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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우리 선조님 09---김구용(1372.8-1373.7, 강소성 소주 남경 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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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13 10:25 조회1,37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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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약재 김구용의 문학세계>(1997, 성범중, 울산대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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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이 성절사인 정사 성원규(成元揆)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것은 중국에서 명 태조가 즉위한 지 5년째인 1372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약 1년이었다. 그의 문집에는 이 기간 중에 창작된 19題 22首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문집을 편찬한 둘째 아들 김명리가 밝힌 대로 여행길에 藁本(고본)을 잃어버리고 송경으로 돌아와서 추록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使行(사행) 중에 지었던 중요한 작품은 대개 재구되었을 것이므로 작품의 전반적 경향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행의 과정과 구체적 내막은 명확히 밝힐 길이 없지만, 문집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서 보면, 그는 평소에 앓던 소갈병(당뇨병) 때문에 중국에 가서도 매우 고생했던 것을 알 수 있고, 황제인 명 태조 주원장을 광록사(光錄寺)에서 배알하고 宣諭(선유)를 들었으며, 또 중국의 문사들과 만나 교유할 기회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남경(南京)에서 자기보다 몇 달 전에 먼저 중국에 使行갔던 정몽주를 만났다. 정몽주는 1372년(공민왕21) 4월에 서장관으로 홍사범(洪師範)과 함께 명의 수도에 도착하였다가 8월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중(海中)에서 풍랑을 만났다. 배가 파선되어 홍사범은 익사하고 그는 다시 명의 수도로 되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김구용은 정몽주를 남경에서 만나 그 반가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고, 그와 함께 명승지를 관광하기도 했다. 특히 윤주(潤州 *현재의 중국 강소성 진강현) 감로사(甘露寺)의 다경루(多慶樓)에 올랐던 일은 후일 김구용이 죽은 후, 다시 중국에 갔던 정몽주가 이때의 일을 기억하는 작품을 남기게 하기도 했다.



●壬子九月。蘇州城下有感。/임자년 9월 소주성 아래에서 느낀 바 있어

*임자년은 1372년(공민왕 21)이다.

*소주(蘇州)는 중국 강소성(江蘇省)의 중심 도시로서 옛날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가 싸웠던 곳이다.

*용만(龍巒)은 용문산(龍門山)을 가리킨다.


●夜泊楊子江 /밤에 양자강에 정박하다

*양자강(揚子江)은 장강(長江)이라고도 하는데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전체 길이는 5,400km이다.


●上汪丞相上 /왕승상께 올리다 2수


●禮部陶尙書 /예부의 도상서께 올리다


●賜宴 황제께서 /베푸는 잔치에 구호하다


●大倉病中。寄達可司成。/대창에서 병을 앓으면서 달가 사성에게 주다

*대창(大倉)은 성읍지에서 관에서 설치한 쌀을 저장하는 큰 창고를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지명인 듯하다.

*달가(達可)는 포은 정몽주의 호이다. 정몽주는 김구용과 같이 사행을 떠난 것이 아니고 1372년(공민왕 21) 4월에 서장관으로 홍사범과 함께 명의 수도에 도착하였다가 8월의 회로에 해중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 홍사범은 익사하고 그는 다시 명의 수도로 되돌아 간 적이 있다. 김구용이 정몽주를 만난 것은 이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贈譚友德秀才 /담우덕 수재에게 주다


●同達可送鄕僧悟上人歸金陵 /달가와 함께 금릉으로 돌아가는 향승 오상인을 보내며

*금릉(金陵)은 중국 강소성 남경(南京) 부근의 지명이다.

*장산(蔣山)은 중국 강소성 남경의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종산(鍾山)의 별명이다. 漢나라 말기에 장자문이 이 산 아래에서 도적에게 피살되자 오 대제가 그를 위하여 사당을 세우고 종산을 장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金陵街上 /금릉 시가에서


●癸丑四月。自大倉召至京師。賜宴光祿寺。奉天門下面聽宜兪。復用前韻。/계축년 4월 대창으로부터 경사로 불려 오니 광록사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봉천문 아래에서 황제를 뵙고 선유를 들었다. 앞의 운자를 다시 써서 짓다. 2수

*계축년은 1373년(공민왕 22)이다.

*경사(京師)는 서울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명나라의 수도인 남경을 가리킨다.

*광록사(光錄寺)는 중국의 고대 관서로서 궁전 金門의 일을 담당하던 곳이다.


●潤州甘露寺多景樓次韻 /윤주의 감로사 다경루에서 차운하다 2수

*윤주(潤州)는 현재의 중국 강소성 진강현(鎭江縣)이다.

