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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종합
5) <광해조일기 (光海朝日記四)>신유년(광해군 13, 1621)--김응하장군 제문 (2003. 5. 17. 태서(익) 제공) 김응하(金應河)가 전사한 소식이 천조(天朝)에 들어가자, 요동 백(遼東伯)을 증직하고 치제하였는데, 제문은 다음과 같다. “방군(邦君)ㆍ어사(御史) 및 호분(虎賁)ㆍ백윤(百尹)들이여, 동번(東藩)의 나라에 몸 바친 신하 장군 김응하가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였도다. 내가 마음에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기에 그 죽은 사람을 위하여 상등의 벼슬을 증직하노라. 아, 북쪽 오랑캐가 군사를 일으켜 남으로 침입하여 준동하였도다. 너희들 영인(寧人)을 거느리고 강토를 지시하여 주셨고, 더구나 점괘가 좋은데 어찌 정벌하지 않으랴, 나의 원수(元帥) 및 너희들 우방을 독려하고, 이어 대중을 정돈하여 하늘을 받들어 토벌하자 장군은 죽음이 있을 뿐이요, 사졸들은 살 생각이 없었도다. 전군이 패배하자 교활한 오랑캐가 편승하기에 모든 장수는 도망쳐 살려고 하는데 장군만이 죽음을 바쳤으니, 장군의 의리를 내가 아름답게 여기고 장군의 죽음을 내가 부끄럽게 여기노라. 아, 안은 중국이요, 밖은 이적(夷狄)이기에, 수양(修攘 덕을 닦아 오랑캐를 치는 것)이 잘되면 이적(夷狄)이 굴복해 오고 수양이 잘못 되면 이적(夷狄)이 중국을 어지럽히는 것이로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여 순일한 덕을 밝히지 못하고, 만리 밖에서 관병(觀兵)하려 내 군사와 장수를 몰다가, 피와 살이 지경을 메웠으니, 내가 부끄럽게 여기노라. 민심은 일정하지 않아 혜택만을 생각하는 것이니, 어루만져 주면 임금으로 여기고 학대하면 원수로 여기도다.
내가 알지 못하고 위로는 천심을 거스르고 아래로 인심을 어기고, 경솔하게 대사를 거행하다가 원망이 싸움터에 일게 하여 드디어 장군이 단독으로 싸우다가 죽게 하였으니, 내가 부끄럽게 여기노라. 그 충성을 누가 본받으며 백골을 누가 거둘 것인가. 당(堂) 위의 부모는 의려(倚閭)(주D-001)하다가 그만두고 규중의 과부는 산머리의 망부석이 되리니, 내가 마음에 아프게 여기노라. 비록 그러하나, 나의 부끄러움은 아무리 부끄러워한들 소용이 없지마는 장군의 죽음은 죽어서 빛이 나는도다. 가을 서리 같은 큰 절개와 태양 같은 충성은 만고에 강상(綱常)을 유지하고 만고에 신하의 표준이 되어, 만고토록 대의를 밝히고 만고토록 간신을 부끄럽게 하리니, 장군이 비록 한 번 패전하여 죽었지만 만고토록 죽지 않는 것이로다.
아아,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이 죽지 않았으면 당(唐) 나라에 신하가 없었을 것이요, 문천상(文天祥)이 죽지 않았으면 송(宋) 나라에 신하가 없었을 것이며, 장군이 죽지 않았던들 우리 나라에 신하가 없었으리로다. 충신과 열사가 어느 시대라고 없으리오마는, 몸을 죽여 나라에 바침이 장군과 같은 사람이 또 누가 있으랴. 순수하고 강직한 하나의 기운이 만고에 어려 있는 것을 장군이 받아 장군이 되었던 것이로다. 이에 삼군의 원수(元帥)는 빼앗을 수 있어도 필부의 뜻은 뺏기 어려우며, 오악(五岳)은 움직일 수 있어도 한 사람의 절개는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노라. 만일 황월(黃鉞)의 단성(丹誠)(주D-002)이 다 장군과 같았더라면, 장군이 어찌 패배하여 죽을 것이며 내가 어찌 오랑캐놈에게 욕을 당하랴. 아아, 충성이 장군 같고 용맹이 장군 같으며 지혜가 장군 같은 사람이 홀로 싸우다가 구원되지 못하였으니, 나의 허물이로다. 덕을 높이고 공에 보답하는 법이 예부터 있는데, 충성의 표창과 절개의 표창이 오늘인들 없을 수 있으랴. 이에 내가 선왕들의 뜻을 계승하여 예물(禮物)을 갖추어, 장군의 처자를 보호하고 요동 백을 증직하여, 조금이나마 나의 성의를 표하고, 황천의 충성스러운 영혼을 위로하노라.” 하였다.
[주1] 의려(倚閭) : 초(楚) 나라 왕손가(王孫賈)의 어머니가 왕손가가 밖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의 문에 기대 서서 기다렸다는 고사가 있다. [주2] 황월(黃鉞)의 단성(丹誠) : 천자가 출정을 명령함과 동시에 내려주는 도끼. 이것을 받으면서 충성을 서약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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