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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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김 철(金 哲) (생몰년 미상)

호(號)는 양파(陽坡). 충렬공(휘 방경)의 현손. 정의공파 파조이시다. 고려말에 천우위대장군(千牛衛大將軍)을 지내고, 안동군(安東君)에 봉해졌으며, 1392년 조선개국(朝鮮開國)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 이어 공조(工曹)·예조(禮曹)의 판서를 역임했다. 정의공(正儀公)파조이시다. 영단은 경북 안동시 임동면 중평2리 임하댐 위에 있으며, 향사일은 매년 양력 11월 4째 일요일이다.

 

1. 주요 자료 소개

1)정의공(휘 철) 사적비 및 단소 (2002. 12. 10. 재원(문)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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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 사적비(좌) 및 단소(우)>(경북 안동시 임동면 중평2리 임하댐 위. 명성쉼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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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비 전경>(경북 안동시 임동면 중평2리 임하댐 위. 명성쉼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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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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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비 측면>

 

  2) <사적비문>  (2003. 8. 13. 수진(정) 제공)

 

高麗正儀大夫千牛衛大將軍 封安東君 朝鮮開國原從功臣 工禮曹判書 贈奎章閣提學陽波金公事蹟碑銘 幷序

 

 古訓에 말하기를 先祖有美而不闡이면 不明不仁이라 하였다. 世間에는 밝은 智略과 높은 經輪으로 一世를 살고 後世에 業을 남긴 顯達한 明人들도 時運의 不利와 歲月의 因循遷延으로 潛德幽光이 塵寰에 湮沒되니 뜻있는 後孫들의 崇先之懷를 더욱 切感하게 한다. 여기 朝鮮開國原從功臣 陽波金公의 遺墟 와 幽宅은 塞外千里의 邊境이라 걷어치울 期約없는 鐵柵으로 時享마저 올리지 못한 것이 半世紀가 지났다.

 

 아! 거룩하도다 山은 太白의 줄기가 길게 뻗었고 물은 日月山에서 發源하여 臨河湖를 이룬 鄒魯의 原鄕 安東府 中坪 마을언덕에 先世의 事蹟을 새긴 우뚝한 碑石을 세우나니 山川景觀도 한층더 아름답다. 삼가 살피건데 公 의 諱는 哲이요, 號는 陽波이며,貫은 安東이다. 新羅敬順王의 四子인 大安君殷說의 系譜로 叔丞과 日兢을 지나 諱利請이니 安東太守로서 비로소 安東의 貫을 받았으며 諱義和는 威衛寺主簿요 諱敏成은 文科에 올라 直史館 翰林을 歷任하였다. 諱孝印은 英烈公 琴儀를 師事하였고, 善筆로 王命碑書가 淸河의 寶鏡寺와 康津의 月南寺에 있으며 金紫光祿大夫로 三韓壁上功臣이 되었다.

 

 諱方慶은 高麗의 高宗, 元宗, 忠烈王의 三朝出仕로 三別抄亂을 바로잡고 再征日本으로 樹功하여 出將入相의 勳業이 世上을 떨쳤으며 上洛郡 開國公으로 忠烈의 諡號가 내렸으니 吾金의 中始祖요 公의 高祖이시다. 曾祖의 諱倫은 中顯大夫密直司事이니 忠烈公의 四子요 祖의 諱永曜는 金吾衛大將軍이고 考는 諱杏이니 檢校中樞院事이며 妣는 郡夫人慶州李氏이다. 公은 一三五六年 恭愍王丙申에 태어나시니 簡嚴淸肅하고 好勇絶人이라 兼하여 通經에 能達하니 이는 勝國勳臣이요 忠烈世家의 庭訓을 힘입었기 때문이다. 高麗末에 文科에 올라 中郞將을 거쳐 判兵曹事를 歷任하고 正儀大夫千牛衛大將軍이 되었으며 恭讓王廢位時에 功을 세워 安東君에 封해지고 高麗史에 記錄되었다.

 

