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온공파(구용)

본문

p02.png 11. 각종 주요 행사 및 답사 소개

     2) 포천지역 선조님 묘소 답사 (2003. 9. 6.  윤식(문) 제공)

1. 답사 내역 : 가양리 - 추동리 - 주원1리 임봉동 - 주원2리 절취미 - 금수정

◈가양리 - 직제학공(휘 맹헌), 참의공(휘 자양), 참판공(휘 예생), 병사공(휘 윤종), 별제공(휘 진기),

              철원부사공(휘 확), 성균진사공(휘 경복), 학생공(휘 가신) 및 이사검 공

◈추동리 - 도사공(휘 대섭)

◈임봉동 - 지제교공(휘 환)

◈절치미 - 참봉공(휘 정지)

◈금수단 - 양간공(휘 승택), 상락군(휘 묘), 문온공(휘 구용), 금수정, 세천비, 문온공 시비, 금수정 암각문

 

2. 답사 지역 할아버지 계보

◈문온공(휘 구용) → 부사공(휘 명리) → 1子 직제학공(휘 맹헌) → 참의공(휘 자양) →

                        → 참판공(휘 예생) → 병사공(휘 윤종) → 별제공(휘 진기) → 도사공(휘 대섭) →

                        → 철원부사공( 휘 확) → 참봉공(휘 정지) → 지제교공(휘 환) → 학생공(휘 가신)

◈문온공(휘 구용) → 부사공(휘 명리) → 3子 사인공(휘 계우) → 2子 장사랑공(휘 자숙)

 

3. 선조님 묘소 석물 표시

◈석물 크기 표시 : 가로 × 세로 × 높이

◈귀부의 높이 : 지면으로부터 거북 머리까지의 높이

◈고석 : 지름

 

4. 일시 및 참석자

◈일   시 : 2003년 8월 31일

◈참석자 : 영환, 윤만, 윤식

 

5. 기록 방법

◈창수면 일대 선영 답사 순서대로 기록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금수단에 계신 할아버지를 뵈오러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포천으로 가는 새벽길은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금수단(金水壇)은 충렬공 할아버지의 손자이신 양간공(휘 승택)을 비롯해 상락군(휘 묘), 문온공(휘 구용) 등 3분의 단소를 모신 곳입니다.

     

아침 8시 40분경 금수단에서 조금 떨어진 가양리 선영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영환 종친과 당내 간이신 여러 일가분들께서 예초기와 낫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가양리에는 문온공의 아드임이신 부사공(휘 명리)을 비롯해 직제학공의 묘소와 사인공 설단이 있습니다.   

부사공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목리(나뭇골)에서 이곳으로 옮겨 모셨습니다.

이때 부사공의 셋째 아드님이신 사인공(휘 계우) 설단도 함께 옮겨 모셨습니다.

  

◈호석둘레:1,370㎝

◈혼유석:60.5㎝×19㎝×14㎝

◈상석:151㎝×97.5㎝×39㎝

◈고석:30㎝(줄문양)

◈향로석:28.5㎝×28㎝×30㎝

◈장명등:207㎝

(기단- 58㎝×61㎝×7㎝)

◈망주석(좌):207㎝

◈망주석(우):205㎝

 

- 묘비-

◈기단:94.5㎝×64.5㎝×26㎝

◈비신:62.5㎝×33㎝×177㎝

◈이수:92㎝×64.5㎝×77㎝

☞산신석:100㎝×68㎝×16㎝

 

사인공 단소

◈호석둘레 : 1,100㎝

◈혼유석 : 33㎝ × 21.5㎝ × 21㎝

◈상석 : 121㎝ × 81.5㎝ × 33㎝

◈고석 : 33㎝(고리문양)

◈향로석 : 32㎝ × 29㎝ × 33㎝

◈장명등 : 180㎝(기단 - 55㎝ × 55㎝ × 10㎝)

◈망주석(좌) : 158㎝

◈망주석(우) : 158㎝

 

- 묘비 -

◈기단 : 91㎝ × 59㎝ × 33㎝

◈비신 : 57㎝ × 26.5㎝ × 160㎝

◈이수 : 85㎝ × 53㎝ × 64㎝

   

사인공 단소 밑에는 장사랑공(휘 자숙) 묘소가 있습니다.

장사랑공께서는 사인공의 둘째 아드님이십니다.

장사랑공 묘소 역시 부사공 묘소와 함께 나뭇골에서 모셔 왔답니다.

  

포천 지역 선조님들의 묘소는 올해 모두 사초하였습니다.

