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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묵>의 시 소개
<근묵(槿墨)>은 34책으로 이루어진 첩장본(帖裝本)으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이 우리나라 선현들의 묵적 가운데 서간류의 소품을 수집하여 엮은 것이다. 수록된 작가는 고려 말의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조선초기의 정도전(鄭道傳), 강회백(姜淮伯), 대한 제국기의 이도영(李道榮)에 이르기까지 약 1136명에 달한다. 연대는 대략 600여 년에 걸쳐 있다. 작가의 신분별로 보면 임금에서 사대부에 이르며, 직업별로 보면 관료, 학자, 승려 등이 총 망라되어 있다. 또한 서체별로 보면 행서가 595점, 초서가 468점으로 행초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서는 57점, 전예는 16점으로 전예해행초의 구색을 모두 갖추었다.
문장의 내용면은 서간이 720점, 시고가 353점, 제발 및 기타 잡문이 62점으로 내용면에서도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근묵에는 600년 간에 걸친 우리 선현들의 생활사를 볼수 있기에 옛 사람의 사생활의 실태는 이러한 서간첩(書簡帖)이 아니고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중요한 사회사의 자료가 된다.
서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운필하여 바쁜 가운데 비필난초(飛筆亂草)로 휘두른 것으로 그 필치는 유려하고 창달하여 보는 사람들의 심목을 흔결(欣決)케 하는 감동을 지니고 있다. 아무런 제약과 의도적인 작태가 없는 서간의 서품은 그것이 글씨의 본바탕이며 작가의 개성을 그대로 살린 작품으로 근묵은 600년의 살아 있는 서예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서간형식의 변천과 서압(署押)의 양상을 연구할 수 있어, 역사, 민속, 사회사, 서법연구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서찰 해독 원문> 奉送 奏請使 李判書 聖主中興際 儲宮再請時 國家莫重事 敷奏豈容遲 天聽誠能動 兪音會有期 歸來報喜日 佇見荷恩私 石陵 金目卒
2) <퇴계학연구(퇴계선생 제자전서4)> 제18집 (1998, 국제퇴계학회 경상북도지부) --(2003. 5. 27. 주회(안) 제공)
(1) <言行錄(언행록)> "小學과 近思錄, 心經 가운데 어느 책이 가장 중요합니까" 라고 물었다. 선생(=퇴계)이 대답 하시기를 "小學은 체와 용이 고루 갖추어져 있고, 近思錄은 의리가 정밀하여 모두 읽지 않을 수 없지만 처음 배우는 사람이 공부하는 데는 心經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라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기에는 주자의 편지글보다 나은 것이 없다. 벗과 문인들의 자질과 병통이 모두 달라 재목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고 증세에 따라 처방하셨으니 수 많은 문답 가운데 어찌 우연히 나에게 적합한 것이 없겠는가? 진실로 침잠하여 음미하다 보면 마치 면대하고 가르침을 받는 듯 할 것이니 스스로 수양하는 공부에 어찌 도움이 적다 하리오." 라고 하셨다.
(2)<시(詩)> 매양 천연대(天淵臺)에 올라 홀로 탄식하였거니,35) 지금에사 그대 있어 천연(天淵)을 노래하네. 기공(沂公)의 오묘한 뜻 순공(淳公)에게 드러내었거니,36) 천년 뒤에 그 뉘 있어 옛 글을 풀어낼까.
