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시제길에 들려볼만한 곳, 영주 심서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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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14-11-26 00:02 조회2,367회 댓글1건본문
심서엄(深棲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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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엄은 김영하(金永河 1838-1916)가 낙향하여 서숙(書塾)을 창설하고 마을 소년들을 가르치며 천석(泉石)과 어조(魚鳥)를 벗하여 생애를 자적(自適)한 곳이다. 온화하고 겸허한 성품에 당시의 정치나 관리들의 잘잘못을 말하지 않았고, 남의 허물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한다. 16세에 동양의학을 연구하여 명의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서숙에서 공부하던 제자들이 유덕을 흠모하여 심서엄을 중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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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엄(深棲广) 편액은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가 쓴 것이다.
▲의친왕 이강(李堈)이 쓴 심서엄, 이 편액은 현재 서울 역사박물관에 있다.
김영하는 자가 원여(源汝), 호는 심서(深棲)이고, 본관은 안동으로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후예이다. 덕태(德泰)의 아들이고, 밀와(密窩) 권석원(權錫元)의 문인으로, 경사(經史)를 널리 익히고, 문사(文詞)에도 뛰어나 스승 밀와가 “반드시 그릇을 이루리라.”고 칭찬하여 기대했다. 약관에 두어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세도정치가 극성에 달한 당시의 과장의 풍조가 몹시 어지러움을 보고, “먼 지방의 세력 없는 사람은 도무지 바라볼 수도 없겠다.”고 탄식하고 낙향하였다.
심서엄 원운(深棲广 原韻)
-김영하(金永河)-
풀숲 우거진 고개 너머로 세속과 멀어지니
나무 얽어 초당 짓고 옛 사람 사모하노라.
산수의 경관을 벗을 삼아 내 뜻을 기르려 하니
바람 창, 달빛 어린 벽, 이 한 몸 지낼만 하네.
가시밭 우거진 길은 낮밤을 분간하기 어렵고
뜰에 꽃잎 떨어진 뜰에서 봄인 줄 알겠네.
묵묵히 남은 세월 헤며 외롭고 누추할지라도
탕임금 대야의 한 줄 글을 일깨워 새롭게 하리라.
심서(深棲) 김영하(金永河) 가계(家系)
고려 충렬왕때 다난한 국사에 크게 이바지하여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功)에 봉해진 충렬공 김방경(金方慶)의 15대손 김흥례(金興禮)가 안동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 자리 잡은 것은 대개 18세기 초엽(숙종~영조)으로 짐작된다.
권상한(權相翰)이 지은 김영하의 묘갈명(墓碣銘)에 의하면, 김흥례의 아들 김성립(金聖立)이 통정대부(通政大夫), 손자 김극남(金克男)이 가선대부(嘉善大夫)였다고 하며, 김흥례의 7대손 김영하는 밀와(密窩) 권석원(權錫元)의 문인으로 문행(文行)이 있었고, 수직(壽職)으로 통정계(通政階)에 올랐다고 한다.
심서엄은 경상북도 영주 남쪽 30리 평은면 용혈 2리에 있다.
이 마을은 예전에는 ‘시낼’ 또는 풍천(楓川)이라고 불렀다. 금광리에서 서북편으로 강물 너머 평은역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산으로 마치 옹성(甕城)을 두른 듯 외져서 아늑하고 조용한 동네이다. 위ㆍ아래 두 마을로 나뉜 ‘시낼’은 윗마을(녹동)엔 안동김씨가, 아랫마을에는 달성 서씨가 사는데, 두 문중이 각기 취락을 이루어 수백 년을 살아오고 있다.
지금은 이 마을 옆으로 중앙선이 지나가고 그 아래 길지 않은 터널 바닥으로 맑은 냇물이 비껴 흐르는데 바로 이 두 마을을 이어주는 통로이다. 이 통로를 나서면 다소 넓어진 공간의 낮은 언덕에 집이 몇 채 있다. 평은초등학교의 용혈분교가 작은 밭 너머로 보일 듯 말 듯 고요하고, 그 위 좁은 길 따라 4, 50m 정도 가다보면 왼쪽으로 나무와 풀 사이 저 안쪽에 심서엄이 숨은 듯이 무심하게 서 있다.
<출처>유교넷
댓글목록
김재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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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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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深棲) 김영하(金永河) 가계(家系)
익원공-밀직사공-동추공-문정공-부사공(지동)-방-彦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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