봉분이 폭우에 무너지지 않도록 비닐로 덮어놓았습니다.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직제학공, 참의공 묘소

직제학공(휘 맹헌) 묘소는 양지바른 산등성이입니다.

그 앞의 구불구불 굽은 논틀밭틀이 정겹습니다.

직제학공 할머니는 양성이씨로 이사검 공의 따님이십니다.

 

묘소는 상하봉으로 묘갈과 상석 배치가 기묘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갈이 좌우로 나란한데,

정면에서 볼 때

할머니 비갈은 할머니 봉분에,

할아버지 비갈은 할아버지 봉분 가운데에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 아래 참의공 묘소 역시

상하봉이나 묘갈과 상석은 하나뿐입니다.

문인석이 직제학공과 참의공 묘소 앞에 각각 1쌍씩입니다.

조각 기법은 섬세하지 않으나

생김새가 질박해서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 直提學公 諱 孟獻 墓所(직제학공 휘 맹헌 묘소)

(兩位 上下墳)

◈호석 : 없음

◈혼유석 : 없음(혼유석으로 추정되는 석물이 좌우상석 사이에 묻혀 있음.)

◈상석(좌) : 118㎝ × 78㎝ × 18㎝

◈상석(우) : 116㎝ × 77.5㎝ × 18㎝

◈고석 : 없음(짧은 장대석)

◈향로석 : 없음

◈문인석(좌) : 146㎝

◈문인석(우) : 150㎝

 

- 직제학공 묘갈 -

◈(하부)55㎝ (상부)57㎝ × 15㎝ × 110㎝

 

- 숙부인 양성이씨 묘갈 -

◈(하부)50㎝ (상부)50㎝ × 18㎝ × 108㎝

    

▣ 參議公 諱 自壤 墓所(참의공 휘 자양 묘소)

(兩位 上下墳)

◈호석 : 없음

◈혼유석 : 없음

◈상석 : 164㎝ × 76㎝ × 20㎝

◈고석 : 없음(장대석-길이 900㎝ × 높이 28㎝)

◈향로석 : 36㎝ × 26㎝ × 30㎝

◈문인석(좌) : 185㎝

◈문인석(우) : 185㎝

◈묘갈 : 51㎝ × 20㎝ × 145㎝

    

이사검(李思儉) 공은 직제학공의 장인으로 시호는 효소공이십니다.

오랜 세월 외손 봉사를 해 오다가 최근에 양성이씨 대종회에서 이 사실을 알고 시제에 참례하다가 수년 전부터는 양성이씨 대종회에서 향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사검 공 묘소는 서운관정공파 선조님 (휘 희수, 휘 노) 묘소처럼 장방형 호석을 둘렀습니다.

규모는 전면 6.5m, 측면 8.5m, 높이 1길 반으로 상당히 큽니다.

비갈과 상석이 각각 2개씩이며, 무인석이 1쌍 있습니다.

제왕이 아닌 사대부 묘소에 무인석을 쓴 예가 없어 특이한 사례라고 윤만 종친께서 유심히 살핍니다.

이 무인석은 긴 칼을 짚고, 머리에 투구를 쓴 형상입니다.

이사검 공은 명나라 황제에게서 투구를 하사받았는데, 이 무인석의 머리 모양이 바로 그 투구를 닮았다고 합니다.

 

직제학공 묘소에서 왼쪽 산기슭에 있는 이사검 공 묘소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는 이사검 공 아버지 이옥(정절공)의 신도비가 있습니다.

정절공 묘소는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최근에 찾았다고 합니다.

 

참판공 묘소는 상하분으로 할아버지는 위쪽, 배위 인천이씨 할머니는 아래쪽에 모셔져 있습니다. 최근에 사초를 한 까닭에 봉분에 비닐을 덮어놓았습니다.

하마 불경스러울까 조심스러워 참판공 묘소 사진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참판공과 인천인씨 할머니 묘소의 상석과 묘갈은 매우 소박합니다. 상석의 크기도 그렇고, 묘갈 역시 작은 편입니다.

그 까닭에 문인석이 상대적으로 커 보입니다. 이 문인석은 참판공의 아버지이신 참의공(휘 자양) 묘소에 있는 문인석과 조각 기법이나 형태가 상당히 닮아 보입니다.      

