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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孝印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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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07-16 18:14 조회2,0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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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의 해금강 지구내의 삼일포 호수 안에 있는 단서암과 관련하여 金孝印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시 한수를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 三日浦 丹書岩 삼일포 단서암

刻碑鐫碣古猶多 각비전갈고유다

蘇食 侵字轉訛 소식녹침자전와

爭似指頭千載血 쟁사지두천재혈

一淪山石不消磨 일륜산석불소마



삼일포 단서암

비에 새기는 일은 옛날에도 많았지만

이끼와 먼지의 침노를 당해 글자 더욱 변하였다.

그것들이 어찌 손가락 끝의 천년의 피가

돌에 한번 배어 다시는 닳아 없어지지 않음만이야 하리



*三日浦(삼일포) :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호수. 신라 때에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 등 사선이 그 절경에 취해 사흘이나 놀다 갔다고 하여 삼일포라 한다. 거기에 단서암이 있다.



*刻碑鐫碣(간비전갈) : 네모진 것은 碑, 둥근 것은 碣, 刻鐫은 새김

*轉訛(전와) : 말의 잘못 전해짐, 또는 그 말

*爭似(쟁사) : 어째 ...만하랴

*消磨(소마) : 닳아 없어짐









⊙ 삼일포는 금강산 관광 홈페이지 (http://www.ilovecruise.com/)에 보면 설명과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외금강 온정리에서 동남쪽으로 12k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한 삼일포는 예로부터 관동8경의 하나로 이름났고, 호수 풍경으로는 전국에서 으뜸으로 알려져 왔다.



신라의 화랑들이 이곳에 삼일간 체류했다고 하여 삼일포라고 한다. 북한은 이 호수를 천연기념물 지리부문 제21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호수 면적은 0.79㎢, 수심4m내외, 둘레4.5km이다.



신라때의 4선인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이곳에 하루쯤 다니러 왔다가 호수 경치에 취해 사흘동안 놀았다고 한다. "삼일포"라는 이름도 이들이 사흘동안 놀고 갔다고 하여 생겨났다.



호수 가운데는 소나무 우거진 와우도와 사선정이 있는 단서암, 무선대 등 몇 개의 큰 바위로 이루어진 작은 섬들이 놓여 있다.



예전에 신라의 사선이 놀았다는 사선정은 현재 복원되어 있으며, 단서암은 신라 사선의 한 사람인 술랑이 세 자씩 두 줄로 써놓은 "述郞徒 南石行(술랑도 남석행)"이라는 글자가 붉은 색을 낸다고 하는 바위인데, 호수의 물이 적을 때에 "남석" 두 글자만 간신히 보인다.



15세기까지만 해도 글자가 모두 뚜렷했는데 금강산에 찾아온 관리들이 으레 단서암을 보려 하였고 탁본하여 하였기에 그 시중을 들기 뒤찮고 힘들었던 이 고을 사람들이 단서암을 돌로 짓이겨 물 속에 처넣어서 훼손하였다고 전해온다.



단서암 정상에는 매향비를 세웠던 비석 자리가 있다. 이 매향비는 고려 충선왕 1년 (1309)에 강릉존무사 김천호라는 이가 삼일포에 향목을 묻은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 삼일포에는 이름난 시인 묵객들이 찾아들어 고려조에 이달충, 정추, 채련, 이곡, 안축, 김구용, 한상경, 홍귀달 등 여러 시인들이 삼일포에 대한 시를 남겼는데 그중 고려시대의 문온공 척약재 김구용이 남긴 한시를 음미해 보면 이렇다.



三日浦 ( 若齋 金九容) 삼일포 (척약재 김구용)

三十六峰秋雨晴 一區仙境十分淸 삼십육봉추우청 일구선경십분청

日斜未用輕回棹 楓岸松汀待月明 일사미용경회도 풍안송정시일월





삼일포 (척약재 김구용)

삼십육봉에 가을비 개이니

선경의 경색이 한결 더 맑다

돛대는 돌릴 필요 없나니

단풍언덕 솔숲 물가에서 명월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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