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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2. 5. 은회(익) 제공) 형태서지 권수제 柏谷先祖詩集 판심제 柏谷集 간종 卦印淨寫本 간행년도 筆寫年未詳 권책 不分卷 7책 행자의 수 原集 : 11행 21자, 附錄 : 10행 22자 반곽의 크기 23.8×19.5(㎝) 어미 原集 : 無魚尾, 附錄 : 上二葉花紋魚尾 소장처 後孫 金相馨 도서번호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104
저자 성명 김득신(金得臣) 생년 1604년(선조 37) 몰년 1684년(숙종 10) 자 子公 호 柏谷, 龜石山人 본관 安東
가계도
행적
기사전거 : 行狀草(金可遠 撰), 墓碣銘(李玄錫 撰)에 의함
편찬 및 간행 저자의 시문은 사후 얼마 안 되어 親孫 金可行과 外孫 李濂에 의해 정리가 이루어졌다. 李瑞雨의 서문(1686)에 의하면 孫 金可行이 詩文의 刪定과 아울러 서문을 부탁하였다고 하였으며, 朴世堂의 〈與李甥景周〉(1687)에는 유문의 산정과 교정 과정이 자세히 실려 있다. 朴世堂은 자신의 사위이자 저자의 외손인 李濂의 부탁으로 「柏谷集」의 中草本을 교정하였는데, 시문의 취사선택, 序文의 작성, 誤字와 俗字의 교정 사항뿐만 아니라 正本을 쓸 때 반드시 교정본을 준칙으로 삼아 誤字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序文은 大字로 쓰지 말고 본문과 같은 크기의 글자를 쓰라는 세세한 사항까지 지적하였다. 따라서 「柏谷集」의 편차와 교정이 1687년에 일단 朴世堂에 의해서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전해지는 4권 1책의 필사본(한45-가454)은 다양한 수정사항이 표시된 교정본이며, 이를 바탕으로 1730년경 간행된 것이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D3B-411)에 있는 5권 1책의 목판본이다.《초간본》 초간본과 필사본을 비교해 보면, 초간본에는 필사본의 수정사항 즉 誤字의 교정, 글자의 도치와 첨입, 小註의 처리 등이 모두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朴世堂이 선정한 文과 詩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 다만 필사본은 권4 이후에 隨錄諸卷이라 하여 타인의 시가 抄錄되어 있으나 간본에는 권5에 〈草堂序〉, 〈邀西岳兩上人碩賢道淸序〉, 〈謝贈盆梅序〉, 〈金剛錄〉, 〈讀數記〉 5편의 문이 실려 있다. 시의 편차와 순서는 두 본이 같으나 분량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권1 五言絶句 68수, 권2 七言絶句 136수, 권3 五言律詩 144수는 같고, 권4 七言律詩가 필사본은 21수, 간본은 63수이며, 둘다 권두에 朴世堂의 序만 실려 있고, 발문이나 부록 등이 없다. 「柏谷集」은 이 외에 9대손인 金相馨氏가 家藏해 오던 부록ㆍ원집 7책의 卦印淨寫本이 1985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 출간되었다. 초간본이 시 410여 수와 문 5편에 불과했던 것에 반해 이 卦印淨寫本은 1500수 이상의 시와 180편의 문을 수록하고 있다. 이 卦印淨寫本의 발문에서 “「久堂集」간행시에 함께 1책이 간행되었다고 하나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으며, 〈記聞錄〉에서 “久堂公(朴長遠)이 柏谷集 간행 전에는 내 문집을 간행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후에 「久堂集」을 간행할 때에 후손이 선조의 유훈을 어기기 어려워 공의 문집 겨우 1권을 내었다.”라고 하여 본집 초간본의 간행이 久堂 朴長遠의 후손에 의해 「久堂集」간행 때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久堂集」은 1730년 曾孫 朴文秀가 慶尙道 觀察使 재임 시 大邱에서 간행하였다. 따라서 초간본은 1687년 朴世堂의 산정과 교정을 거쳐 정리된 뒤 定稿本으로 전해져 오다가 1730년경에 朴長遠의 후손에 의해 간행된 듯하다. 이후 초간본이 너무 소략하게 이루어졌기에 후손들이 다시 유문을 수집 정리하고 부록을 보충하는 등 간행을 도모하였으나 가세가 부실하여 이루지 못하고 卦印淨寫本으로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淨寫 경위와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본집의 내용 중에 6대손인 金由憲의 기록이 있으므로 대략 純祖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서의 저본은 원집 7책과 부록이 합쳐진 卦印淨寫本으로 후손 金相馨氏 소장본이다. 기사전거 : 序(朴世堂ㆍ李瑞雨 撰), 與李景周(朴世堂, 西溪集 卷20)에 의함