(3)<선생(=퇴계)에 대한 공(=김수)의 제문> 산림에 해 긴데, 강학의 공 깊으셨네. 도(圖)와 잠(箴) 벌려 두고, 날마다 공경하셨지. 경(敬) 공부 이치(理致) 추구, 두 가지 고루 하셔, 사색과 실천으로 한 평생 보내셨네. 성취가 깊으시고 수립함이 우뚝하여, 푸른 하늘 흰 해처럼, 드높기 태산처럼, 성대(聖代)의 참된 선비, 하늘 백성 선각자로세. 일상의 요긴한 글 수수한 맛이 있어, 실천하고 남은 힘 시문(詩文)에 쏟아, 진위(晉魏)의 문인들 뛰어 넘었네. 거룩할손 선생이여! 드물게 나시는 분. 깊은 소양 두터운 쌓음, 펼치어 크게 이루셨네. 풍도 듣고 사모하여 멀리서 찾아왔지. 따뜻하게 맞이하여 부지런히 가르치사, 이끌고 깨우쳐 근본을 세우게 하셨네. 차례따라 인도하사 어리석음 깨치게 하시고, 깊은 넓은 학문으로 한량없이 베푸셨네. 아아 성인의 학문, 면면히 이어 온 한가닥, 선생이 얻으시어 끊어질 듯 이으셨네. ----- 생 략 ----- 오호라 선생이여, 오늘에 가시다니! 나라에는 기둥 없고, 세상은 길을 잃어, 선생이 나심으로 우리 학문 부지터니, 선생이 가심으로 우리 학문 외롭도다. 어리석기 나 같은 자, 다행히도 가르치사, 거듭거듭 깨우치고, 격려하심 간절했네
3) <대동야승> 내의 시 소개 (2003. 5. 14. 태영(군) 제공) 4월 호조 판서 김수(金 目卒)가 전주로부터 남원에 이르러 창고 곡식을 친히 검사하고, 창고의 문을 봉하고 인하여 사운(四韻) 한 편을 지어 사민(士民)에게 돌려보이기를
四月淸和佳節回 / 4월의 맑고 화창한 좋은 철이 돌아왔건만 十年鞍甲客心催 / 10년 동안 말 타고 갑옷 입은 객의 마음 재촉하네 雜花生樹迎人笑 / 온갖 꽃은 나무에 피어 사람을 맞아 웃고 好雨驅風拂面來 / 좋은 비는 바람을 몰아 낯에 스쳐 오네 嘗膽多時能唾手 / 쓸개를 맛본 지 여러 해라 용감하게 나아갈 수 있으나 平戎無策獨登臺 / 적을 평정할 계책이 없어 홀로 누각에 오르네 軍興食乏憂非細 / 군량이 부족하니 걱정이 적지 않은데
到底嚬眉亦可咍 / 가는 곳마다 눈썹 찡그리니 또한 가소롭네
하였다. 이날 밤에 김수가 부(府)의 서쪽 주포촌(周浦村)에 나와 머물고, 이튿날 심유경을 맞아 용두정(龍頭亭)에서 연회를 갖고 전라 우도로 가서 관청 곡식을 검사하였다
(임진왜란때 의병장 조경남(趙慶男)이 쓴 난중잡록(亂中雜錄) 속에서. 선조30년(1597).<대동야승>에서 옮김)
4) <나주벽상에 제하여> 시소개 (한시 원문 및 역문-2003. 10. 27. 태영(군) 제공)
題羅州壁上
吾先五代祖 / 우리 오대(五代)선조(先祖) (諱: 自行)께서 成化二年冬 / 성화2년(明나라年號, 朝鮮世祖十一年) 겨울에 作宰錦城館 / 금성(나주)의 목사(牧使)가 되시고 齊名勃海壟 / 명망은 발해의 롱(壟)과 가지런 하네 何從詢父兄 / 어느 곳에서 선조의 유풍(遺風)을 찾으리오 只自想音容 / 다만 스스로 선조의 음용(音容)을 회상(回想)하네 獨坐高樓夜 / 높은 루대(樓臺)에 외로히 앉은 밤에 沈吟月上峰 / 심음(沈吟)하노라니 달이 봉(峰)에 오르네. 몽촌(夢村) 김수(金 目卒)
5) 아계 이상국에게 주는 만사 (2004. 4. 12. 은회(익) 제공)
만사(挽詞)
여섯 살에 쓴 글씨가 필법도 기발하고 /六歲能書筆法奇 시문의 원천은 드넓어서 당시에 빛났네 / 詞源浩浩耀當時 천조의 사업을 이제 누가 병행한다지 / 天曹事業今誰並 말로의 청빈함은 내가 스승으로 삼던 바라 / 末路淸貧我所師 인간사 다하니 내 일도 다하고 / 人事凋零吾事盡 가을바람에 떨어지고 새벽바람 불어불어 / 秋風搖落曉風吹 토정의 유범을 이제는 보기 어렵겠네 / 土亭遺範今難見 오직 하늘가에 밝은 달만 알리라 / 惟有天涯明月知 판부사(判府事)[김수(金 目卒)]