     

▣ 參判公 諱 禮生 墓所(참판공 휘 예생 묘소)

(兩位 上下墳)

◈호석 : 없음

◈혼유석 : 없음

◈상석 : 78.5㎝ × 63.5㎝ × 13㎝

◈고석 : 없음(장대석 - 높이 20㎝)

◈향로석 : 없음

 

- 참판공 묘갈 -

◈기단 : 77㎝ × 44㎝ × 15㎝

◈비신 : (하부)42㎝ (상부)43.5㎝ × 17㎝ × 106㎝

▣ 貞夫人 仁川李氏 墓所(정부인 인천이씨 묘소)

◈호석 : 없음

◈혼유석 : 없음

◈상석 : 123㎝ × 88㎝ × 18.5㎝

◈고석 : 없음(장대석 - 높이 20㎝)

◈향로석 : 없음

 

- 정부인 인천이씨 묘갈 -

◈기단 : 81㎝ × 47㎝ × 6㎝

◈비신 : (하부)43㎝ (상부)44.5㎝ × 15㎝ × 99㎝

◈문인석 : 좌 172㎝, 우 162㎝

  

▣ 兵使公 諱 胤宗 墓所(병사공 휘 윤종 묘소)

(兩位 上下墳)

◈호석 : 없음

◈혼유석 : 없음

◈상석 : 124㎝ × 73.5㎝ × 20㎝

◈고석 : 무(장대석 - 높이 25㎝)

◈향로석 : 없음

◈문인석(좌) : 190㎝

◈문인석(우) : 187㎝

 

- 병사공 묘갈 -

◈기단 : 86㎝ × 51㎝ × 00㎝

◈비신 : (하부)42㎝ (상부)44㎝ × 16㎝ × 117㎝

▣ 別提公 諱 震紀 墓所(별제공 휘 진기 묘소)(雙墳)

◈호석 : 없음

◈혼유석 : 없음

◈상석 : 144.5㎝ × 86㎝ × 22㎝

◈고석 : 무(장대석 - 높이 20㎝)

◈향로석 : 31.5㎝ × 31㎝ × 14㎝

◈동자석 :좌 95㎝, 우 91㎝

◈망주석 : 좌 217㎝, 우 216㎝

 

- 별제공 묘갈 -

◈기단 : 95㎝ × 58㎝ × 20㎝

◈비신 : (하부)51㎝ (상부)53㎝ × 19㎝ × 113㎝

  

부사공 묘갈과 상석

규모가 상당히 크면서도 매우 정갈해서 보는 이를 긴장시킬 정도입니다.

비갈에는 "통훈대부 상의원정 금사 김공 확 지묘 숙부인 동래정씨부"라 적혀 있습니다.

비갈에 한국동란 당시의 총탄 자국이 많아 치열했던 흔적을 고스란히 전해 줍니다.

  

  철원부사공(휘 확) 묘소는 부사공(휘 명리) 묘소 인근입니다. 비갈과 상석이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규모일 뿐만 아니라, 깔끔하고 단아해 보는 사람을 긴장시킬 정도입니다.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쌍인데, 문인석은 깊이 조각해 입체감이 두드러집니다.

비갈은 아래쪽보다 위쪽이 조금 넓은 형태입니다. 묘갈에는 "통훈대부 상의원정 금사 김공 확지묘 숙부인 동래정씨부"라 적혀 있습니다.

철원부사공 묘소는 올해 추동리에서 옮겨 모셨는데, 이때 조선시대 의복이 출토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복식 연구의 선구자인 석주선 여사가 몸담았던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이 소식을 듣고 큰 관심을 기울였으나, 현재 경기도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지봉 이수광과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 철원부사공의 매부입니다. 또한 철원부사공께서는 허균의 형이자 당대 정계의 거두인 하곡 허봉에게서 학문을 닦았습니다.

  

성균진사공(휘 경복) 묘소는 부사공(휘 명리)과 도사공(휘 확) 묘소 사이에 있습니다.

도사공 할아버지와 함께 추동리에서 옮겨 모셨습니다. 성균진사는 오늘날로 말하면 전액 국비 지원을 받는 서울대학교 장학생에 해당됩니다.

성균진사공 묘소에는 특이하게도 큰 문인석과 작은 문인석이 각각 1쌍씩 서 있습니다.

망주석은 1쌍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크고 작은 문인석의 크기를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망주석은 하단이 8각입니다.

망주석 기둥 중앙에 새긴 조각(호랑이 또는 다람쥐)이 비교적 정교하나 오랜 세월 바위이끼가 앉아 세밀하게 살펴보기에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도사공(휘 대섭)께서는 창수면 추동리에 계십니다. 추동리로 가는 길은 이곳에 거주하는 종친 외에는 찾아가기 어려워 종손 광도(泰항) 종친께서 안내를 맡아 주셨습니다.

