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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숨어사는 집 -심서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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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14-11-26 00:12 조회1,8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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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숨어사는 집 -심서엄-

애초의 건물 주인이 쓴 글에 보면
, 검암(儉巖)이라는 바위 밑에 소나무 두 그루가 앞을 향해 있어서 그것을 기둥삼아 얽어 집을 지어서는 암옥(巖屋) 즉 바위집이라 부르며 심서엄(深棲广)이라고 편액(扁額)했다. 사람들이 와서 보고 꾸짖으며, “남들이 쓰는 실(((((() 등의 글자들을 버리고 하필 엄(广)자를 씀은 무슨 뜻인가.”라고 물었다.

이 글자가 내 평생의 일을 잘 형용하고 있지요. 젊어서부터 책을 뒤적였으나 게으르고 둔하여 학문을 이루지 못했고, 장년에는 농가에서 일하였으나 부유하지 못했고, 만년에는 기량이 둔하여 정밀하지 못했소. 이 엄자는 처음은 있으나 잘 끝냄이 없는지라 뜻은 있었지만 성취함이 없는 나 자신과 가장 잘 부합되지요.”라고 대답했다.

그가 거처하던 심서엄에는 본 주인의 심서엄기와 권상한의 심서엄 명() 병서(幷序), 김동진(金東鎭)의 중건기(重建記)가 있어 이 정자의 유래와 주인의 풍모를 전해준다. 

권상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김원여(金源汝)가 영주 남쪽 시낼 계곡에 숨어 살며, 편액을 심서엄이라 했으니, 대개 엄(广)이란 바위 집을 이름이며, 그 글자의 생김이 마치 집을 짓다가 채 이루지 못한 모양과 같다. 그 뜻을 취함이 깊고 또 멀다 하겠다. 심서옹은 풍류 고사(高士)이다. 사람됨이 격앙강개하여 티끌을 초월하고 세속을 벗어나 항상 겸허하여 한 엄자로 일생의 분수를 지키는 것을 제목으로 삼았으니, 이제 스스로 지은 엄의 기문을 보아도 알만하다. 옹은 이 엄에서 기거하며 여기서 시를 읊고 손을 맞이하고 자손을 가르치면서 편안히 청복을 누려 90의 수()를 누렸다.

그 장손 김도용(金道容)이 유당(幽堂) 앞에 몇 칸 집을 짓고 옛 편액을 걸어 추모하는 처소로 삼으니 이에 채 이루어지지 못했던 엄이 훌륭한 집으로 되었다. 근검과 덕행으로 기초를 삼으면 다른 날 문벌이 창성할 것을 점칠 수 있음이다.  

심서엄을 읊은 그의 시 원운(原韻)을 보자.

풀 덮인 구비 고개 세상 시끄러움과 먼지 끊었으니

나무 엮어 집 짓고 옛 사람 사모하노라

돌로 입 헹구고 샘물 베개 삼아 뜻을 독려하노니

바람 부는 창과 달빛 비치는 벽이라도 이 몸 지낼만해

가시나무 우거진 길은 낮밤을 분간키 어렵고

꽃잎 떨어진 뜰에서 봄인 줄 알겠노라

묵묵히 남은 세월 헤며 외롭고 누추함을 한하노니

()임금의 대야 어찌 얻어 스스로 새롭도록 경계하리 

중국의세설신어에 나오는 내용으로, 손초(孫楚)와 왕제(王濟)의 대화에서 본래는 침석수류(枕石潄流 : 바위를 베개 삼아 베고 흐르는 냇물로 입을 헹군다.)”인데, 손초가 잘못 말하기를 수석침류(潄石枕流)’라고 했다. 그랬더니 왕제가 흐르는 물은 베개로 벨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돌로는 입을 헹굴 수 없다.”고 맞받았다. 손초가 다시 대답하기를 흐르는 물을 베개 삼으면 귀를 씻을 수 있고, 돌로 입을 헹구면 치아를 갈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심서옹은 이런 내용을 모르고 돌로 입을 헹구고 시냇물을 베개 삼는다고 했을까? 굳이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엄자를 써서 심서엄 즉 깊이[] 숨어 사는[] [广]’이라 하여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것을 보면, 여기에도 선비로서의 고집이나 비틂과 같은 의도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왕제의 말에 대해서 다소 억지로 변명삼아 대답한 것으로도 보이는 손초의 말인 돌로 입을 헹구는 것은 이를 갈려는 것에는 무언가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으며, 또 흐르는 냇물에 귀를 씻으려는 심정도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부정과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에 대해서나 스스로의 학문 성취를 위해 이빨을 갈고, 서로 얽혀 벼슬자리 주고받거나 돈으로 사고파는 세상의 온갖 행태를 보고 듣고는 귀를 씻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지(勵志 : 뜻을 독려한다)’라고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바위를 베개 삼아 베고, 흐르는 냇물로 입을 헹구는 것이나 돌로 입을 헹구고 냇물을 베개로 삼는 것이 둘 다 공히 은거하는 것을 의미하며 별 충돌 없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탕임금이 목욕 또는 세수를 할 때마다 마음을 다지기 위해 그 대야 또는 청동 목욕통에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하며 또 날마다 새롭게 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고 새겨 놓았다고 했다. 세상을 피해 은거한 심서옹이 이 새로움을 강조한 것도 깊이 되새겨볼만하다.


<출처>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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