 辛旽의 竊位로 危機에 處한 나라를 恒常 걱정하며 李太祖 潛邸時부터 維新과 應順의 깊은뜻을 품고 捍衛하였으나 麟閣에 漏落되었다가 太祖 丁丑에 開國原從功臣錄에 追錄蒙恩과 工禮曹判書에 登用되고 賜田十五結과 立碑紀功하고 父祖配位는 封爵의 榮을 子孫에게는 蔭職의 恩級이 내렸다. 다음해 戊寅에 王子의 亂으로 太祖를 뫼시고 咸興에 扈駕하였다가 辛巳에 還都할 때 太宗을 追從한 翊戴功臣들이 權勢를 잡고 있었기에 時狀이 利롭지못함을 헤아리고 和義君 金成富와 典書 沈之伯等 三公이 勳勞를 辭讓하고 御街에 拜謝한후 摩雲嶺을 넘어 福州에 들어가 山川靈氣가 서려있는 可居樂地에 世業을 定하니 이곳이 靈台峯이다. 金公과 沈公 亦是 塔坪山과 雲住山에 卜居하여 望鄕의 懷抱로 遠問相答하며 友誼를 結束하니 時年 四十六歲요 이로부터 子孫이 繁盛하여 關北의 華族이 되었다. 一四二十年 世宗 庚子에 逝去하니 享年 六十五歲라 鶴城郡 鶴南面 琴山洞 斜乙浦山 寅坐에 安葬했으며 純宗庚戌에 後孫 容黙과 宗黙 의 上奏로 奎章閣提學의 贈職이 내렸다. 配는 月城郡夫人 慶州崔氏라 三男을 두었는데 成景은 兵馬節度使요 成浩는 文科工曹參議이며 成咸은 縣監이다. 成景의 子는 得海이니 兵馬判官慶源鎭鎭撫使요, 成浩의 子는 億敏이니 寧海府使로 分貫寧海 하였으며 成咸의 子는 智理니 通政大夫進勇校尉를 歷任하였다. 曾玄以下는 記錄을 줄이며 以後 累代를 걸쳐 衣冠文物이 相承하고 安身守分으로 世業을 밝히면서 地方의 模楷가 되었다. 三百數十餘年이 지난 純祖 年間에 十六世孫 範澾公이 天機와 地理에 造詣가 깊어 坎暗离明의 原理를 豫見하니 保子孫之計는 南에 있음을 깨닫고 大小一族이 議論하여 地廣土沃한 南鄕으로 率眷遷居함에 先考三兄弟의 遺骸를 江陵과 奉化로 각각 移安하고 卜地傳孫하니 歲壬寅春이라 以後千里遠隔에 奠省의 禮를 다할 수 없어 奉化西碧에 世德祠를 세워 享祀하였으나 庚寅兵燹으로 災厄을 입으니 孱孫들의 崇慕向念이 感愴할뿐이다. 時移世變한 오늘날 後孫은 京鄕에 各居하고 南北相殘 당시 越南한 宗人多數로 七百餘家에 이른다. 己卯歲末에 派宗會長 允會族從이 慕先의 情을 禁치 못하는 마음으로 訪來하여 宗孫範植을 비롯하여 諸宗이 數次에 걸쳐 論議함에 世遠地隔으로 香煙이 폐해진 派祖의 尊靈을 設壇으로 모시고 아울러 東南方數步許에 事蹟碑를 樹碑코자 하면서 그 銘을 請하니 昌會 亦是 傍裔의 한사람으로 固辭할 수 없어 譜牒과 行略을 詳考하여 위와 같이 敍하고 삼가 銘을 드리니

 

忠烈古家 높은 勳業 勝國華閥 거룩하다 應順天理 깊은 뜻은 其命維新이 아닌가

龍飛咸州 하올 적에 扈輦三年 壯할시고 移宮還都 때를 당해 拜辭駕前 時狀이라

自悔端川 數百餘祀 該地範模 되었었네 鐵嶺넘어 關北千里 追遠의 情 할 길 없어

八域雲孫 齊誠으로 設壇竪碑 時享할세 有崇八尺 높은 碑石 臨河湖와 함께하리

                                                              傍後孫  昌會  謹撰

                                                              正儀公派宗會  謹竪

 

  3)<고유제문> (2003. 8. 11. 수진(정) 제공)

 

高麗正儀大夫 千牛衛大將軍 封安東君 朝鮮開國原從功臣工禮曹判書 贈奎章閣提學陽坡金公 事跡碑告由文

 

(가) 원문

 

恭惟我祖   忠烈古庭   簡嚴淸肅   絶人智勇

耆好讀書   通史明經   麗運將訖   維新順應

開國原從   追錄恩蒙   龍飛咸州   扈輦三霜

移宮還都   不利時狀   拜辭駕前   闕北越嶺

自晦端川   卜地奠居   雲仍繁衍   該地模楷

城津鶴南   府君域兆   歷世省奠   半千歲祀

嗚呼國運   鐵柵橫馳   香火奠掃   旣絶半百

臨河湖畔   擇地一局   藐玆雲孫   設壇竪石

山若增淸   水亦增碧   時惟霜露   不勝感憶

謹因歲事   告厥由祝   府君有靈   洋洋歆格

        敢告虔告   尙饗

                                傍後孫   昌 會  謹撰

 

(나) 역문 (정의공22세손 수진 회장 제공)

 

공손히 생각건대 할아버지께서는 충렬공의 가정에서 생장하였네.

간결하고 엄숙하고 또한 맑으셨고, 지혜와 용맹도 남보다 뛰어났네.

일찍이 글 읽기를 좋아 하셔서, 역사에 능통하고 경서에 밝았도다.

고려의 나라가 장차 기울 때, 유신의 뜻을 살려 순리를 따랐네.

조선조의 개국에 공을 세우고, 공신록에 추록의 은혜 입었네.

태조대왕 함흥으로 이어할 적에, 수레호위 생활함이 삼년이라네.

태조대왕 서울로 돌아오실제, 시상이 불리함을 알으셨으며

수레앞에 나아가서 하직 고하고, 재을 넘어 관북으로 들어가셨네.

함경도 단천에 몸을 숨기고, 좋은 땅에 터를 잡아 살으셨도다.

자손들은 번연하게 늘어나서, 그 지방의 모범이 되었다네.

성진고을의 학남면에는,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곳이라

대대로 벌초하고 잔드려서, 반 천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슬프다! 나라운수 불길하여, 철책이 동서로 가로질렀네.

묘소를 청소하고 향불 피운 일, 끊어진지 이미 오십년일세.

임하호 아름다운 언덕위에, 한 구역의 터를 가려서 잡고

아득히 먼 자손 뜻을 모아, 단을 쌓고 비석도 세웠도다.

산세는 더욱더 맑아 보이고, 호수는 한결 더 푸르구나.

때는 이미 서리가 내렸으니, 느껴운 감회를 감출 수 없네.

삼가히 시사를 드리면서, 머리 숙여 축 읽고 고하옵니다.

할아버지 영혼이 계시오면, 천천히 내리시어 흠향하소서.

감히 공손하게 고하나이다.

                                   傍後孫   昌 會  謹撰

 

  4)정의공 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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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공 단묘>(경북 안동시 임동면 중평2리 임하댐 위. 명성쉼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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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 단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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