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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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김응하(金應河)

p05.png 16. 어린이 해동 명장전

              (2004. 11. 13. 발용(군) 제공)

명나라에 이름을 떨친 김응하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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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명장 김방경의 후손인 김응하는, 이조 제14대 선조13년, 그러니까 서기 1580년에 철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응하는 14세 어린나이에 부모를 모두 여의었습니다. 그에게는 김응해라는 아우가 있었는데, 형제간의 우애가 얼마나 두터운지, 온 마을 사람들이 칭찬하였습니다. 김응하는 자라면서, 키도 남보다 크고 기운도 뛰어나게 세졌습니다. 또한 풍채가 늠름하여,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 같았습니다. 게다가 얼굴까지 잘 생겨서, 김응하가 지나가면 모두가 김응하를 쳐다보며 수군거렸습니다.

 

“정말 멋진 사나이야. 응하는 틀림없이 영웅이 될 거야.”

“맞아, 저 늠름한 풍채라니!”

김응하는 술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김응하는 앉은 자리에서 두세 말의 술을 다 마시고도 거뜬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시는 김응하지만, 김응하가 술에 취해 쓰러진다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느 25세 때에 무과에 급제했는데,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좋아하던 술을 딱 끊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이항복이 김응하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항복은 김응하의 뛰어난 인물 됨됨이에 감탄하여 김응하를 경원 판관으로 추천하였습니다.  김응하가 경원 판관으로서 나라를 위해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선천 군수 겸 조방장으로 높아졌습니다.

 

선천 군수가 된 김응하는, 재주 있는 사람들을 뽑아, 그 재주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또한, 효성이 지극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고, 의리 있는 사람들을 알아내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직접 그 사람들과 만나 사귀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김응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지키는 사람을 칭찬하고, 각자 가지고 있는 재주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입니다. 고을 백성들은 모두가 김응하를 칭찬하고 따랐습니다.

 

“그분은 목숨을 바쳐서 섬기고 싶은 분이야!”

“우리 고을은 정말 운이 좋았네. 이런 원님을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김응하는, 오랑캐 땅에서 건너온 아주 날래고 사나운 명마 한 마리를 구해서 타고 다녔는데, 그 말 만큼이나 김응하도 동작이 빨랐습니다. 얼마나 빨랐느냐 하면, 말을 타고 달리면서 투구와 활전대. 동개(활과 화살을 넣는 도구)를 하늘로 던진 다음, 땅으로 뛰어내려 그것들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다시 집어가지고 말에 올라탈 정도였습니다.

 

싸움터로 나가다

7년 동안이나 지속된 임진왜란 때문에, 우리나라는 명나라와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명나라가 많은 군사를 우리나라에 보내어 함께 왜적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만주땅 흥경이라는 곳에서 청나라가 일어나, 차츰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아직 ‘청’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후금’이라고 했지만, 이미 그 때 청나라는 만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명나라의 동부 지방까지 공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명나라는 청나라와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명나라는, 우리 나라에 원조를 청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신세를 진 우리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이 명나라에 원군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는 힘차게 뻗어 나가는 나라였습니다.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반면, 명나라는 힘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런 명나라와 우리나라가 힘을 합한들, 이길 가망은 없었습니다.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고, 김경서를 부장으로, 김응하를 좌영장으로 삼아, 군사 1만 3천명을 명나라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임금이었던 광해군은 세 장수를 불러, 다음과 같은 은밀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장군들이 명나라를 돕기 위해 출전 하기는 하지만, 청나라를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요. 이기면 다행이지만, 뜻과는 달리 명나라가 지게 되면, 빨리 청나라에 항복하여 그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하시오.”그만큼 명나라의 힘은 쇠약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김응하가 좌영장으로 전장에 나가려하자, 그의 아우 김응해가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형님만 위험한 곳에 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형님을 따라가 형님과 생사를 함께하겠습니다.” 김응하는 사랑하는 아우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다, 타이르듯 말했습니다.“아니다. 우리 두 형제가 함께 죽을 수는 없다. 너는 집에 남아서, 내 대신 집안 일을 돌보도록 해라.”김응하는 아우를 달래고 가족들과 작별한 후, 군수의 직인을 잘 싸 봉인하여 아전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이번 전투에 나가면 죽을 것이다. 그래서 직인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니, 잘 보관하여라. 나라를 위해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이는, 죽음을 각오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김응하 장군의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연합군

 

도원수 강홍립은 군사를 거느리고 의주에 가 그곳에 머물러 있다가, 창성으로 옮겼습니다. 그리하여 그 곳에 주둔한 채, 해를 넘겼습니다.

광해군 10년(1618년), 음력으로 12월 하순.

그 때, 김응하 장군의 지인(과인을 보관하는 비서 같은 벼슬)으로, 19세의 철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집을 떠나온 새 신랑으로,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김응하 장군에게 청하였습니다. “속히 다녀오도록 하여라.”

 

김응하는 한마디로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랬는데 군대가 창성을 떠나 압록강을 향해 진군하게 되었는데도 철현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새 신랑이 집에 돌아갔는데 다시 돌아오려구?”“아암, 새 각시가 붙들어서도 오지 못하겠다.”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수군 거렸습니다.

“아니다, 철현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꼭 올 것이다.”

 

김응하 장군은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 하든, 철현이 꼭 돌아오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만큼 장군은 부하를 믿고 아꼈습니다.

김응하 장군의 말은 맞았습니다.

며칠 후, 부대가 압록강으로부터 2백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철현이 돌아온 것입니다.

 

“음 돌아왔구나.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늦었느냐?”

