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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2. 28. 김발용, 김주회 제공) 2005년 2월 27일 일요일 아침 9시, 서울 종합운동장 맞은편에서 버스 1대가 제법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출발하였다.
여주에서 11시에 개최되는 우암 김주문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서울과 경기북부에 거주하는 우암 선생 후손 여러분을 비롯하여 역자이신 고려대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님, 출판사 ‘시간의 물레’ 권호순 사장님, 교정감수를 맡아주신 인사동 호고당 재갑(군)님, 멀리 제주에서 올라오신 제주 문화재위원 익수(제)님, 문중 원로이신 재철(안)님, 성회(안)님,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믿음직한 안사연팀(영환, 영윤, 상석, 윤만, 은회, 발용, 주회, 태우, 태영, 항용)이 동승하였다.
용주 사무총장님 3형제 전 가족을 비롯한 오늘 행사를 준비하는 문집발간 추진위원회 팀은 아침 7시반부터 미리 행사장에 집합하여 행사 준비에 들어갔다는 전언이 있었다.여주가는 1시간 남짓되는 동안에도 항용님의 능수능란한 사회진행으로 모든 일가님들의 소개에 버스 안은 반가움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미리 준비되지는 않았지만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역자의 한 말씀, 우암 선조님의 연보 소개, 고향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 선영 소개, 그리고 여주와 관련된 이야기 등을 듣다보니 우암 김주 선조님에 대한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10시 조금 넘어 여주터미널 도착, 버스에서 내려선 여주 터미널 앞마당은 일기예보대로 날씨 한번 화창하다. 봄 기운이 완연하다.
태인 대종회장님, 재택 안렴사공파종회 회장님, 영묵 제학공파 회장님, 학응 문영공종회 회장님을 비롯하여 여주, 서울, 괴산, 오창 등 경향각지에서 많은 일가님들께서 속속 도착하였다.
터미널 2층에 올라서니 행사장(봉황부페)은 널찍하니 보는 눈이 편안하다. 입구에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받아든 <국역 우암김주선생문집>.
통상 고문서는 번역본으로 인쇄되어 나온 것이라도 거무딕틱하고 둔탁한 표지에 거부감이 앞서는 것이 보통인데, 우암집은 80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임에도 크기도 아담하고, 표지도 산뜻하고 심플하니 받아든 손이 고급스럽고 조심스럽다.
행사장은 어느새 하객들로 가득차서 준비해 둔 의자 180개가 거의 다 찼다. 오늘의 출판기념회는 우리 문중의 안렴사공 파종회, 문단공(김주) 종중과 여주 향토문화 발전의 중심인 여주문화원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뜻깊은 행사다. 여주문화원 창립 40년이래 이런 행사는 처음이라고 한다. 문중의 행사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관심을 유도하고 널리 홍보하는 좋은 계기라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진다. 사회자(여주문화원 사무국장)의 안내방송에 이어 행사가 시작되었다. 개회사,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1절 제창, 순국선열 및 우암 선생에 대한 묵념에 이어,
주요 내빈에 대한 인사소개가 이어졌다. 태영 문단공종회 회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집 발간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패 증정에 많은 박수가 이어졌다. 역자 심경호, 교정감수 우진(안), 재갑(군), 익수(제), 자문 주회(안), 영환(문), 항용(제), 발용(군)에 대한 감사패 수여가 있었다.
이어 문집발간을 총괄해오신 용주 사무총장의 연보낭독 및 문집국역 경과보고가 이어졌다.
이번의 문집국역은 우암 선조님 현양사업의 큰 획을 긋는 사업으로 후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1563년 연경 옥하관에서 돌아가신 이후, ○1590년 화산군에 봉군되시고, 불천위사당에 모셔졌으며, ○시문집(詩文集)으로 가전(家傳)되어 오던 것이 7책이 있었다고 하는데, 왜란과 호란을 겪는 와중에서 대부분 유실되었다고 하고, ○1789년 김래 공과 김득현 공의 주도로 초간본 <우암유집> 7권1책이 간행되었고, ○1790년 문단공에 시호되시고, ○1920년 김연하 공과 김각경 공의 주도로 신도비를 세우고 ○1934년 김문연 공과 김주연 공의 주도로 중간본 <우암집> 6권3책이 간행된 이후
우암집을 소장하고 있거나 열람하고 있는 후손들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한문을 잃어버리는 세대가 되다 보니 쉽게 접할수 없는 실정이 되었으므로, 그동안 후손가에서는 우암집을 번역하여야 한다는 말씀들을 늘 하여 왔고, 그간 몇 차례의 번역을 추진하려 하다가 중단되곤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문단공종회 종의에 따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과감히 추진하여 1년이 넘는 기간동안 혼신을 다하여 문집을 국역하여 간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역시 문중의 오랜 숙원이었던 신도비 개수와 영정 봉안도 함께 완수해 내기도 하였다. 2000년대 초를 살고 있는 문단공 후손들의 위대한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안동김씨 대종회를 비롯하여 교정감수위원, 자문위원, 안동김씨사이버학술연구회 등 전 종인과 여주문화원 등 여주지역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와 지원으로 이루어진 뜻깊은 작업이었다.
