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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인공계 광주문중 시제와 명달리 사초 행사 (2004. 4. 14. 윤식(문) 제공)
(1) 사인공계 광주문중 시제 ◇일 시 : 2004년 4월 11일 (일요일) ◇장 소 : 경기도 광주시 은고개 인근 ◇참석자 : 학생공(휘 복함) 자손
맑은 날입니다. 개나리 꽃불이 사그라지자마자 벚꽃이 눈부십니다. 귀 밑을 스치는 바람 따라 벚꽃 무더기가 크게 일렁이더니 꽃비가 날립니다. 오늘은 문온공파 사인공계 광주문중의 학생공(휘 復緘 : 문온공 7세손) 할아버지와 그 자손분들의 시제일입니다. 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온공(휘 구용) → 2子 부사공(휘 명리) → 3子 사인공(휘 계우) → 2子 장사랑공(휘 자숙) → 4子 학생공(휘 윤문) → 子 승지공(휘 신) → 2子 학생공(휘 복함)
10시 30분경 은고개 벽수장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침 바로 위 양지쪽이 학생공(휘 윤문)과 승지공의 유택인지라 잠시 짬을 내어 산을 오릅니다. 나뭇잎 사이로 뾰족 솟은 싹들을 피하느라 발걸음이 조심스럽습니다. 몇 번 지나치기만 하다가 이제야 참배를 합니다. 두 분 할아버지께서는 3단으로 조성된 묘역 맨 위쪽인데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재배를 드린 다음 사진 한 장을 찍고 시제 장소로 향합니다.
벽수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왼쪽 도로를 따라 들어가자 의외로 골짜기가 넓고 깊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산세가 순하고 아늑합니다. 시제 장소에 도착하니 진설 준비가 거의 끝나 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종친들께서 속속 도착하고, 11시 20분경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날 헌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헌관 : 길원 ▲아헌관 : 영환 ▲종헌관 : 영근
묘역은 왼쪽에 학생공(휘 복함) 할아버지 유택이, 오른쪽에는 아드님(휘 사길)과 손자(휘 연종, 휘 세종), 증손(휘 필한), 현손(휘 중황)의 합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래 묘역은 중부고속도로 인근인데, 도로 부지로 흡수되어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가 이곳으로 다시 옮겨 모셨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택을 현재와 같은 형태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아래쪽으로 휘 중황 할아버지의 아드님(휘 복철)과 손자(휘 학신), 증손(휘 병열)의 묘소가 모셔져 있습니다. 시제 후 음복과 함께 꿀맛 같은 점심을 들고 정기총회를 가졌습니다. 총회 내용은 생략합니다. 약 30분간 진지한 토의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2)명달리 참판공 묘소 사초 ◇일시 : 2004년 4월 11일 (일요일) ◇장소 : 경기도 양평군 명달리 참판공(휘 處臣) 묘역 ◇참석자 : 참판공 자손
언제나 그렇지만 종친들과 헤어질 때는 아쉽기만 합니다. 다정하면서도 꼭 잡은 손으로 그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이제 경기도 양평군 명달리에 있는 참판공 할아버지 묘소로 향합니다. 한적한 길로 접어들어 퇴촌면을 거쳐 옛 경춘가도를 달립니다. 학교 다닐 때 가끔 다산 선생 묘소로 탁본 뜨러 다니던 길입니다. 영환 종친께서는 예전 추억이 떠오르시는지 연애 시절 얘기를 꺼내십니다.(그 길의 그 추억은 상상에 맡깁니다. 대모님 웃음소리가 나직하면서도 ... 아시죠?) 화창한 봄날 탓인지 명달리 가는 길은 꽉 막혔습니다. 차를 돌려 우회로를 찾습니다. 아뿔싸, 여기도 막혔습니다. 중미산을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시간이야 더 걸리겠지만, 덕분에 운치 있는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중미산 마루턱에 있는 중미산 휴양림 입구에서 왼쪽으로 길을 꺾어 들어갑니다. 이 길은 눈에 거의 보이지 않아 낯선 이들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길 왼쪽에 중미산 천문대가 있으니 그리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한참 달리다가 이정표를 보고 명달리로 길을 바꿉니다. 포장이 안 돼 있을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말끔하게 포장된 길이 반깁니다. 꼬불꼬불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깊은 골짜기들이 아득합니다. 강원도 같은 풍경이 연속됩니다. 드디어 산을 넘고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에서 <명달리유원지>로 들어섰습니다. 입구에 초소까지 설치돼 있는 걸 보니 여름이면 찾는 이들이 많은가 봅니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유난히 큰 아름드리 조선 솔 두 그루가 반깁니다. 맑은 계곡물 바로 곁에 참판공(휘 처신) 할아버지 묘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참판공 묘소 뒤에는 학생공(휘 필성) 할아버지를 비롯해 그 아드님 사복시정공(휘 태황), 손자 승지공(휘 명철) 할아버지께서 영면해 계십니다. 학생공(휘 필성)께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휘 복함 할아버지의 증손이십니다. 이분들 역시 중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모시게 되었답니다. 승지공 할아버지 묘소 앞이 바로 호조참판공(휘 처신) 할아버지입니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에는 사초를 하기 위해 한창 둘레석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새로 맞춘 참판공 비석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사초는 경륜이 깊으신 어르신들께서 조언을 하시고, 모든 일은 40대가 주관토록 하여 신 ․ 구의 조화를 이룬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젊은 종친들은 훗날 한글 세대들도 쉽게 할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도록 비문도 한글로 하자는 의견이었다고 합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젊은 층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전체 종친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을 거치도록 조언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비문 전면은 한자로, 뒷면은 한글로 하기로 자연스런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답니다. 종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합심하여 새 비석을 세우고 사초를 마친 뒤 고유제 역시 우리말로 진행되었습니다. 나이 어린 종친들까지 누구나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마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듣는 듯하여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이북에서 내려와 이제 모든 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제게는 귀중한 경험이었고,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음복을 마치자 어느덧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곧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즐겁게 집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이항로 선생의 생가를 잠시 방문하였습니다. 고즈넉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벽진이씨들이 오래 세거하여 우리 문중과 혼사가 잦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러하고요. 이항로 선생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 나라의 마지막 대학자로 일컬어지는 면암 최익현의 스승이라고 영환 종친께서 들려 주십니다. 학맥은 최익현 선생에서 김평묵 선생으로 이어진답니다.