*감로사(甘露寺)는 중국 강소성 진강시(鎭江市) 북고산(北固山) 후봉(後峯) 위에 있는 절이다. 삼국시대 동오 감로 원년(265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후 여러 차례 허물어짐과 건립됨이 계속되었다. 산꼭대기의 능운정(凌雲亭)을 강유위(康有爲)가 고쳐서 강산제일정(江山第一亭)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 다경루는 감로사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김구용은 이때 정몽주와 함께 온 것으로 보인다. 정몽주는 김구용이 죽은 후, 다시 이곳 가까이 와서 그를 추억하는 작품을 남겼다.

▶현재

*진강(鎭江, 전장) 인구 289만명

남경(南京, 난징)에서 딱 한 시간 거리인 진강은 식초 산지로 유명한데, 거리에서 그 향기가 떠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기차역 주변이 심하다. 진강의 최대 매력은 金山公園(진샨꿍위안)으로 이곳의 사찰들이 많은 신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구시가지는 大西路(따시루) 근처로 어슬렁거리기에 무척 재미있는 곳이다. 특히 길 서쪽 끝으로 가봐야 한다. 장강(창장)변에 새로 생긴 산책길도 역시 걷기 좋다.

*북고산 공원(北固山 公園, 베이구샨 꿍위안)

이 공원은 감로사(甘露寺, 간루쓰)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 당나라 때 처음 세워진 철탑이 있다. 한때는 13m 높이를 자랑했지만, 화재, 번개, 문화대혁명 중에 광분했던 홍위병에 의해 수난을 당했다.


●金山寺 /금산사

*금산사(金山寺)는 중국 강소성 진강시 서북쪽 금산에 있는 절로 동진 때 처음 건립되었다. 원래의 이름은 택심사(澤心寺)이지만, 당나라 때부터 통칭 금산사라 했다. 송 천희 년간에 천자가 금산사에 몽유한 것으로 인해 용유사(龍遊寺)라 사명(賜名)했고, 청 강희제가 남쪽 지방을 순수할 때 강천선사(江天禪寺)라 사명했다. 왕안석의 유금산사(遊金山寺) 시가 유명하다.

▶현재

*금산공원(金山公園, 진샨꿍위안)

이 공원은 금산사(金山寺, 진샨쓰)를 통해 8각 7층탑인 자수탑(慈壽塔, 츠서우타)으로 올라가는 불자들의 행렬로 계단이 가득 찬다. 이 절의 이름은 공원 입구의 대문을 열자마자 거대한 금덩어리로 변한 선종의 승려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산에는 네 개의 동굴이 있는데 이중에 <백사 이야기>라는 중국 동화에 나오는 불해(佛海, 포하이)와 백룡(白龍, 바이룽)이 그려진 곳이 있다. 2번 버스를 타고 끝까지 가면 금산(金山, 진샨)에 닿는다.


●龍江關有懷。用達可韻。/용강관에서 회포가 있어 달가의 운을 쓰다

*용강관(龍江關)은 중국 강소성 강녕성(江寧城) 의봉문(儀鳳門) 밖에 있는 관문(關門)이다. 김구용은 1372년 성절사의 서장관으로 남경에 갔을때 용강관(龍江關)을 들른 적이 있고 거기서 지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高郵州次達可韻 /고우주에서 달가의 시에 차운하다

*고우주(高郵州)는 중국 강소성 강도현(江都縣) 북쪽에 있는 고을이다.


●過沂州。贈施伯起判官。/기주를 지나며 시백기 판관에게 주다

*기주(沂州)는 중국 산동성(山東省) 임기현(臨沂縣)에 있던 고을이다.


●龍潭縣。示蘇至善。/용담현에서 소지선에게 보여 주다


●途中 /길을 가며

*요동(遼東)은 중국 진대의 군명으로 현재의 심양(瀋陽)의 동남쪽 지역이다. 요하(遼河)의 동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요동이라 부르는데, 발해와 황해 사이에 돌출해 있다. 현재의 요동반도라 부른다.


●定遼衛。送伴行王奏差儀還金陵。/정료 위에서 동반하다가 의례에 따라 금릉으로 돌아가는 왕주강을 보내며


●蓋牟城。寄大倉朱秀才。曾以玉燈爲贈。/개모성에서 일찍이 옥등을 주었던 대창의 주수재에게 주다

*개모성(蓋牟城)은 옛 고구려의 성으로 요녕성(遼寧省) 개평현(蓋平縣)에 있었다.

*대창(大倉)은 성읍지에서 관에서 설치한 쌀을 저장하는 큰 창고를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지명인 듯하다.

*요양(遼陽)은 중국 요녕성(遼寧省) 심양현(瀋陽縣) 서남쪽의 땅이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언제 이렇게 많은 연구를 하셨나요.  참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