저본의 구성과 내용 본집은 원집 7책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머리에 자세한 목록이 실려 있다. 두 편의 서문 중 李瑞雨의 序는 부록 내에 있고, 朴世堂의 서는 부록 뒤에 실려 있어 일반적인 문집 구성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책1~4는 詩로, 약 1500여 수의 시가 冊마다 詩體別로 편차되어 있고, 각 체 내에서의 배열은 작품연도를 확인할 수 없어 확실치는 않으나 대략 연대별로 수록되어 있다. 본문 내에 달린 註는 편찬자의 것과 저자의 自註도 섞여 있고, 頭註에는 誤字에 대한 교정사항이나 異本과의 대조 사항이 실려 있으며 내용주로 들어가야 할 부분도 종종 있어 문집의 체제가 완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내용은 크게 저자가 유람한 지역의 敍景詩, 紀行詩, 〈塞下曲〉, 〈次唐音韻〉과 같이 시공부를 위해 唐詩의 韻과 제목을 따서 지은 詩, 교유하던 명사들과의 次韻詩, 贈答詩, 挽詩와 〈夜吟〉, 〈偶吟〉 등의 敍情詩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책1은 오언절구(253)와 육언시(7), 책2는 칠언절구(469), 책3은 오언율시(462)ㆍ오언배율(14)ㆍ오언고시(15)이며, 책4는 칠언율시(286)ㆍ칠언고시(30)이다. 부록의 〈搜錄〉과 〈記聞錄〉에는 저자의 일화와 함께 문장에 대한 諸家의 평이 실려 있어 참고할 만하다. 저자는 시의 창작에 있어서 표현의 사실적인 묘사에 중점을 두어 ‘寫景逼眞’의 정신을 강조해 왔으며 매우 노력을 들여 다듬고 고쳤다고 한다. 평자들도 저자가 敍景詩 특히 七言詩에 뛰어나다고 하였다. 작품 중 특히 당시에 膾炙된 것을 몇 개 든다면, 〈龍湖〉는 唐音과 다를 바 없다는 孝宗의 칭찬을 들었고, 〈龜亭〉은 澤堂 李植의 극찬을 받아 文名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龍山詩〉는 임금이 병풍에 쓰도록 명하기까지 하였다. 이 밖에 洪萬宗이 높이 평가한 〈木川途中〉이나 〈雨後淸江〉도 격조가 높아 唐詩에 가깝다는 중국 사신의 평을 들어 회자되던 시이다. 책5~7은 文으로 186편의 문이 문체별로 분류되어 있다. 책5는 46편의 序와 19편의 記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堂, 亭의 記文이며, 〈小山集序〉, 〈關東別曲序〉 등이 실려 있다. 또 〈古文三十六首讀數記〉는 부록의 〈讀數記〉와 일부 내용이 중복되는데 저자가 만 번 이상 읽은 古文의 제목과 읽은 횟수를 기록한 글로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학문에 힘썼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책6은 〈先考遺稿跋〉을 비롯해 跋文 4편, 柳澯, 金時進, 李明徵, 張留, 金聲發 등의 墓碣銘 11편, 論, 策, 說 등의 雜著가 실려 있다. 이 중 〈評湖蘇芝石詩說〉은 鄭士龍, 盧守愼, 黃廷彧, 權?의 시를 비교 평가한 것인데 權?을 시의 宗正으로 삼았다. 〈歡伯將軍傳〉, 〈淸風先生傳〉은 각각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것으로 傳記文學의 한 형태이다. 또 先考와 黃宗海의 行狀, 月課로 지은 〈代張旭寄吳道子書〉를 비롯해 간단한 書 6편이 실려 있다. 책7은 ?儷文으로 敎書와 不允批答, 箋文, 祭文 등의 應製文 29편과 上樑文(13), 序(10), 書(6), 擬表(1)와 雜錄이다. 잡록은 古文을 읽은 횟수와 감상을 아울러 기록한 것이고, 〈祭儀〉와 〈冠巾〉은 諸書와 명사의 말 중에서 祭儀 관계 기록을 모아놓은 것이다. 附錄으로는 李玄錫이 지은 墓碣銘과 孫 金可遠이 撰한 것으로 추정되는 行狀草가 있으며 祭文이 수록되어 있다. 또 〈讀數記〉와 6代孫 金由憲이 쓴 〈書讀數記後〉, 그리고 저자 관련기사를 모아놓은 〈搜錄〉과 〈記聞錄〉이 있다. 끝으로 〈終南叢誌〉는 洪萬宗의 「詩話叢林」에서는 모두 46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저자와 관련있는 8항목만 뽑아 놓았으며 그나마 저자의 글인지 확실치 않다는 편자의 주가 달려 있다. 필자 : 金成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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