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1)발간년도 : 1979년 12월 2)총 수 : 총 10권 3)구성 : 권1-수권, 권2-밀직사사공파, 개성윤공파, 군사공파, 권3-전서공파, 부사공파, 권4-문온공파, 안정공파 도평의공파, 권5-제학공파, 판삼사공파, 권6.7-안렴사공파, 권8.9-익원공파, 권10-익원공파, 서운관정공파, 정의공파
4) 기미보 서문(己未譜 序文) (2007. 3. 1. 태영(군) 제공) 지금부터 三百十九년전인 선조十三년 경진년(庚辰年 1580년)에 우리 김씨(金氏)의 족보편찬(族譜編纂)이 비로소 이루워졌으니 족보(族譜)가 있게 된 이후로 성씨(姓氏)의 근원(根源)이 멀기로는 우리의 성(姓)과 같은 이가 없다. 오직 우리 시림(始林)의 김씨(金氏)는 대보공(大輔公)에서 비롯하여 경순왕(敬順王)에서 융성(隆盛)해졌으니 신라(新羅)에서 고려(高麗)에 내려와 상락군 충렬공(上洛君公烈公)에 이른 후로 장상(將相)과 거경(巨卿)이 상접(相接)해서 일어나고 충효(忠孝)와 도덕(道德) 문장(文章)이 찬연(燦然)하여 사기(史記)에 소명(昭明)하게 기록 되었거늘 불초 내가 또 다시 무엇을 기술(記述)하리오. 우리 안동김씨(安東金氏)는 二천여년의 오랜 근원(根源)으로부터 파(派)가 멀고 자손이 번창하여 국내외(國內外)에 흩어져 살고 있으므로 족보(族譜)를 통합(統合)함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나 지난 一九七七년 즉 정사년(丁巳年) 十一월에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수보(修譜)할 뜻을 전국 각파(各派) 종인에게 물으니 거개(擧皆)가 즐겨 찬동(贊同)하였다. 다음해 무오년 이월(戊午年 二月=一九七八年)에 경향각지(京鄕各地) 종친(宗親)에게 통지서(通知書)를 발송(發送)하고 수단(收單)을 부탁(付託)하여 누락(漏洛) 혹(或)은 취사(取捨)에 차별(差別)이 없도록 엄정(嚴正)을 기(期)해서 수단(收單)을 취합하여 불과(不過) 二년만에 인쇄(印刷)에 회부(回附)하여 완공(完工)을 보게 되니 이 보책(譜冊)의 성취(成就)로 일목요연(一目瞭然)하고 완연(完然)하게 호산수천리(湖山數千里) 밖에서도 서로 직접 대하는 것과 같고 후에 이 보책(譜冊)을 보는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일가간에 친목하는 마음이 스스로 유연(油然)하게 일어남을 금치 못할 것이니 조상을 받들고 일가간에 친목하는 정의(情誼)가 어찌 우리 종친(宗親)들의 다행(多幸)한 일이 아니겠는가. 또 우리 김씨(金氏)가 비로소 안동(安東)으로 관(貫)을 봉(封)한 지가 천년(千年)이 가깝도록 오래 되었으나 일찍이 우리 김씨회관(金氏會館)을 확보하지 못하여 식자층(識者層)에서는 이를 개탄(慨嘆)하고 계획(計劃)함이 오래더니 다행히 작년(昨年) 가을 七월에 우리 김씨(金氏)의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서울 도봉구 번동 종중(宗中)에서 희사(喜捨)한 대지처분금(垈地處分金)을 비롯하여 뜻있는 여러 종친(宗親)의 희사성금(喜捨誠金)과 수보잉여금(修譜剩餘金)으로 대종회관(大宗會館)을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 배봉산 언덕 아래에 있는 거대한 신축건물(新築建物)을 매치(買置)하게 되어 그 규모(規模)가 웅대(雄大)하고 화려(華麗)함이 비길데 없고 우리 중시조(中始祖) 충렬공(忠烈公)이후로 七백년 동안에 이르러 비로소 대종회관을 마련하게 되니 이 어찌 우리 김씨(金氏)의 일대 다행(一大多幸)한 일이 아니겠는가?
