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묘소 참배기 (2001. 8. 17. 김윤만(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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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1-10-26 14:49 조회929회 댓글0건본문
충렬공(方慶) 할아버지 묘소 참배를 위한 길 안내입니다. 할아버지의 모든 후손들에게 작으나마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충렬공 할아버지 신도비. 안동에서 도산서원 이정표가 있는 35번국도를 따라 청량산도립공원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안동댐 예안교를 지나 999번 도로로 좌회전하여 구송리 삼거리에 이르면 직진은 935번 영주, 915번 봉화, 좌회전하면 감애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곳에 충렬공 할아버지 신도비가 있고 경북 안동군 녹전면 구송동 산 117의 3 번지 입니다. 비각은 대지가 111평, 전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익공식(2익공), 겹처마로 되어 있습니다. 문헌상 신도비 건립 기록은 있으나 그동안 수많은 전화로 망실되어 있다가 1971.11.26. 현재의 신도비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신도비는 귀부(거북 등)에 비신을 세우고 두 마리의 용 무늬 이수(비의 머리부분)로 되어 있습니다. 전면에는 上洛君忠烈公金方慶神道碑(상락군충렬공김방경신도비)라 씌여 있으며, 뒷면에는 행장(안동김씨 문온공파 세보 권1. P101. 충렬공(휘방경) 신도비문 참조)이 기록되어 있고, 비석을 바라다 보아 우측 옆면에 1971.10. . 학술원장 문학박사 이병도 근찬(謹撰), 후세손 의학박사 사달 근서(謹書)라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무더운 여름날에 후손인 나이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러 학생들이 답사를 온 것을 보고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충렬공(方慶) 할아버지 묘소. 충렬공 할아버지 신도비가 있는 곳에서 감애 방면으로 2㎞를 가면 자시람(자실암), 구송교가 나옵니다. 구송교를 막지나면 바로 우측에 "忠烈公金方慶墓所入口" 석제 팻말과 "光山金氏 禮安派 八鄕先祖 參判公 墓所入口" 석제 팻말이 같은 장소에 나란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구송교를 지나기 직전 우회전하여 마을쪽 농로와 작은 시내를 따라 1㎞이상 들어가면 능동(능리)마을에 도착하고 좌측에는 붉고 고운 모래바닥의 시냇물이 흐르고 우측에는 재실이 있고 그 뒷산에 충렬공 묘소가 있습니다. 풍수지리상 이름하여 배산임수의 명당터가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충렬공 묘소는 산 능선을 따라 가파른 언덕에 모셔져 있어 제단쪽은 3M정도의 석축으로 쌓아 올렸고 봉분쪽을 제외한 3면은 참배객의 안전을 위하여 돌난간을 둘러쳤습니다. 그리고 묘소는 상, 하 2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상단에는 봉분과 비석 2개가 있습니다. 봉분은 보통 봉분에 비해 비교적 크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봉분 앞면은 4각형중 한면의 형태로 조성한 후 낮은 호석으로 둘러 쌓았습니다. 비석중 작은 것은 비문의 판독이 불가능한 정도로 오래되었고, 귀부(돌거북 등) 위에 세워진 큰 비석은 건립한지 얼마되지 않은 듯 하였으며, 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高麗推忠靖難定遠功臣壁上三韓(고려추충정난정원공신벽상삼한) 三重大匡僉議中贊世子師上洛君(삼중대광첨의중찬세자사상락군) 開國公 諡忠烈 金方慶 之墓(개국공 시충렬 김방경 지묘) 상단과 하단은 일자로 늘어놓은 돌로 구분하였는데 가운데 상. 하단 경계면에 혼유석과 고석의 받침이 없는 상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단에는 작은 크기의 문인석 1쌍과 다소 큰 크기의 문인석 1쌍이 자리하고 있으나 크기만 다른뿐 같은 문인석 2쌍을 그렇게 설치한 이유를 아직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절 끝부위에는 망주석 1쌍이 설치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왕릉의 망주석의 경우 右柱上行, 左柱下行(우주상행, 좌주하행)의 세호(細虎)가 조각되어 있고 일반 묘소의 망주석에도 세호와 모습을 달리한 다람쥐 형태의 동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곳 망주석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충렬공(方慶) 할아버지 묘소와 관련된 전설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 바로 위에는 광산김씨 참판공 묘소가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광산김씨 참판공 후손들이 참판공 시향제를 지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면서 상석 위에 차려놓은 모든 제물을 뒤집고 흩뜨려 버렸습니다. 다시 차려 놓으면 흩뜨리고 다시 차려 놓으면 흩뜨리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광산김씨 종중 어른들이 숙의를 한 끝에 충렬공 할아버지께 먼저 시제를 지내고 참판공의 시향제를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그렇게 한 이후부터는 아무런 이상한 일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광산김씨 참판공 후손들은 우리 충렬공 할아버지께 먼제 시제를 올리고 나서 참판공 시향제를 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나는 음성공, 문온공, 충렬공 등 모든 직계 조상님들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아버지, 할아버지를 통하여 먼먼 조상에 이르고, 아들, 손자를 통하여 먼먼 미래의 후손에 이르는 그야말로 핏줄이 통하는 진한 유대감과 자긍심을 느끼게 되고 지금의 나를 조용히 되돌아보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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