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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7. 태영(군) 제공) 敎 三道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 金永綬 書 王若曰 西原擁旄 未半載 而勞예克著 南困移節 統三路 而委寄斯隆 廟剡旣完 宸簡非偶睠 彼環海巨鎭 實是有國重防 摠水陸節制之權 營開細柳 振湖嶺要衝之地 波接扶桑 臺隍列 襟帶之形 控馭殆數千里 樓櫓壯 衣여之備 措置餘幾百年 夫何保障之雄蕃 只見弊막之蝟集 昇平巳久 戎政一任其疎虞 易相仍 營務未暇於修擧 錢穀之虛簿徒擁 寧不寒心 舟楫之繕補 多愆在所 釐革 嗟凋채之 若是緊 倚毗之屬 誰 惟卿 投筆初齡裹 革壯志 去就不苟下邑之紱 遽投威望 頗優北門之鑰 久掌豹鞱 略施於嶺困 奚但氷蘗之播譽 雉堞改觀於湖營 殆類旌旗之變彩 顧才猷 歷試於外內 惟誠勤 周篤於後前 玆授卿以三道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 卿其祗服非常之恩 益勵報效之道 運籌釐 殫綢繆於未陰 繕甲峙糧 備警急於不日 염嬉久而成習 거忽振刷之方 宿弊從以多端 宜先矯捄之策 自餘臨機措劃 亦在隨便弛張 於戱 特授之意有存 何拘資歷 酬報之義 自異勉殫 忱誠 閑山壁留 忍說龍蛇之 長海波偃 庶籍熊虎之姿 故玆敎示 想宜知悉 乾隆五十年 十二月 初三日
<번역문> 삼도수군통제사겸경상우도수군절도사 김영수에게 교하는 서(교서)
임금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청주(충청도병영)를 지휘하라는 임금의 절모(지휘권을 알리는 신표.병부.깃대)를 지닌지 반년이 안 되는데 힘쓴 수고가 능히 들어나서 남쪽 절도영으로 절모를 옮겨서 충청, 전라, 경상 세 길을 통어하게 하니 맡겨 부탁함이 이에 융숭하다. 정부 결단이 이미 잘되었으니 임금의 편지가 우연한 은혜가 아니다. 그 곳은 바다에 있는 큰 진영이요 실로 나라의 무거운 관방임이 분명하다. 바다와 육지의 절제권을 모두 가지니 병영에는 가지가 가는 버드나무가 만개하고 호남과 영남의 요충지를 진무하니 파도는 동쪽 해 뜨는 곳에 접한다. 돈대와 물 없는 해자가 늘어서 있으니 요해처는 거의 수천리를 제어하여 다스렸다. 성의 망루가 견고하니 의복 준비는 수 백년 넘게 쌓인다. “대저 어떻게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여 위해를 막는 큰 군영인데 단지 폐단이 고슴도치 털처럼 많이 몰려있음만이 보이는가 평화로움이 오래 계속되니 군정은 소홀히 다루는 잘못에 오로지 맡겨졌고 바뀌고 교체함이 잇따르니 군영 업무는 행사를 깨끗이 치르느라 여가가 없어 곡식과 돈의 거짓장부는 다만 겨드랑이에 낄 뿐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랴 전함을 고치고 보충하자니 많은 허물이 그곳에 있고 개혁하자니 기력이 쇠하여 앓음을 탄식한다. 이와 같이 긴급하니 의지하고 맡길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경이 젊은 나이에 붓을 던져버리고 장한 뜻을 싸거나 펼치니 물러가고 나아감은 가장 하읍의 고위직에 구애받지 않았다. 위세와 명망을 던져버리니 북방의 방비가 아주 좋아졌다. 오랫동안 맡은 용맹한 병법의 비결을 이제 영남지방 병영에서 다스려 실시하니 어찌 싹을 뿌렸다는 칭찬을 헛되이 식혀 버리겠는냐? 성벽(城壁)이 남쪽 군영에서 다시 고쳐져 보여질 테니 거의 깃발 색깔이 다르게 바뀌는 것과 같을 것이다. 재주를 돌아보면 지방과 중앙에 두루 쓰였고 정성스러운 노력을 생각하면 뒷자리와 앞자리를 가리지 않고 두루 전일 하였다. 이에 경에게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를 제수하니 경은 그 비상한 은혜를 받들어 보답하여 나타낼 방도에 더욱 힘쓰라.
계책을 짜서 폐단을 이정하는 일은 촌음을 아껴 얽어매는데 힘을 다하고 갑옷을 수리하고 군량을 쌓아두는 일은 하루가 멀다 하고 놀라듯 서둘러서 준비하라. 직무를 게을리함이 오래되어 습관이 되었으니 어찌 구태를 일소하는 방도를 소홀히 하겠는가. 오래된 폐단이 이에 따라서 아주 많아지니 마땅히 고쳐 구할 방책을 먼저 하라. 그 나머지 시간에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조치하는 것 또한 편한대로 느슨하게 하든지 당기든지 하라. 아아. 특별하게 제수하는 뜻이 존재하고 있으니 어찌 자급과 경력에 구애 받겠는가 보답하는 뜻이 힘써 빠짐없이 함과는 스스로 다르다. 한산도 벽에 남긴 뜻을 정성스럽게 하여 임진왜란의 치욕을 견디며 말하라. 큰 바다에는 파도가 누우니 바라건대 곰과 호랑이의 용맹한 자태를 밟으라. 그래서 이에 교시하니 생각하여 마땅히 자세히 알라. 건륭 50년(1785년 정조9)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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