6) 생원 김수(金 目卒)가 퇴계선생의 부음을 전해 듣고 참석지 못하고 보내는 통한의 만사 (2005. 5. 26. 태영(군) 제공) 출전: 퇴계전서29권
<문인 생원 김수(門人 生員 金 目卒)> 뇌문(誄文) 삼가 생각건데 선생께서는 타고 나신 자질이 도(道)에 가까워서 스승의 전수(傳授)를 기다리지 않고도 온오(蘊奧)한 진리를 일찍이 탐구하셨습니다. 자나 깨나 수사(洙泗)에 대한 생각이요 염락(濂洛)을 가슴에 복응(服膺)하여 탁연(卓然)한 그 지취(志趣)가 성현(聖賢)을 배울만 하였습니다. 대본(大本)이 이미 확립하여 넉넉하면 벼슬하거니, 장차 그 배양(培養)한 바를 미루어서 크게 세상에 베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임금이>하고프지 않으니 슬프구나 운이 막힌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그렇다면 거두어 안고 본래의 뜻이나 추구함이 나았습니다. 바라보니 저 낙동강 물이 끝이 없이 흘러가거니, 도(道)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를 버리고 어디로 찾아 가리오. 산림(山林)에 해가 길어 강학(講學)의 공이 깊어서 오른쪽엔 도서(圖書)요 왼쪽엔 잠규(箴規)라, 매일을 하루같이 공경하여 탐구 하였습니다. 경(敬)을 협지(夾持)하고 이(理)를 궁구(窮究)하니, 두 가지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정밀히 생각하고 힘써 실천하여 깨어있는 마음으로 세월을 보내니 조예(造詣)가 이미 깊어서 수립한 바가 탁연(卓然)하였습니다. 푸른 하늘에 빛나는 태양이요 높은 태산(泰山)에 우뚝한 교악(喬嶽)이라, 성스러운 시대의 참된 선비요, 하늘 백성의 먼저 깨달은 자였습니다. 포백(布帛)같은 글이 숙속(菽粟)의 맛이라, 여사(餘事)로 하는 문장이 이 또한 진위(晉魏)의 그것을 초월 하였습니다. 훌륭하구나 선생이시여! 간세(間世)의 기품(氣稟)으로 정출(挺出)하여 배양(培養)이 깊고 축적(蓄積)이 두터워서 참으로 크게 이루었습니다. 풍성(風聲)을 듣고 의리를 사모하여 멀리서부터 배우러 찾아오니, 접응(接應)이 화기(和氣)롭고 교회(敎誨)가 여일(如一)하였습니다. 이끌어 가르쳐서 근본을 세워주니 순리에 따라 질서가 있어서 가리워 우매(愚昧)함을 천발(闡發)해 주었습니다. 정밀하고 심오하고 호대(浩大)하고 광박(廣博)하여 매사(每事)의 응대(應對)에 궁함이 없었습니다. 생각건대 아 성학(聖學)이 면면(綿綿)히 이어 오는 한 오리의 털끝과 같았거늘, 선생을 얻어서 비로소 거의 끊어져가던 것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이루고 다시 남을 이루어 주는 것이 이것이 어찌 두 가지의 일이겠습니까? 경전(經傳)을 박흡(博洽)하고 의리(義理)를 천명(闡明)하되 털끝처럼 실올처럼 나누고 쪼개어서 언 것이 녹고 얼음이 풀리듯 하였습니다. 자양(紫陽)의 글에 평생의 공력(功力)을 바쳤으니, 번잡을 덜고 강요(綱要)를 추려서 이를 입도(入道)의 표적(標的)으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후인(後人)들이 여기서 얻은 바가 있었으니, 도(道)를 보위(保衛)하여 후세에 전해서 우리 동방(東方)의 유일한 분이 되었습니다. 