오직 중앙대종회장 명회(明會)씨의 관후(寬厚)하고 인자(仁慈)한 뜻과 상무이사 윤회(崙會)씨의 가상(嘉尙)한 계획(計劃)과 근실(勤實)과 정성과 힘이 이에 주효(主効)되어 이 거대사업(巨大事業)을 이루었고 문득 선세(先世)의 쌓인 음덕(蔭德)과 청행(淸行)이 하늘과 더불어 무궁무진토록 은은히 흘러 금세(今世)에 이르러 복을 얻어 오늘의 번창함을 이루었으니 후손(後孫)들에 있어 감명(感銘)함이 어찌 그 끝이 있으랴. 우리 김씨(金 氏)의 대보(大譜)가 지금까지 이미 일곱 번째에 이르렀다. 지나간 을유년(乙酉年=一九四五년) 八.一五 광복(光復)으로 일제 삼십육년(日帝三十六年)의 질곡(桎梏)속에서 벗어나 해방(解放)이 되니 기쁘고 또 기쁘도다. 그러나 국제정세(國際情勢)가 둘로 갈라지고 조국(祖國)이 남북(南北)으로 분단(分斷)되어 철벽(鐵壁)같이 막히니 슬프고 슬프도다. 남북을 서로 바라보면서 얼굴을 대할 수가 없으니 북한(北韓)에 살면서 합보(合譜)를 같이 못하는이가 그 얼마나 많겠는가? 이는 대세(大勢)에 구애(拘碍)됨이요 결코 정의(情誼)가 박(薄)한 것은 아니다 시래송풍(時來送風)의 기적(奇蹟)이 오는 날에는 유한(遺恨)을 쓸어버리고 남북 종친과 더불어 함께 합보(合譜)할 후일(後日)을 다시 촉망(囑望)하노라. 수보(修譜)의 의의(意義)는 위로 선조(先祖)를 존중(尊重)함에 있고 아래로는 종족(宗族)이 돈목(敦睦)함에 있는데 족보(族譜)가 없으면 그 조상(祖上)이 누구인지 알수없으며, 그 족친(族親)이 누구인지 알수없으니 만약에 어느덧 세월이 흘러가고 수보(修譜)를 하지 못하면 일족(一族)의 소목분별(昭穆分別)을 어찌 다 알수 있겠는가?
수보업무(修譜業務)는 하루의 지체(遲滯)도 용납(容納)할 수 없는 것인데 놀랍게도 안렴사공후(按廉使公后) 양촌 윤회(陽村 崙會)는 세상 돌아가는 양상을 보고 항상 이를 개탄한 나머지 쌓여 내려온 허다(許多)한 난관(難關)과 고생(苦生)을 무릎쓰고 합리적인 의론(議論)과 정확(正確)한 계획(計劃)으로 여러 종친(宗親)들을 설득(說得)시켜 이 대보(大譜)를 완성하고 또 우리 대종회관도 확보하였으므로 그 선조추모(先祖追慕)의 정성과 종친돈목(宗親敦睦)의 마음으로 정성껏 부지런히 노력한 그 공로가 지대(至大)하였으니 이 어찌 후손(後孫)들을 위하여 다행한 일이 아니리요.
가만히 생각하니 지난 순묘 을유년(純廟 乙酉年=一八二五年)에 불초 나의 고조고(高祖考 護軍公) 휘 우원(諱禹元)께서 수보(修譜)의 일을 후손(後孫)에게 시범(示範)하여 주셨고 역대선현(歷代先賢)의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에 자상(仔詳)하게 기술(記述)하였으니 어리석고 우둔한 후손이 수보(修譜)의 식견(識見)과 기량(器量)이 선인(先人)에게 미치지 못하여 나 스스로 가슴 답답함을 금치 못하거늘 어찌 감히 쓸데없는 말을 하리요만 오직 후인(後人)에게 바라는 바는 더욱 연구(硏究)하고 공부(工夫)하고 힘써서 영세(永世)토록 일가간에 돈목(敦睦)을 지킨다면 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종중(宗中) 여러분의 소청(所請)이 있어 내가 적임(適任)이 아님을 알면서 외람(猥濫)하게도 상임고문(常任顧問)이란 중임(重任)을 맡아보게된 관계로 대보(大譜)가 완성(完成)되자 종중여러분께서 나에게 한마디 말을 써달라 하기에 사양(辭讓)치 못하고 감히 붓을 들어 대략(大略) 소감(所感)의 일단(一端)을 약술(略述)하노라.
충렬공(忠烈公) 二十二대손(代孫) 이호(利浩) 근서(謹序)
<기미보 증보판 발행> (1979년 기미보에 일부 내용을 추가하여 약간 권을 재발행 한 것)
1) 족보명 :기미보(대동보, 증보판) 2) 저자 : 안동김씨대동보편찬위원회 3) 출판사 : 보전출판사 4) 출판일 : 1980년 8월 5) 도서내용 : 총10권(권1-수권, 권2-밀직사사공파, 개성윤공파, 군사공파, 권3-전서공파, 부사공파, 권4-문온공파, 안정공파 도평의공파, 권5-제학공파, 판삼사공파, 권6.7-안렴사공파, 권8.9-익원공파 권10-익원공파, 서운관정공파, 정의공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