도사공 묘소 초입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습니다. 묘소로 오르는 길은 몹시 가팔라 짧은 길이지만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추었다 올라가야 합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묘소로 오르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훤히 트인 정면에 수많은 산줄기들이 중첩되는 곳입니다. 맨 위의 풍광을 필설이나 사진으로는 그 맛을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말 그대로 호연지기를 기를 만한 곳입니다. 이런 느낌은 이곳에 거주하는 젊은 종친들 또한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철원부사공(휘 확), 성균진사공(휘 경복) 묘소를 이전하면서도 도사공 묘소만은 계속 이곳에서 수호하기로 하였답니다.

 

도사공의 따님은 지봉 이수광과 교산 허균에게 출가하셨습니다. 그리고 허균의 누이동생 난설헌께서는 우리 문중 서운관정공파 서당공(휘 성립)에게 시집가셨습니다. 이처럼 허봉의 형제분들이 우리 문중과 혼사를 맺은 것과 동인의 영수 허봉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도사공은 물론 우리 문중의 위상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 都事公 諱 大涉 墓所(도사공 휘 대섭 묘소)(合葬墳)

◈호석둘레 : 1,580㎝(높이 - 33㎝)

◈혼유석 : 77.5㎝ × 50㎝ × 12.5㎝

◈상석 : 167㎝ × 99㎝ × 26㎝

◈고석 : 무(받침석 - 길이 167㎝, 높이 41㎝)

◈장대석 : (좌) 420㎝ (우) 522㎝ 높이 30㎝

    

◈향로석 :  60㎝(6각형 향로 모양)

◈문인석 : 좌 200㎝, 우 200㎝

◈망주석 : 좌 214㎝, 우 214㎝

 

- 묘갈 -

◈기단 : 97㎝ × 57㎝ × 30㎝

◈비신 : (하부)54.5㎝ (상부)59.5㎝ × 20.5㎝ × 147㎝

   

지제교공(휘 환) 묘소는 창수면 주원1리 임봉동에 있습니다. 이곳은 마치 도사공 묘소의 축소판 같았습니다. 단지 향만 다를 뿐 앞쪽이 탁 트인 가운데 멀리 산줄기가 감싸도는 형국입니다.  

묘갈은 당대 석학인 사위 권중경이 짓고, 글씨는 손자(휘 가신)가 썼습니다. 바위이끼가 잔뜩 앉았으나 글자는 선명해서 충분히 알아볼 만합니다. 우리 일행은 비문을 살펴보면서, 다른 선조님 묘소에서 발견하듯이 상태가 좋을 때 하루빨리 탁본을 떠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곳 역시 가양리에 있는 성균진사공(휘 경복) 묘소처럼 큰 문인석과 작은 문인석이 각각 1쌍씩 있습니다. 지제교공과 성균진사공은 부자지간이므로 어떤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그런데 큰 문인석이 모두 웃음을 머금고 있습니다. 무슨 까닭이었을까요? 그 표정이 넉넉하고 푸근합니다.     

문인석 표정이 닮았다고요? 그렇죠!

 

지제교공(휘 환) 묘소의 문인석처럼 참봉공(휘 정지)의 문인석도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웃고 있습니다. 참봉공께서는 지제교공의 아버지이십니다. 뭔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다른 점이라면 지제교공 묘소에는 큰 문인석과 작은 문인석이 각각 1쌍씩인데, 참봉공 묘소에는 큰 문인석 1쌍뿐입니다.   

이곳은 창수면 주원2리 절취미입니다. 도사공(휘 대섭) 묘소나 지제교공(휘 환) 묘소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참봉공(휘 정지) 묘소를 참배하고 내려오는 길에 종가댁 가족묘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봉분형 납골묘소로서 종가댁 8대조부터 모시고 있습니다.

가족묘 비문은 영환 종친께서 지으셨습니다.

  

▣ 金水亭 三位壇域(금수정 삼위단역)

◈혼유석 : 45.5㎝ × 28㎝ × 20㎝

◈상석 : 152㎝ × 93㎝ × 36.5㎝

◈고석 : 40㎝

◈향로석 : 36㎝ × 30.5㎝ × 37㎝

◈석향로 : 40㎝ × 40㎝ × 75㎝

◈장명등 : 196㎝(기단 - 69㎝ × 69㎝ × 22㎝)

◈망주석(좌) : 187㎝

◈망주석(우) : 200㎝

◈문인석(좌) : 149㎝(기단 - 76㎝ × 60.5㎝ × 27㎝)

◈문인석(우) : 153㎝(기단 - 76㎝ × 60.5㎝ × 30㎝)

 

▣ 良簡公 諱 承澤 壇所(양간공 휘 승택 단소)

