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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군 전설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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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18 10:30 조회1,3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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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확장 1

(2003. 4, 도정공 후손 김태현 제공)


화산군(휘주) 할아버지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셨는데, 사후 20년만에 고국 조선으로 운구되어 돌아 오셨다고 한다. 운구가 두만강에 건너 쉴때는 상여 앞에서 치는 요령이 멈추고, 다시 움직일때는 요령이 울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요령을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까지 조선에서는 장례 행렬에 요령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 화산군 묘역 앞 도로를 지나갈 때 담배를 피면 입이 달라 붙어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고, 말을 탄 채로 지나가면 말굽이 땅에 들어붙어서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정시대 때 일본놈이 말을 타고 이 묘역 앞을 지나가는데 말굽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자 말 다리를 그 자리에서 잘라서 화산군 상석에 문지르니 이후부터는 이러한 현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혼령과 말의 피는 상극이라고 한다. 이때의 상석은 묘역 주변 어디에 묻어 버렸다고 한다.



 

전설의 확장 2

(2003. 12, 화산군 후손 김용주 제공)


440년전 화산군(휘澍)께서 조선조 명종때 종계변무사로 명나라에 가시었다가 책무를 완수하시고 그곳 연경 옥하관에서 병환을 얻어 52세에 순직하시었다. 명나라 황제께서 관(棺)과 수의를 特賜하여 서장관 李陽諺으로 하여금 염습과 護喪을 치르게 하였다.

공의 장례시 서장관 지시에 의하여 喪輿앞에 搖鈴(작은 종)이 있어야 魂이 따라가는 護喪이 된다 하여 연경, 만주를 지나 요령을 흔들며 압록강을 건너, 경기 광주 넋고개(지금의 동원대학 정문 앞) 밑에 상여를 쉬었다가 가려고 하는데 인부가 요령을 흔들지 않자 상여가 움직이지 않아 이상히 여겨 다시 요령을 흔들자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넋고개는 화산군의 혼백이 머물다 갔다 하여 넋고개라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이때부터 상여를 모실 때 요령을 사용하는 풍습이 생겼다 하며 넋고개를 넘고 백고개를 넘어 억억다리 (지금의 하다리와 귀백리를 잇는 다리이다. 이 다리는 세종대왕께서 승하하셨을 때 영릉으로 모셔가기 위하여 돌로 만든 다리라 한다.)을 건너 귀백리 先塋에 모셨다.


그후 몇 년이 지난후 어느 장군이 화산군(휘澍)의 묘 앞길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갑자기 말이 움직이지 못하여 옆을 보니 묘가 있어 가보고 화산군의 묘임을 알고 말의 목을 베어 상석에 올려 놓고 예를 올린 후 지나갔다고 한다.

말의 목을 올려 놓았던 상석은 지금도 묘앞 제전 좌측 옆에 흑에 반쯤 묻혀 있다. 상석에는 지금도 그때 말의 피자욱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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