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사형

(목록 제목을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1. 익원공 소개 및 연보

  2. 묘소 및 영정

  3.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4. 낙포재 및 신도비

  5. 익원공 제작 <향약제집성방>

  6. <洛圃政案> 소개

  7. 밀직사사공(휘 승) 단소

  8. 삼공신 회맹문

  9. 익원공 신도비문

10. 익원공 시 소개

11. 각종 문헌 기록 내용

12. 해인사사적 기록자료

13. 부조묘 소개

 

 

본문

p11.png 12. <해인사 사적에 들어 있는 익원공 기록 자료>

          (2007. 9. 20. 윤식(문) 제공)

대장경은 고려조부터 국가의 주요 유물로 특별관리를 받아 왔습니다. 태조 건원릉에서, "1413년(태종 13년)에 해인사 대장경을 인출해 개경사에 봉안하였다."는 내용이 있기에 별도 기록이 있을 것으로 보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해인사의 사적을 기록한 <가야산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과 <해인사사적(海印寺寺蹟 )>에서는 1413년에 대장경을 인출한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홍무 26년(1392년) 7월 또는 27년(1393년)에 대장경을 인출한 기록이 있습니다.

홍무 26년은 태조가 조선을 창업해 왕위에 오른 해이고, 홍무 27년(태조 2년) 3월 15일은 태조가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공포한 때입니다.

혹시 이때 인출한 대장경을 태조 사후에 개경사에 봉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대장경 인출 기록에 익원공(휘 사형) 할아버지 휘자가 들어 있어 당시 익원공의 정치적 위상을 짐작케 합니다.

특히 '상락백'이라는 작호와 함께 식읍 내용이 적혀 있어 좀더 자세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 : 국립중앙도서관 <海印寺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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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대장경 인출 및 개경사 봉안 기록

조선왕조실록 중 태종실록(태종 13년 3월과 5월) 기사에서 “1413년(태종 13년)에 해인사 대장경을 인출해 개경사에 봉안하였다.”는 관련 내용이 추가로 확인되었습니다. 태종은 1413년 3월 11일 태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개경사에 안치할 목적으로 합주 해인사에서 대장경을 간행케 하고, 5월 28일에 대장경을 개경사로 옮겨 1414년 5월 19일 법회를 가졌습니다.

이 내용을 <해인사사적> 등에서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하여 추가합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관련 자료입니다.

 

■ 태종실록 > 태종 13년(1413년) 3월 11일

태종 25권, 13년( 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3월 11일 경인 2번째기사

개경사에 안치할 목적으로 《대장경》을 해인사에서 인행하게 하다

 

《대장경(大藏經)》을 해인사(海印寺)에서 인행(印行)하게 하였다. 풍해·경기·충청도 관찰사에게 전지하여, 그 도에서 만든 경지(經紙)2490) 2백 60속(束)을 경상도에 체수(遞輸)하게 하고, 또 경상도 관찰사에게 전지하기를,

 

“지금 체수한 경지(經紙)를 해인사로 전수(輔輸)하여 대장경을 인행함이 옳으나, 그 인출(印出)할 때에 제연(諸綠)2491) 과 중[僧] 2백 명에게도 삭료(朔料)를 모두 지급토록 하라.”

하니, 임금이 태조가 부처를 좋아하여 일찍이 개경사(開慶寺)를 세웠다 하여 또 《대장경》을 인출하여 여기에 안치함이었다.

 

【영인본】 1 책 665 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 *사상-불교(佛敎) / *공업-수공업품(手工業品)

[註 2490]경지(經紙) : 대장경 용지. ☞

[註 2491]제연(諸綠) : 여러 관계 되는 사람. ☞

 

■ 태종실록 > 태종 13년(1413년) 5월 28일

태종 25권, 13년( 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5월 28일 병오 5번째 기사

합주 해인사에서 찍어낸 《대장경》을 개경사에 수송하다

 

《대장경(大藏經)》을 개경사(開慶寺)에 수송하였다. 이 앞서 승도(僧徒) 2백 명을 모아 자량(資糧)을 주어 합주(陜州) 해인사(海印寺) 대장경을 인출(印出)하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수송하여 개경사에 가져다 간직하니, 태조(太祖)의 명복(冥福)을 베풀기 위함이었다.

【영인본】 1 책 672 면

【분류】 *사상-불교(佛敎) / *출판-인쇄(印刷)

 

■ 태종실록 > 태종 14년(1414년) 5월 19일

태종 27권, 14년( 1414 갑오 / 명 영락(永樂) 12년) 5월 19일 신묘 2번째 기사

《대장경》을 개경사에 운반하므로 법석을 베풀다

 

법석(法席)을 개경사(開慶寺)에 베풀었으니, 《대장경(大藏經)》을 운반하기 때문이었다. 내자시(內資寺)에 명하여 공판(供辦)하도록 하고, 또 정포(正布) 2백 필과 저화(楮貨) 3백 장과 저포(苧布)·마포(麻布) 각각 3필을 포시(布施)하게 하였다.

 

【영인본】 2 책 18 면

【분류】 *사상-불교(佛敎) / *금융-화폐(貨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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