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 휘(金 徽)1607(선조40)∼1677(숙종3)--(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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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휴제공 및 연보 소개

2. 묘소 사진

3. 친필 서찰 및 시문 소개

4. 문인화 소개

5. 낙관 소개

6. 졸재집의 사휴제공 관련 자료 소개

7. 묘비 건립기

8. 묘비문 소개

9. 각종 문헌 내의 기록 종합

 

 

 

본문

 

p11.png 1. 사휴제공 및 연보 소개

         1607(선조40)∼1677(숙종3)

조선의 문신. 화가. 字는 돈미(敦美), 호는 사휴정(四休亭)·사휴제(四休第)·만은(晩隱), 시양(時讓)의 아들. 1642년(인조2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봉교(奉敎)가 되었고, 1646년(인조 24년) 민회빈(愍懷嬪) 강씨가 억울하게 사사(賜死)되자 정언(正言)으로 재직하면서 사사(賜死)의 배후를 규명하라고 상소를 했다가 파직되었다. 1649년(효종즉위) 부수찬(副修撰)에 기용, 이조 좌랑과 정랑(吏曹正郞), 교리(校理), 응교(應敎), 헌납(獻納), 사간(司諫),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현종 연간에는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 (都承旨),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1665년(현종6)에는 경상도 관찰사에 이어 강화유수,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666년 남인(南人)의 탄핵으로 삭직(削職) 당했다가 1668년(현종 9)에 형조 참판(刑曹參判)이 되고, 대사헌을 거쳐 1675년(숙종1) 이조판서를 지내고 이듬해 예조판서, 개경유수(開京留守)를 역임하였다. 그림을 잘 그렸다. 묘는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문숙공(휘 제갑) 제각 뒤편에 있다. 2006년 4월, 묘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槿域書畵徵

 

<연보>

  1) 1세(1607) : 충북 제천에서 출생

  2) 36세(1642.인조20) : 문과 병과 급제

  3) 40세(1646. 인조 24) : 정언으로서 민회빈의 사사 규명 상소로 파직

  4) 43세(1649. 효종1) : 부수찬, 이조좌랑, 정랑

  5) 59세(1665. 현종6):경상도 관찰사, 강화 유수, 황해도 관찰사.

  6) 62세(1668. 현종9) : 형조참판. 대사헌

  7) 69세(1675. 숙종1) : 이조판서. 예조판서, 개성유수

  8) 71세(1677. 숙종3) :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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