또다시 세월이 흐르고 흘러, 후일의 후손들이 2000년대 초의 선조님들을 기억하고 과업을 계승하게 하는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어서 태훈 추진위원장의 기념사,
원용문 여주문화원장님의 축사,
태인 안동김씨 대종회장님의 축사가 따뜻하게 이어졌다.
역자 심경호 교수님의 연설하듯 강의하듯 자신감 넘치는 인사말씀에는 눈과 귀가 솔깃해졌다.
우리나라 한문학사는 물론, 지성사, 철학사에서도 새로이 조명되어야 한다는 평가에 우암 선조님에 대한 존경과 경외감이 더해간다. 우암 김주 선생은 문장뿐만 아니라 경학에도 출중하여, 여러번 주역(周易), 강목(綱目), 서전(書傳) 등을 진강(進講)하셨는데 특히 서전(書傳)에 능통하시었고,
특정한 경전에 전공을 지닌 문신을 일컫는 전경문신에 여러번 오르셨으며, 정유길(鄭惟吉), 민기(閔箕), 심수경(沈守慶 ), 이량(李樑), 이이(李珥), 임수(林洙)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문장양망으로 선발되어 팔문장(八文章)이라 불리셨으며, 임당 정유길(鄭惟吉)과 함께 문형(文衡)에 천거되기도 하셨다. 또한 초서(草書)를 잘 쓰셨다.
케익절단과 기념촬영, 그리고 재택 안렴사공파 회장님의 축하 건배로 행사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이어 준비된 뷔페식사로 점심을 들면서 여기저기 이야기 꽃이 피어난다. 우암집 국역본에 대한 품평회를 겸하여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던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자리도 이어지고.....
버스에 올라 우암 김주 선생의 선영이 있는 백양동으로 이동,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여주군 흥천면 귀백리이다.
이곳 귀백리와 이웃하고 있는 율극리에는 안렴사공파 세거지이고 귀백리에는 병사공(김공석)의 후손과 함께 세거해 내려온 마을이다.
김주 선생 묘역에 도착. 날씨는 화창하고 묘역 주위에는 봄 기운이 가득하다. <국역 우암김주문집> 봉헌 고유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태인 대종회장님 일행은 따로 짬을 내서 이곳 입향조 판교공(김환) 묘소를 비롯하여 선대 선영을 두루 참례를 하고 오셨다.
봉헌 고유제 축문은 묘전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졌다. 90고령이신 우진 님과 안동김씨 홈페이지 창설자 항용 님의 합작으로. 먼저 산신제를 올리고 헌관은 태우(군)
문집 봉헌 고유제를 거행하였다. 초헌관은 태영 문단공회장 아헌관은 태인 대종회장 종헌관은 영환 대종회감사
문단공 재실로 자리를 옮겨 문단공 영정을 친견하고 마련한 다과를 곁들이며 오늘 행사를 마무리했다.
출판사 ‘시간의 물레’ 권호순 사장으로부터 우암집 국역본의 편집 인쇄 과정의 어려움과 보람을 전해 듣고는 모두들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귀경 버스 안에서는 재실에서 챙겨 온 술잔과 안주거리가 몇차례 돌아가면서 버스 뒤쪽에서는 좀 소란스러워졌으나 앞쪽에서는 항용 님의 사회로 또다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암집 국역발간을 총괄해 오신 용주 님은 감사의 뜻을 버스 안에서 큰 절로 대신하시고..... 심경호 교수님의 '척약' 풀이와 기초자료가 많이 모아지면 충렬공 전기소설 집필을 구상하겠다는 말씀에 한차례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제주도 문화재 전문위원이신 익수(제) 님의 충렬공(김방경) 할아버지의 제주도 삼별초 진압과정과 남봉공(김치)의 제주판관시절 남기신 시문에 대한 해설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버스 뒤쪽에서도 조용해졌다. 6시가 다 되어 아침에 출발했던 잠실운동장 맞은편에 도착, 뿌듯함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귀가길에 올랐다.
지하철로, 버스로, 택시로..... 익수 님은 제주행 비행기를 타야 했으므로 공항으로..... 이상 우암 김주선생문집 출판기념회 참석후기를 마칩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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