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水亭 小史> 1-2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4-12-28 17:47 조회1,799회 댓글0건본문
지금까지 우리 게시판에 소개된 내용을 모두 모아 보았습니다.
제목은 <金水亭 小史>
1. 문온공파 가양리 묘역 (포천 창수면 가양리)
◈문온공(휘 구용) → 2子 부사공(휘 명리) → 1子 직제학공(휘 맹헌) → 2子 참의공(휘 자양) → 1子 청도군수공(휘 예생) → 1子 윤종, 2子 윤선, 3子 윤복
***청도군수공은 예안현감 시절 충렬공 할아버지 비석을 개수
◈1자 윤종 → 1자 진기 → 대섭 → 확(1572-1653) → → 환 → → 택인(1753- )
가양리 묘역은 문온공(휘 구용) 할아버지의 제2자 부사공(휘 명리) 할아버지를 비롯해 문온공파 선조님들께서 잠들어 계신 곳.
청도군수공(휘 예생) 할아버지 묘소에서 지석 1매가 출토되어 별제공종회장님께서 보관. 이 지석은 1매가 아니라 여러 매인 것으로 추정.
1991년 봄 사초 당시 철원부사공(휘 확) 할아버지 묘소에서 지석과 의복이 출토되어 의복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 여기에서 발굴된 지석 또한 백자로 되어 있는 9장(복제본 2개 포함 도합 11장)은 현재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디지탈한국 홈 페이지에 올려 있음. 이 의류(100여점이 넘을 것임)는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서 정밀 조사에 들어 갔으며 곧 조사 보고서가 나오리라 기대.
2. 금수정 (포천 창수면 오가리)
금수정은 영평천 맑은 수면의 8m 절벽 위에 위치한 정자로서 정자 아래 기암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노송이 어울러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영평천에는 영평8경이라 불리우는 절경이 맑은 계곡물과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지는데, 8경은 저마다 독특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정자 앞에는 창건을 기념하여 심은 진송이 있는데 그 수령이 400년으로 추정된다.
구전되어 오기를 금수정을 지으셨다는 성천도호부사공(휘 김명리)의 내력에서부터, 그려사를 편찬하신 직제학공(휘 김맹헌)께서 노후 이곳에 은퇴하시어 말년을 보내셨으며, 지금도 근처 종산에 영면하고 계시며 이후 참의공(휘 김자양), 청도군수공(휘 김예생), 가선대부 경상좌병사공(휘 김윤종), 공주판관공(휘 김윤선), 금수정의 기록으로는 최초로 나오시는 금옹공(휘 김윤복), 이후 별제공(김진기), 의금부도사공(김대섭), 철원부사공(김확), 그리고 부사공의 매부이신 지봉 이수광. 교산 허균과 이곳 금수정에 얽힌 인물들, 봉래 양사언, 사암 박순, 한음 이덕형, 번암 채제공, 농암 김창협, 화서 이항로. 면암 최익현에 이르기까지---
이 누각에서 앞을 바라보면 왼쪽으로 금수정이 날아갈 듯 날렵하게 서 있고, 금수정옆 바위 위에는 금옹 할아버님이 거문고를 연주하셨다는 琴臺가 있으며 이곳에도 琴臺라고 단정한 해서가 새겨져 있다.
금수정앞으로는 영평천이 휘돌아 나가며 그 냇물에는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있듯이 많은 바위들이 물위에 솟아 있다. 이곳을 연화암이라고 한다. 이 바위에 또한 많은 암각문이 있으니 대표적인 것이 瓊島(또는 浮島)라고 짐작되는 80 x 120센치미터의 대형 초서가 있고, 그 옆 바위에는 초서로 된 한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시는 봉래집에 의하면 贈琴翁詩 라고 되어 있으며 이시는 많은 문인들 사이에 알려진 자료이다. [東國輿地誌] 및 [東洲集(이민구)]에도 또한 인용하고 있다. 봉래집에는 증금옹시를 적고 그 말미에 琴翁은 금수정 주인이다 라고 적혀 있어 당시 금수정이 안동김씨의 소유였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琴翁은 척若齋선조의 5대손 金胤福(김구용-김명리-김맹헌-김자양-김예생-김윤복)할아버님의 호이기 때문이다. 증금옹시 초서 옆에는 큰 웅덩이 같은 바위가 있는데 마치 술동이 같다하여 尊巖이라고 새겨 놓았다. 이 모든 글씨가 봉래양사언선생의 친필암각문이다.
이 연화암이 있는 영평천 건너 오른쪽으로는 작으마한 동산이 있으니 지금 할미산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종가 소유이다. 금수정과 할미산 가운데를 영평천 넘어 아득한 벌판이 이어져있으니 그 정경이야말로 이루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다. <2004.12, 김영환, 문온공 종택 발굴 참관기>
김하종 [풍악권] <금수정>. 개인 소장
?김하종(金夏鐘) 1793(정조 17)∼?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의성. 자는 대여(大汝), 호는 유당(#유78堂)·유재(#유78齋) 또는 설호산인(雪壺山人). 화원으로 첨사(僉使)를 지낸 득신(得臣)의 아들이며, 건종(建鐘)의 동생이다. 그 역시 화원이었으며 벼슬은 첨사를 지냈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