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금강산 유람기 중 금수정 부분-月谷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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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7-04-09 17:24 조회1,175회 댓글1건본문
졸역입니다. 크게 미흡하나 개략적인 뜻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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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行三十里。 由永平縣前路。 白沙淸川十里。 綠林極淸曠。 又西四五里爲金水亭。 川水近此。 灣廻如弓。 而至亭下又縈抱如帶。 亭構蒼壁之上。 壁甚戌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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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0리를 가서 영평현 앞 대로를 따라가니 흰 모래 맑은 물이 10리라. 초록빛 수풀이 극히 푸르고 빛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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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亭北兩石如門者而入。 刻石峰筆洞天石門字。 其傍臨江一巨巖。 刻廻瀾石。 模華使許學士筆云。 亭扁乃蓬萊筆。 亭傍古檜老松挺立。 登亭甚淸曠。 坐小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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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북쪽에 두 개의 바위가 마치 문 같아서 그리로 들어갔다. 석봉(한호)이 쓴 ‘동천석문’ 네 글자를 새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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亭之西北百餘步。 沙汀廣鋪。 有白石頗奇。 中陷是爲窪尊。 刻尊巖二字。 其傍刻蓬萊一絶。 窪尊沙塡可欠。 其西十餘步小巖。 刻蓬萊三五七言。 從亭崖沿川傍往觀。 坐久上亭少睡。 午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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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서북쪽으로 100여 보 떨어진 곳에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흰 돌이 있는데 자못 기이하다. 돌 한가운데가 파였으니 이것이 와준이다. ‘준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옆에 봉래의 절구 한 수가 새겨져 있다. 모래가 와준을 메운 것이 흠이다. 거기서 서쪽으로 10여 보 떨어진 곳에 작은 바위가 있는데, 봉래의 3.5.7언 시가 새겨져 있다. 정자에서부터 시내를 따라 죽 이어진 벼랑 곁으로 가서 구경하고, 정자 위에 한참 앉아 있다가 잠깐 졸았다. 점심을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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亭是金胤福爲名人所居而歸之蓬萊。 蓬萊還之金家嫡室云。 處地旣勝。 藏占亦久。 林藪沙石。 映帶甚佳。 復從尊巖傍上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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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는 김윤복이라는 명인이 살던 곳인데 봉래에게 돌아갔다. 봉래는 이 정자를 김씨(안동김씨) 가문의 적실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머물러 사는 곳이 절경이라. 감추고 차지한 것이 이미 오래 되었도다. 숲과 덤불, 그리고 모래와 돌이 영대처럼 심히 아름답구나. 다시 준암 인근으로 가서 말 위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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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家嫡室 : 구보(舊譜)에, 진사공(휘 윤복)께서는 무남독녀를 두셨는데 봉래 선생이 사위로 기록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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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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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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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적절한 사진을 곁들인 번역으로 쉽게 이해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舊譜는 기해(1959)년 刊 문온공(구 대사성공)파보로 보이는데
그 후의 임신(1992)세보에는 女楊士彦 기록이 빠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