◈호석둘레 : 1,115㎝

 

- 묘비 -

◈귀부 : 200㎝ × 140㎝ × 85㎝

◈비신 : 60㎝ × 30㎝ × 174㎝

◈이수 : 90㎝ × 63㎝ × 80㎝

 

▣ 上洛君 諱 昴 壇所(상락군 휘 묘 단소)

◈호석둘레 : 1,110㎝

 

- 묘비 -

◈귀부 : 180㎝ × 130㎝ × 70㎝

◈비신 : 61㎝ × 30㎝ × 172㎝

◈이수 : 90㎝ × 60㎝ × 75㎝

▣ 文溫公 諱 九容 壇所(문온공 휘 구용 단소)

◈호석둘레 : 1,110㎝

 

- 묘비 -

◈귀부 : 180㎝ × 120㎝ × 55㎝

◈비신 : 63.5㎝ × 32.5㎝ × 176㎝

◈이수 : 90㎝ × 60㎝ × 78㎝

 

▣ 金水亭 山神祭壇(금수정 산신제단)

◈상석 : 106㎝ × 75.5㎝ × 29㎝

◈향로석 : 25㎝ × 24㎝ × 22㎝

◈비갈 : 37㎝ × 15㎝ × 103㎝

 

▣ 安東金氏世阡碑(안동김씨세천비)

◈귀부 : 190㎝ × 120㎝ × 83㎝

◈비신 : 67㎝ × 37.5㎝ × 188㎝

◈이수 : 90㎝ × 63㎝ × 77㎝

   

금수단 바로 곁에는 문온공 시비와 종가터, 금수정, 양사언 시비 등이있습니다.

문온공 시비에는 할아버지 대표작인 <범급(帆急)>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온공파 종가는 99칸 대저택으로 전해 옵니다.

이곳 창수면에는 문온공의 맏아드님이신 직제학공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 종가터에는 크고 작은 주춧돌이 남아 있습니다.

옆 사진을 보시면 종가댁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하실 겁니다.

포천시는 앞으로 종가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문온공 시비 옆에 금수정이 있는데 영평(포천의 옛 이름) 8경 중 하나입니다.

금수정 앞에 흐르는 강이 영평천인데 강 속의 기암괴석이 또한 절경입니다.

이 천하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가슴까지 차오르는 주춧돌이 있습니다.

  

양사언 선생 시비

태산이 높다 하되......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시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금수단 벌초를 마치고 일가분들은 금수정과 나뭇그늘에 들어가 꿀맛 같은 점심을 드십니다. 식사 후에는 나뭇그늘이 짙은 양사언 선생 시비 주변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금수정 안에서도 끝없이 웃음소리가 퍼져 나옵니다.

  

벌초 후에는문온공파 직제학공계의 소파인 별제공종회 정기총회가 열렸습니다.

문온공파는 직제학공계, 참의공계, 사인공계의 3개 소파가 있습니다.

별제공종회는 직제학공계 중 별제공(휘 진기)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종회로서 주로 창수면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별제공종회가 열리는 동안 금수정 주변의 암각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안동김씨세천비와 금수정 사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 바위가 지표면에 노출돼 있습니다. 여기에 <금대(琴臺)>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습니다.

이 글자는 마멸이 심해 다른 글자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금수정 밑에는 영평천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습니다. 이리 내려가 좌측 수로를 따라 10여 미터쯤 가면 바위 중간에 음각으로 <금수정(金水亭)>이 새겨져 있습니다.이 글자를 모각한 것이 바로 금수정 현판입니다.              

이 암각문 위쪽에 수로를 관리하는 작은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제방이 이어집니다. 제방 너머에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있는데 중간쯤에 사람이 넉넉히 드나들 수 있는 옛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이 <동천석문(洞天石門)>입니다. 이제는 길이 끊어지고 수풀이 우거져서 이 글자도 잊혀지는 중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중국 사신 허국의 글씨로 전해지는 <회란석>이 새겨진 바위도 일부가 떨어져 나가 <회>자는 보이지 않고 <란석> 두 글자뿐입니다. 잠시 그 글자가 새겨진 바위 덩어리를 찾아보았으나 눈에 띌 리가 없었습니다.         

금수정 주변에는 이외에도 양사언의 친필을 비롯해 손꼽히는 선비들의 글씨가 많습니다. 그러나 며칠새 쏟아진 비로 냇물이 불어 이 글자들은 촬영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영평천의 절경과 함께 소개드리겠습니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뉘엇뉘엇 넘어가고 그림자가 점점 길어집니다.

벅찬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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