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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 1---1281년(70세) 7월, 고려사 김방경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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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15 23:23 조회1,2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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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께서는 7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1281년 여몽연합군을 이끌고 2차 일본원정을 다녀 옵니다. 1274년 1차 일본원정때와 마찬가지로 합포(경남 마산)에서 출진하여 대마도와 일기도를 점령하고 북큐슈 하카타만에 상륙하여 전투를 벌였으나 또한 태풍으로 인하여 돌아오게 됩니다.

 


■ 고려사 104 열전 17 (김방경)

<충렬왕(忠烈王)> 7년 3월에 군사를 내어 동정(東征)할 때 김방경이 먼저 의안군(義安軍)에 이르러 병장(兵仗)을 사열(査閱)하고 왕은 합포(合浦)에 이르러 크게 제군(諸軍)을 열병하였다.

김방경이 흔도(都), 홍다구(洪茶丘), 박구(朴球), 김주정(金周鼎) 등과 더불어 출발(出發)하여 일본 세계촌(世界村) 대명포(大明浦)에 이르러 통사(通事) 김저(金貯)로 하여금 격(檄)으로 설유(說諭)하였다. 김주정(金周鼎)이 먼저 왜(倭)와 더불어 교전(交戰)하매 제군(諸軍)이 다 내려 같이 싸워 낭장(郞將) 강언(康彦), 강사자(康師子) 등이 죽었다.

6월에 김방경, 김주정(金周鼎), 박구(朴球), 박지량(朴之亮), 형만호(荊萬戶) 등이 일본병(日本兵)과 더불어 함께 싸워 300여 급(級)을 베니 일본병(日本兵)이 돌진하므로 관군이 무너지고 홍다구가 말을 버리고 달아나거늘, 왕만호(王萬戶)가 다시 가로질러 쳐서 50여 급(級)을 베니 일본병(日本兵)이 이에 물러가고 홍다구는 겨우 면하였다.

그 다음날 다시 싸워 패적(敗績)하고 군중(軍中)에 또 크게 질병이 나서 죽은 자가 무릇 3,000여 명이라, 흔도 홍다구 등이 여러 번 싸워 불리하였고 또 범문호(范文虎)가 기일(期日)을 지나도 오지 않음으로써 회군(回軍)하고자 의론하기를,

“성지(聖旨)가 강남군(江南軍)과 동로군(東路軍)이 반드시 이 달 16일에 일기도(一岐島)에서 만나게 하였는데 지금 남군(南軍)이 오지 않고 아군(我軍)이 먼저 와서 여러 번 싸웠으나 전선(戰船)이 썩고 양식이 다 하였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하니 김방경이 묵연(默然)하였다.

10여일에 또 의론이 처음같거늘 김방경이 말하기를,
“성지(聖旨)를 받들고 3개월 분량의 양식을 가지고 왔으니 이제 한달 양식이 아직 있는지라 남군(南軍)이 오기를 기다려 합공(合攻)하면 이를 멸할 것이다.”
하니 제장(諸將)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얼마 후에 범문호(范文虎)가 만군(蠻軍) 10여만을 거느리고 오니 배가 무릇 9,000소()였다.

8월에 대풍(大風)을 만나 만군(蠻軍)이 다 빠져 죽으니 시체가 조수(潮水)를 따라 포구(浦口)에 들어와 포구(浦口)가 이 때문에 막혀 밟고 다니게 되는지라 드디어 환군(還軍)하였다.

 

 

김순 묘갈 번역문
(출전 : 안양문화유적총람/안양시 문화공보담당관실/1996.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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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부친께서는 막내 아들을 더욱 사랑하여 항상 신변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시고 하정사(賀正使)로 가실 때도 꼭 데리고 다니셨으나 다만 일본을 정벌하러 가실 때는 따라오지 못하게 하신 것은 종군하여 위태한 일에 참여치 못하게 함이었다.
공이 이에 출정행차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몰래 먼저 군함에 올라타고 갔는데 마침내 부친을 호위하고 구원(救援)한 공(功)이 자못 컸으니 이는 공이 오로지 충효로서 발분(發憤)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것이다.

임오년(壬午年)에 전중시사(殿中侍史)로 승진하고 ---

 

■ 고려사 김방경 열전 부 김순 열전
김순(恂)의 자(字)는 귀후(歸厚)인데 충렬왕 5년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낭장으로 있다가 곧바로 학사 직강(學士直講)으로 올라갔다. 김방경이 일본 정벌로 떠나자 김순은 종군하려고 하였는데 김방경이 허락하지 않았으나 가만히 배에 올라 종군하고야 말았다. 귀환하게 되자 전중 시사(殿中侍史)로 승직하고 ---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과 <여말선초의 대마도 정벌>과 관련해서는 KBS1TV 역사스페셜 (http://www.kbs.co.kr/history/)에서 방영된 다음을 보면 대본과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002. 02. 09 방영 <고려 몽고 연합함대 일본원정, 주력은 고려군이었다.>

○ 2002. 11. 02 방영 <원정함대 사령관 이종무는 왜 대마도에서 철군했나.>


▶월간조선 2003년 12월, 2004년 1월,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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