장감으로 참례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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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은 흑백영정을 기준으로 채색하여 그린 것이다. 김응하 초상 眞影은? (조중구 소장, 민족문화대백과사전 4권 8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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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천지위로 매년 3월 초나흗날 제례를 올리고 유림에서도 별도로 춘추계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포충사 마당에 섰다. 저 아래로 구릉따라 내려가는 철원들판, 철원읍내는 이제 어둠이 내려 앉아 귀가시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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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처럼 둘러선 포충사 뒷산 (?)천왕산, 앞쪽 우측으로는 저멀리 철원들판을 감싸며 하늘로 치솟은 금학산, 이곳 읍내와 양지 마을 일원에 우리 일가 수백호가 세거하여 왔으나 현재 40여호(?20여호) 만이 세거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종일 동행하면서 안내해 주신 계만님과 이곳 포충사 총무 규면 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초겨울 저녁 어둠 속에 잠이 드는 철원들판을 뒤로하고 귀경길에 오른다.

 

긴장감과 설레임과 흥분 속에 보낸 하루, 피곤이 몰려온다. 추위에 떨어서 그런지 피곤이 스르르 몰려오는 듯 쿠울 쿠~~~ㄹ.  (발용 형님 죄송. 우리만 쿨쿨해서) 의정부역에서 인천 가시는 재은 님을 배웅하고 우리는 단골집 하남의 선지 해장국집으로 달려간다. 언 몸을 녹이고 속을 다스리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뻐근하게 뿌듯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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