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유허지2-회곡동 유허비와 상락대(2001. 7. 26. 김주회(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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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1-10-26 14:45 조회1,206회 댓글0건본문
충렬공 김방경 할아버지께서 태어나시고 나중에 벼슬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신 遺墟碑閣 (안동시 풍산읍 회곡동)과 동네 앞 강건너편 江上절벽에 있는 충렬공께서 정자를 짓고 遊賞하시던 上洛臺碑(안동시 남후면 단호동)에 관련된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 문화유적총람 3편 (문화재연구소)
【유적명칭】고려 충렬왕 김방경 유허비(高麗忠烈王金方慶遺墟碑)
【관리번호】760-800-231-099
【지정사항】<지정사항 없음>
【유적종류】기타비(유허비)
【소 재 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
【시 대】조선시대
【관 리 자】기타(안동김씨대종회)
【유적내용】
고려 충렬왕 김방경 유허비(高麗忠烈王金方慶遺墟碑)는 높이 165cm, 폭 65cm, 두께 28cm로 1825년에 세워졌다. 비문에는 "인조 13년(1635)에 유허비가 실석된 것을 비로소 발견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훨씬 그 이전에 세워진 것은 알 수 있으나 그 연대와 장소는 미상이다.
숙종 43년(1717)에 관에서 다시 건립할 곳을 선정하였다. 영조 41년(1765)에 관에서 건너편 안산에 다시 비를 세웠고 전면 글씨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 썼다. 순조 14년(1814)에 후손들이 합력하여 건너편 안산으로부터 충렬공께서 평소에 소거하시던 초당유허(草堂遺墟) 임좌(壬坐)인 바로 이곳에 이건하였다.
지금도 건너편 안산 밭에는 전에 유허비가 서있던 좌태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옛모습을 방불케하고 있다. 현재 이곳의 유허비 거북좌대는 이건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적혀 있다.
【참고문헌】안동시립민속박물관, 1995, <<안동의 비석>>, 201-202.
【비 고】
⊙ 충렬공 유허비 및 비각 연혁 (유허비각內 있음)
1. 숭정을해 인조13년 (서기 1635년) 에 유허비가 失石된 것을 비로소 발견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훨씬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확신할 수 있으나 그 연대와 장소는 유감스럽게도 문헌에 기록이 泯滅(민멸)되어 未詳이다.
2. 숙종43년 정유 (서기 1717년) 에 官으로부터 다시 竪碑(수비)할 곳을 선정하였다 (以自官打量竪碑)
3. 숭정기원138년 을해 영조41년 (서기 1765년) 3월 일에 官에서 건너편 案山에 다시 碑를 세웠다. 비 전면 글씨는 大山 李象靖 선생이 쓰다 (유허비 규격은 높이 165cm, 가로 넓이 65cm, 두께 28cm)
4. 가경19년 순조14년 갑술 (서기 1814년) 에 移建成造都監(이건성조도감)에 前선전 永淳, 助役(조역)에 重玉(중옥) 聲鶴(성학), (九+鳥)財에 鳳翼(봉익) 등 후손들이 합력하여 건너편 안산으로부터 충렬공께서 평소에 所居하시든 草堂遺墟(초당유허) 임좌인 바로 이곳에 移建 서기 1814년 5월 25일 未時에 立柱하고 동월 28일 卯時에 上樑(상량)하다. (都木手는 前낭청 權亨中)
건너편 案山 밭에는 전에 유허비가 서있든 座台石(좌태석)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어 옛 모습을 방불케 하고 있다. 현재 이 곳의 유허비 거북 좌대는 이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거북 좌대의 규격은 높이 40cm, 길이 145cm, 가로넓이 125cm)
5. 구 비각은 근 200년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자연 노후 頻落(빈락)하여 후손된 자들로서 항시 송구한 감을 금치 못하여 오든바 금반 안동김씨대종회 총회에서 다시 重建할 것을 만장일치 가결하고 서기 1985년 7월 20일에 구 비각을 철거하고 다시 이 곳에 확장 중건 서기 1985년 7월 26일 15시에 立柱하고 동월 27일 12시에 上樑하다.
⊙ 족보
<유허비>
在안동부 서선면이니 지금의 안동군 풍산읍 회곡동이라. 숭정을해 1635년에 失石되었음을 발견하고 숙종정유 1717년에 自官打量(자관타량)으로 竪碑(수비)하였더니 영조갑술 1754년에 후손 永淳이 案山에서 옛 草堂터 임좌로 옮겼다. 유허비 前面 大山 李象靖 書
<대종회 연혁>
1985
9月15日에는 忠烈公 遺墟碑閣과 沿革碑를 一千二百七十二萬九千원을 들여 건립하였고
<대종회 연혁>
1998
檜谷洞 遺墟碑閣 락카칠을 五十萬원을 들여 하였고
⊙ 충렬공 (휘방경) 遺墟誌
충렬공의 유허는 안동군 풍산면 회곡동에 있으니 바로 이 터(墟)가 충렬공께서 탄생하신 곳이요 만년에 退官하시고 靜養하시다가 별세하신 곳이다.
공의 후손들이 그 터에 유허비와 비각을 세우고 于今에 이르기까지 계승하여 오고 있으며 유허지에는 礎石이 보존하여 있고 竹林이 叢立(총립)하여 있으며 천연井戶(우물)가 그대로 상존하여 있고 마을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강 건너 편에는 공의 別莊이 있던 上洛臺가 江上절벽에 우뚝 서 있으니 안동군 명소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곳에 서 있는 上洛臺碑는 수십년 전에 안동군수로 있던 金在煥씨와 후손 大容, 範容 제씨가 이곳을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회곡동 주변 임야는 안동김씨 충렬공파 문중 소유로 자고로 유전하여 후손들이 보호하여 오고 있으며 유허 뒷산에는 충렬공 位 죽주박씨 냉평국대부인 설단과 설단비가 건립되어 있다.
매년 음 10월 9일에는 전국 각처에서 후손들이 운집하여 享祀(향사)를 올리고 있다.
유허비각 옆에는 1976년 6월 30일에 대종회에서 재실(上洛齋)을 건립하였다.
⊙ 上洛臺碑
충렬공께서 젊으신 시절에 무술을 연마하시고 공께서 거처하시던 별장이 있던 곳을 영구히 기념 보존하기 위하여 수십년 전에 안동군수로 있던 재환씨와 후손 대용, 범용 제씨가 기념비를 세웠다.
어느 때인가 이 비가 넘어져 강으로 유실되어 1996년에 다시 세웠다.
상락대는 안동군 명승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위치 : 안동시 풍산면 회곡동 앞 낙동강 건너편에 있다.
⊙ 上洛臺 복원사업 완료 <대종회보 제56호, 1997. 4>
지난해 40만원을 예산에 반영하여 상락대를 복원한 바 복원한 그 자리가 옛 상락대 자리가 아님이 그 마을 노인들의 증언으로 밝혀져 원 위치를 확인한 바 현 장소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옛날 坐臺가 확인되어 今春 3월 9일 원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대종회 연혁>
1996
上洛臺를 四十萬원을 들여 복원하였으며,
<대종회 연혁>
1997
안동 上洛臺를 복원할 때 正位置를 잘못 파악하여 입석하였었는데 그 고장 노인들의 고증을 다시 들어 원 위치를 확인하여 바르게 옮겨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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