김응하 장군은 반가워서, 친절히 물었습니다.

“예, 실은 치질이 심하게 도져서 도저히 말을 탈수가 없었습니다.”

늘 김응하 장군 곁을 따라다니던 철현이었으므로, 아주 솔직하게 말한 것입니다.

 

광해군 11 년 정월, 명나라의 장수 유정원 으로부터 빨리 와 달라는 독촉이 왔습니다. 명나라에서는, 인진왜란 때 우리 나라에 보냈던 양호를 총사령관으로 삼고, 유정을 부장으로 삼아, 대군을 징발하여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 2월 24일, 두 나라 군사는 경마전에 모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김응하는 즉시 좌영군을 거느리고 먼저 약속된 장소로 갔습니다. 명나라 군사는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명나라 도독 유정이, 김응하 장군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병들은 혹 늦어질지 모르겠으나, 도원수가 거느리는 대군은 곧 도착할 것이오.”   

 

유정은 김응하 장군의 부드러우나 엄격한 말에 한 번 놀랐으며, 질서 정연한 그의 군대를 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조선에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있다니.....’ 그날 해질 무렵, 도원수 강홍립이 군사를 거느리고 도착했습니다.  명나라 도독 유정은, 그날 밤에 조선의 장수들과 전략을 의논하였습니다.

 

“우리의 군량이 너무 후방에 있어서 군사들이 굶주리고 있으니, 좀더 기다리기로 합시다. 더구나 오랑캐의 땅은 깊고 멀어서, 군사를 이끌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위험하오.” 도원수 강홍립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정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쳐들어가면, 적군은 썩은 나무처럼 쉽게 무너질 것이오. 우리는 적을 치기 위해 모인 것이오. 빨리 진격하는 것이 최선이오.” 강홍립은 유정의 말을 듣자, 말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정은 화가 났습니다. “조선은 인물을 등용할 줄 모르는군. 김응하 같은 인물을 두고 어린애 같은 사람으로 사령관을 삼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군.”

좌의정 김응하는 도원수 강홍립에게 전혀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원수께서 일개 대대의 군사를 저에게 주시면, 제가 먼저 진격 하겠습니다.하고 청했습니다. 강홍립은 김응하의 청을 받아들여, 보병 5천 명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군사가 행군하여 마가재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강홍립이 전군에 명령을 내렸습니다.“누구든지 오랑캐를 함부로 죽이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 이 명령은, 광해군의 비밀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장수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응하 장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적과 싸우면서 적을 죽이지 말라니, 그렇다면 차라리 싸우러 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싸운다면, 칼을 거둘 수 없다.”

 

장군의 장렬한 최후

우리 군사는 명나라 군사와 함께 심하라는 곳으로 진격해 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이미 청나라 군사가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우리 군사가 적을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 군사들은 몰살당하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김응하 장군이 거느린 부대는 명나라 군사들과 함께 열심히 싸워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물론 많은 전리품도 획득하였습니다.

 

김응하 장군은 그 기세를 몰아, 적을 쳐부수며 20리 이상이나 더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그 곳은 부평이라는 곳으로, 드문드문 부락이 있었는데, 그 부락들 뒤에는 산이 서 있었습니다.

명나라 장수들은 그 부락들에 가서 노략질을 하느라 분주 하였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청나라의 장수 영아 아대가 3만의 군사를 산골짜기에 숨겨 두고 있다가 기습해 왔습니다. 노략질에 정신이 없던 명나라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김응하 장군은 형편이 이쯤 되자, 급히 도원수 강홍립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청했습니다. “병법을 모르고 함부로 달려들다가 스스로 참살 당하게 되었는데, 어찌 구원병을 바라느냐.” 강홍립은 차갑게 거절하고, 중영과 우영의 장수를 이끌고 산마루에 올라, 김응하의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였습니다. 좌영을 맡은 김응하는, 거세게 달려드는 청나라 군사를 맞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습니다.

 

군사의 숫자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응하 장군은 당황하지 않고 북을 울리며 총공격을 강행하였습니다. 숫자가 절대로 적은 우리 군사에게 청나라 군사들이 쩔쩔매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갑자기 세찬 북풍이 불어 모래와 돌이 날고, 화살을 쏘면 날아가다 말고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적이 그 기회를 놓칠 까닭이 없었습니다. 적은 일제히 김응하 장군의 군사를 공격해 왔습니다.

 

바람과 적군의 총공격 앞에, 그렇게 용감하던 우리의 군사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김응하 장군은, 큰 버드나무에 의지하여 적을 향해 활을 쏘아 댔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화살입니다.”

 

철현이 화살 하나를 장군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김응하는 그 마지막 화살을 적을 향해 쏘고 즉시 칼을 빼어 달려드는 적들을 베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장군 자신의 몸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쓰러지는 장군의 눈에 철현이 보였습니다.

“아니 넌 왜 여기 있느냐? 빨리 피하거라!”

 

“소인은 장군과 함께 끝까지 싸우다가 죽겠습니다.” 철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김응하는 그 갸륵한 정성과 비장한 대답에 힘을 얻어, 다시 칼을 휘두르며 싸웠습니다. 그러나 벌 떼처럼 달려드는 그 많은 적을 당해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 눈이 얼마나 무섭게 부릅떠 있었는지, 적군들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1619년 4원 4일, 광해군 11년 이었습니다. 싸움이 끝난 후, 청나라 장수들은 모두 김응하의 분투를 칭찬했습니다. 명나라 황제는 장군을 요동백으로 봉하고, 그의 처자에게 백금을 보냈으며, 우리 조정에서는 김응하 장군을 영의정에 추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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