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공 묘소 참배기(2001. 8. 24. 김윤만(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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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1-10-26 14:50 조회935회 댓글0건본문
문영공 할아버지 묘소 참배기
文英公(문영공)은 충렬공의 셋째 아드님으로 諱(휘)는 恂(순), 字(자)는 歸厚(귀후)입니다.
1258년(고종 45년) 태어나시어 1321년(충숙왕 8년) 64세로 돌아가시고
묘소는 1943년 천장이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1동 관악산 줄기에 모셔져 있습니다.
백범선생께서도 환국 직후인 1946년 한식 때 문영공 산소를 참배하셨다 합니다.
인터넷 문영공파종회 소개란에 사무실 및 연락처로 재실(永慕齋 : 영모재)내
김재영(031-424-5292)로 되어 있습니다만,
행사 및 단체 참배도 아닌데 폐가 될 것 같아서 혼자 참배하기로 하였습니다.
가는 길은 인덕원에서 비산동 4거리 방향으로 2번째 버스정류장 직전까지 갑니다.
그곳에서 우측 골목으로 100M쯤 가면 어린이놀이터가 나오고
두갈래 골목길중 좌측 골목길로 100M정도 더 올라가면 동산빌라가 있고
우회전금지 안내판이 있으며 좌측 골목길로 접어들면 조금은 고급스런 안양레지던스빌라 끝에
"안동김씨문영공종회" 간판이 달린 한옥 재실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또 하나의 길은 3번째 버스정류장에서 우측 골목으로 접어들어
(육교 : 인덕원에서 비산동 4거리까지 육교는 이곳밖에 없음)
관양중학교까지 와 다시 우측 골목길을 따라 올라와도 이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차량으로 오신 분은 이곳 골목 적당한 주차공간에 주차를 해야 합니다.
영모재는 전면4칸, 측면2칸의 시멘트기와로 지어진 한옥입니다.
동아유치원을 지나 약간의 곡선을 그리며 산행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에 차량진입금지 안내판이 나오고 30M∼40M쯤 더가면
바울주택(빌라) 쯤에서 우측 숲속쪽으로 길이 아닌 듯 하지만
사람이 오르내릴 만한 급경사를 이룬 길이 있습니다.
언덕에 올라서면 철망이 쳐진 밭이 있고 좌측 나무숲사이로 3기의 가족묘지가 보이는데
이곳이 문영공 후손으로 안양시의회의장, 경기도의원을 지내신 定默(정묵)공의 산소입니다.
정묵공 산소 옆으로 울창한 참나무 숲을 지나 100M쯤 가니
"齊平君夫人陽川許氏靈壇(제평군부인양천허씨영단)" 표석과 묘소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이 묘소가 문영공의 산소인데
잘못 생각하면 마치 어느 집안 양천허씨 부인의 묘소로 착각하고 지나치기 쉽겠더라구요.
"重大匡判三司事寶文閣大提學上護軍金公墓碣文(중대광판삼사사보문각대제학상호군김공묘갈문)
신도비를 보아야 비로소 이 묘소가 고려국 문영 안동김공의 묘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봉분은 호석으로 둘렀고, 혼유석과 상석이 있으며, 상석은 뒷받침석과 2개의 고석으로 받쳐 있습니다.
상석 옆에는 허씨 할머니의 표석이 있고, 망주석 1쌍과 신도비가 있습니다.
이곳 묘소의 특징은 잔디가 아주 길고 무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심지 주택가로 둘러 쌓인 울창한 숲속에 위치해 있어
인근에 사는 많은 주민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소풍을 오는 듯하였습니다.
제가 참배를 갔을 때만 해도 소주병이며, 과자봉지,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
버려진 양심을 주어 담다보니 큰 비닐봉지로 하나 가득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충렬공의 장자이신 선(선) 할아버지의 후손입니다만
방조이신 恂(순) 할아버지께 이렇게 참배를 하게되니
35℃∼36℃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기쁘고 상쾌한 마음 가득하였습니다.
문영공 할아버지의 참배 길은 도심지의 복잡한 주택가 골목길을 이리저리 지나야 하므로
조금은 복잡합니다.
아무쪼록 이 참배기가 길안내가 되어 많은 후손들이 문영공 묘소를 참배 하게 되고
나아가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이 나날이 커지기를 간절히 기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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