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2) <호국사> 탐방기 (2005. 8. 5. 안사연 여름캠프시 참배 후기 내용, 항용(제) 촬영 제공) 8.5일(금) - 3일차 ◆10:30~11:10 대천 출발, 호국사 착 다들 피곤했는지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아침을 지어 먹고 10:30분 대천해수욕장을 빠져나와 마지막 답사지 호국사로 향합니다. 이곳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도중에 길을 잃었는데, 성주면사무소의 도움으로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호국사에 대한 설명은 여름캠프 자료집(종합)으로 대신합니다. 호국사 입구는 좁은 길이라 자칫 지나치기 쉽습니다. 입구에 무지개파크가든 간판이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서니 음식점 안마당이 아주 넓습니다. 그 앞에 개량한옥으로 지은 호국사가 있습니다. 민가 형태입니다. 그 뒤에 임란공신을 기리는 각종 비석과 임란공신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좌우에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휘호 ‘조국수호(祖國守護)’비와 ‘진충보국(盡忠報國)’비가, 중앙에 ‘임란선무호성정난 일만구국공신제단(壬亂宣武扈聖靖難 一萬救國功臣祭壇)가 서 있습니다. 이외에 경내에 무명용사충혼비를 비롯해 여러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제단비(祭壇碑) 뒤쪽에 현재 임란공신 수백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일만구국공신제단’이라 한 것으로 보아 10,000분의 위패를 모실 계획인가 봅니다. 호국사를 설립한 고 안병훈 선생의 큰 뜻을 조금이나 짐작케 합니다. 우리 일행은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해 수도 서울에 전각을 짓고 광복절에 개막식을 가져도 좋을 사업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위패는 2뼘×5치×3치(개략 치수) 크기의 오석(烏石)으로 본관과 휘자를 적었습니다. 우리 문중 할아버지로는 충무공(휘 時敏) 할아버지와 충민공(휘 欽) 할아버지 두 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충민공 위패는 제1열 왼쪽에서 46번째, 충민공 위패는 왼쪽에서 49번째에 모셔져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충무공께서는 임란 당시 진주성을 수호하여 왜군이 이순신 장군의 배후를 치는 것을 막음으로써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셨습니다. 당시 충무공께서는 진주성 전투 직후 적병의 유탄에 의해 순국하셨습니다. 충민공께서는 신립 장군과 함께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에 맞서시다 절통하게도 순국하셨습니다. 부족한 병력과 화력으로 장렬히 순국의 길을 택하신 두 분 선조님께 우리 일행은 묵념을 드립니다. 이외에도 제3열 오른쪽에 공신녹권이 커다란 돌판에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 문숙공(휘 제갑) 할아버지 휘자가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우리 문중 할아버지 외에 분적해 나간 성씨 중에서 수안김씨 김난서(金鸞瑞) 공(제1열 왼쪽에서 56번째)과 수성최씨 최희급(崔希伋) 공 및 최희량(崔希亮) 공 위패가 제3열 제7번째와 8번째에 각각 모셔져 있습니다. 수안김씨와는 2003년 제2회 여름캠프 행사로 400년 만의 감격적인 만남을 가진 바 있습니다. 당시 김난서 공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김난서 공의 김건 공께서는 이순신 장군 밑에서 적선을 격파하는 등 큰 공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장차 우리 문중에서 분적해 나간 성씨들 대표가 충렬공 향사에 참여하는 꿈을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큰일을 하시려니 작은 실수가 있었나 봅니다. 충무공 할아버지 위패가 제3열 왼쪽에서 43번째에 또 모셔져 있습니다.
▲호국사 찾아가는 길 △위치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안내 : 보령 시가지 → 성주시청(언덕길) → 성주터널(언덕길 계속) → 터널에서 1km(터널 빠져나오면서 내리막길) → 1km 지점(우 : 초가삼간 음식점, 좌 : 호국사 입구, 좁은 길, 무지개파크가든 간판 있음) △주의 : 내리막길이라 호국사 입구를 찾기 어려움. 언덕을 다 내려가면 3거리임. 이곳에서 U턴해서 다시 조금 올라가야 함. 길을 잃고 다시 찾느라 이곳에서 U턴 가능한지 확인 못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