언덕의 학의 울음이 멀리 울리고 귀인(貴人)의 행차가 깊은 산골로 들어오니, 나아가기 어렵고 물러나기는 쉬워서 소명(召命)이 있으면 문득 사양 하였습니다. 벼슬을 하거나 그만두거나, 조정에 오래 있거나 빨리 떠나거나 함이 모두 의리(義理)와 시기(時期)의 절당(切當)함을 따라서 하였으니 전원(田園)에서 의리를 마치는 것이 그것이 어찌 기필(期必)한 것이었겠습니까? ‘십도(十圖)’의 그림에서 성학(聖學)을 지적하고 ‘육조(六條)’의 상소(上疏)’에서 치리(治理)를 논하였으니, 간절하고 지성스러워서 오르지 생각하는 것은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성인(聖人)의 덕(德)이 중정(中正)하니 그 베품이 응당 넓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하늘이 이리도 인색하여 철인(哲人)을 그만 세상을 떠나게 한단 말입니까? 아 선생이시여! 여기에까지 이르고 말았으니 육신을 따라 도(道)가 또한 멸몰(滅沒)하여 우리의 도가 잘못되는 것입니까? 나라에는 주석(柱石)이 없어지고 세상은 시귀(蓍龜)를 잃었습니다. 선생이 살아계시면 사문(斯文)이 부지(扶持)되고 선생이 가시면 사문이 고단(孤單)하였습니다. 생각건대 어리석은 소자(小子)가 다행으로 가르침을 받았으니, 지난 해의 첫겨울 초하룻날에 남쪽으로 돌아와서 문간을 쓸고 봄바람이 이는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선생님께서 소경이요 귀먹어리인 자를 열어서 인도 하셨습니다. 반복하여 순순(諄諄)해서 면려(勉勵)함이 깊고 절실했으니 미련하고 우매(愚昧)함이 비록 고질이 되었지만 역시 경중(敬重)하여 법도(法度)로 삼을 줄 알았습니다. 헤어진 지 그 사이에 얼마나 되었습니까? 아직 한달이 채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갑자기 부음(訃音)이 닦치니 가슴을 쓸어 내리며 최절(摧折)하여 통곡(痛哭)합니다.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는데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안됩니다. 대들보가 무너졌으니 오당(吾黨)이 장차 어디에 의지합니까? 금옥(金玉)같이 정수(精粹)하고 윤택(潤澤)한 모습을 다시는 뵈올 수가 없습니다. 의문이 있은들 누구에게 물어보며 물어본들 누가 대답을 합니까? 끊어진 통서(統緖)가 망망(茫茫)하기만 하니 마음이 어찌 비감(悲感)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변변치 못한 몸이 또한 자유롭지 못하여 달려가 통곡할 길이 없으니 영원히 가시는 길을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남쪽을 바라보며 길이 호곡(號哭)하니 마음만그저 측달(惻怛)할 뿐입니다. 정(情)과 의(義)를 모두 저버렸으니 감한(憾恨)과 참괴(慙愧)가 아울러 몰아 닥칩니다. 천리(千里)에 애사(哀辭)를 봉함(封緘)하여 보내면서 미약한 정성이나마 기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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