골짜기는 길고 길어 북한강 새터나루터까지 30리 길입니다. 영환 종친 가족들은 매년 5월 시제 때에는 농장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명달리까지 일부러 걷는다고 합니다. 그 30리 길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꽃이 부럽습니다. 가는 길에 영환 종친께서 소유하고 계신 농장에 들렀습니다. 농장 입구에서 차에서 내려 깜깜한 밤길을 걸었습니다. 울창한 잣나무 사이의 꿈길이었습니다. 농장에 도착하자 할머니(영환 종친 어머님)께서 맛있는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려 주십니다. 잔디밭 위에서 번개탄에 굽는 돼지고기 맛은 천하일미입니다. 광주에서부터 명달리까지 내내 배터지게 먹은 탓에 배가 꺼지지 않아 많이 먹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농장에서 직접 캐신 나물과 주먹만한 딸기 등등 ... 오늘 저녁상은 제 평생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맛있는 저녁을 들고 난 뒤에 마당 불까지 끄고 밤하늘을 쳐다봅니다. 요즘 유행인 ‘웰빙’ 바로 그거였습니다. 언젠가 농장으로 안사연 및 종친 여러분을 초대하실 예정이셨다고 하시는데, 제가 시제 행사에 참여한 기회에 먼저 그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나중에 김이 조금 빠질 것 같아 나머지 광경은 상상에 맡기고,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이상 문온공파 사인공계 광주문중 시제와 참판공 묘소 사초 내용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광주문중 시제
▲학생공(휘 윤문) 할아버지와 승지공(휘 신) 할아버지 묘소
▲학생공(휘 윤문) 할아버지 묘소
▲승지공(휘 신) 할아버지 묘소
▲승지공 묘역에서 - 왼쪽부터 영환 종친, 아들 홍묵, 장묵, 부인
▲승지공 묘소 아래의 묘역 전경
▲승지공 묘소 아래의 묘역(앞에서 본 사진)
▲학생공(휘 복함)과 그 자손분들 묘역
▲묘역 전경
▲학생공(휘 복함)의 아드님(휘 사길)과 손자(휘 연종) 묘비
▲학생공(휘 복함)의 손자(휘 세종)와 증손(휘 필한) 묘비
▲진설 준비
▲진설 준비
▲진설 준비
▲헌작
▲초헌관 길원 종친
▲아헌관 영환 종친
▲좌집사 영윤 종친
▲실눈 뜨고 어디 보나요~~!!
▲종헌관 영근 종친
▲음복
▲정기총회
▲시제에 참석한 어르신들과 종친 여러분
2. 참판공(휘 처신) 묘소 사초 ▲명달리 묘역 - 뒤에서부터 학생공(휘 필성), 오른쪽 사복시정공(휘 태황), 왼쪽 좌승지공(휘 명철)
▲명달리 묘역의 아름드리 소나무. 앞의 큰 소나무는 특이하게 세 갈래로 자라고 있음.
▲거송 윗부분
▲참판공 묘소 사초
▲참판공 묘소 사초
▲참판공 묘소 사초
▲참판공 묘소 새 비석 세우기
▲새 비석 - 앞면은 한자, 뒷면은 한글로 새김.
▲새 비석(뒷면)
▲사초 후 묘역 정리
▲사초 후 묘역 정리
▲사초 후 고유제 - 헌관 영환 종친, 집사 영한 종친
▲아헌
▲묘소 사초 후 고유문 축독 - 맨 오른쪽이 축관 영한 종친(우리말 고유문 축독)
▲고유제
▲하루종일 애쓰신 고마우신 우리 문중 며느님들
▲묘역 정리 후 뒤쪽에서 본 장면
▲명달리 일가분들
▲명달리 일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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