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본문

p11.png 김응하(金應河)

p05.png 9. 신종 황제의 조문 소개

  가. 출전 :<寶鑒 第二輯>(1976년 10월 대종회 발간)

  나. 번역 : 부사공 19대손 재원

  다. 소개 : 2003. 1. 17. 윤식(문) 제공

  라. 내용 : 요동백 김응하 장군에게 하사한 명나라 신종 황제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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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감 제2집에 실린 번역문>

신종 황제 조문(神宗皇帝 詔文)   - 부사공(府使公) 19대손 재원(在元) 역

 

황제 가로되,  아-슬프도다. 출정장사(出征將帥) 도독(都督)[유정(劉綎)]을 위시하여 방군(邦君), 어사(御事), 오이(奧爾), 호분(虎賁), 백윤(百尹) [각 직어(各 職口+御)]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 중에 오직 동쪽 나라(조선) 김응하(金應河) 장군은 생(生)을 버리고 의(義)를 취하니 나[짐(朕)]의 마음에 아름답게 생각하며 이 같은 사람에게는 상공(上公)을 증(贈)하노라.

아-슬프다. 조자(두인변+且玆), 북추(北酋), 월준(越蠢), 남목(南牧), 솔이(率爾), 영인(獰人), 지강(指彊), 토신(土矢+引) 등 여러 오랑캐(夷狹) 들을 내가 좋은 기회에 정복하여 솔복시키지 못하고 원융(元戎) 월이(越爾) 등은 솔복하였는데 건노(建奴)[여진족→후금→청]의 오랑캐 무리가 반항하매 장군(金應河)은 죽음을 각오하고 토졸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을 기개로 전군이 크게 북으로 향하여 무찔렀으나 교만한 오랑캐 무리가 승리하니 제장들은 구차히 살기를 도모하건만 오직 장군(金應河)만은 죽음을 본받으니 장군의 의리를 내[과인(寡人)]가 가상히 여기며 장군의 전사를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노라.

 

아-슬프다. 안으로는 중국이 있고 밖으로는 오랑캐(夷狹)가 있으니 안으로 인정(仁政)을 베풀고, 밖으로 국방에 힘쓰면 오랑캐(夷狹)들이 굴복할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오랑캐 무리가 교만하고 포악해질 것이니 내가 성의가 부족하고 밝지 못한 나의 부덕한 소치로 만리강산에 군병을 모아 장사(壯士)들로 하여금 출정케 하여 혈육(血肉)을 변경(邊境)에 깔아 놓았으니 이를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노라. 민심이 고르지 못한데 인정(仁政)은 뜻뿐이요, 실효(實效)가 충분치 못하였으니 출정 장병이 일신의 안일로 국사를 소홀히 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인가. 내가 밝지 못하여 위로 천시(天時)를 거스르고, 아래로 민심을 어기고 대사를 경거(輕擧)하니 원기(怨氣)가 전파(前播)하여 드디어 장군이 홀로 전사하니 장병이 서로 돕지 않음을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노라. 붉은 충성을 누가 본받으며 장군(金應河)의 백골을 누가 거두리오. 당상(堂上)의 늙으신 부모는 이문(里門:동리의 출입문. 예전에 중국에서는 동리 입구에 홍살문 같은 출입문이 있었음.)에 의지하여 전장에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한없이 기다리고 집안의 부인은 석화산[石化山: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내가 석화(石化)하였다는 고사가 중국 문헌에 있음.]에 올라 멀리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남편 돌아오기를 한없이 기다리는 그 애달픈 심정을 내가 슬프게 생각하노라. 비록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고 슬프게 생각한들 아무 도움이 없고 장군(金應河)이 전사하였으나 빛이 남음이 있으니 추상같은 큰 절개와 백일(白日) 같은 깨끗한 충성은 족히 만고의 강상(綱常)을 바로잡고, 만고의 인신(人臣)에 도리(道理)를 표하고, 만고의 대의를 밝히고, 만고의 간사한 무리를 참괴(慙愧)케 하였으니 장군이 비록 죽고 패하였으나 그 위대한 충절은 만고에 생생하게 죽지 않고 남아 있으리라.

 

아-슬프다. 당나라 충신 순원(巡遠)이 죽지 않았으면 당나라 천자 선이(仙李)가 참다운 신하가 없었고, 송나라 충신 천상(天祥)이 죽지 않았으면 송나라 천자 속저(屬猪)가 신하가 없었고, 장군이 죽지 않았으면 나[과인(寡人)]의 신하가 없었노라. 충신 열사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없지 않았으나 자기 몸을 돌아보지 않고 국가에 순절함이 장군 같은 사람이 또 누가 있으리오. 순강(純剛)한 기운이 만고에 뇌성같이 전하니 장군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위대한 인물이기에 장군이 알고 장군답게 떳떳하게 행한 일이다. 삼군(三軍:수많은 장병)은 능히 분쇄할 수 있으나 장군 한 사람만은 뺏지 못할 것이며, 오악(五嶽:중국 동, 서, 남, 북, 중앙에 있는 큰 산악)은 능히 움직일 수 있으나 장군의 굳은 절개는 움직이지 못하리라. 군으로 하여금 황월(黃鉞)과 단정(丹旌)을 주어 주어 전군을 통솔케 하였으면 장군이 적의 낡은 칼날에 전사하지 않았을 것이며 내가 오랑캐에게 굴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황월(黃鉞)과 단정(丹旌):금도끼와 붉은 기, 곧 도독(都督)의 지휘봉을 뜻함.]

 

아-슬프다. 충성과 용력과 지략이 겸비한 위대한 장군이 홀로 죽고 도움이 없음은 나의 죄로다. 덕을 숭상하고 공을 보답함이 예부터 내려오는 전례이며, 충절을 표창함이 오늘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선왕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에 예물과 금을 처자에게 보내고 요동백(遼東伯)을 봉하여 나의 일촌(一村)의 성의를 표하여 구천지하(九天之下:地下)의 충혼(忠魂)을 위로하노라.

 

<보감 제2집에 실린 해설문>

해설

명나라 신종 황제의 조문은 후금→청이 명나라를 침범하자 열세에 몰린 명나라 신종 황제가 우리 나라에 원병을 청해 오자 광해주(光海主)는 곧 군신 회의를 열고 논의한 끝에 선조(宣祖)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서 우리 나라를 도와 준 은공으로 파병할 것을 결의, 드디어 광해군 10년(1618년) 12월에 강홍립(姜弘立)으로 도원수, 김경서(金景瑞)로 부원수, 김응하(金應河) 장군으로 좌영장을 삼아 13,000명의 응원병을 파병함에 이르러 광해군 11년(1619년) 2월에 전선에서 명군(明軍)과 합류, 일선에서 적과 대치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하자 강홍립은 도망하고, 김경서는 투항하고 말았다. 오직 김응하(金應河) 장군만은 3,000 병력을 이끌고 60,000명의 적과 격전 끝에 드디어 차부령(車富嶺) 유수(柳樹) 하(下)에서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이로써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우리 나라를 도와 준 은공을 김응하(金應河) 장군의 혁혁한 전공으로 충분히 보답하였으며, 우리 나라의 체면을 일층 빛나게 하였다. 이에 감격한 명나라 신종 황제는 김응하(金應河) 장군을 요동백에 봉하고, 백금 10,000냥과 예물을 보내어 장군의 처자를 돌보게 하였으며, 조문을 보내어 장군의 충혼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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