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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요 자료 소개
6) 진주성 소개 (2002. 3. 15. 태서(익) 제공)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석축 된 성의 둘레가 약 1,700m(4,359척), 높이는 약 5m(15척)이며, 성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河崙)(1347-1416)의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성의 둘레는 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남쪽)이 있고, 성 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 강(남강)이 흘렀으며, 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 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드는 것은 3800여명의 군사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명이 왜군 12만여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동 상>(2000. 12. 항용(제) 제공)
<진주성 지도>(구지도) <진주성 모습>(현재)
<진주성>(2003. 6. 16. 태서(익) 제공)
<진주성의 주야 경관> (2006. 3. 19. 경회(?) 제공)
<김시민 장군 전공비> (2003. 6. 16. 태서(익), 항용(제) 제공)
<김시민 장군 위패--경남 진주성 창렬사 소재>
<김시민 장군 소개> (2006. 9. 20. 정중(도) 제공)
<촉석루>
<논개 시비> 변영로
-논개-
거룩한 분노는 / 종교 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情)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 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娥眉) /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속 같은 입술 /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 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江)물은 /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 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의암>
<정문>
<어록>
<임란때 사용한 대포>
<북문>
<진주성>
<남강>
(2) 진주박물관 내 *임란 선무공신 교서(보물 제1476호, 2006. 7. 24. 일본에서 환수. 9월 이후 진주박물관 소장)
<충무공 김시민 장군 교서>(2006. 7. 12. 안승준교수 일본에서 촬영 자료 합성본. 2006. 7. 20. 항용(제) 제공)
<충무공 김시민 장군 교서>(2005. 11. 18. 일본 동경, 경매물 도록 사진. 2005. 11. 9. 항용(제) 제공)
<전시실 전시물>
<전시실의 기념품>
<전시실의 각종 기념품>
<전시실의 전시물>
<전시실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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