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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충효열 삼정문>
<충.열.효 삼정문 현액> (2003. 10. 3. 항용 촬영 제공)
* 이 현판은 임란때 원주목사로서 원주 치악산의 영원산성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신 문숙공 김제갑(金悌甲)과 이때 함께 전사한 부인 전주이씨, 아들 참의공 김시백(金時伯)의 충효열(忠孝烈)을 기리기 위해 1711년(숙종 37)에 영의정에 추증된 후 이곳 능촌리에 세워져 있던 정려각 내의 현판을 다시 1787년(정조11)에 만든 것이다.(현판에 ‘上十一年丁未重建’이라 기록되어 있음)
원주의 충렬비(1670. 3. 건립. 생원 鄭錫衡 찬)에 의하면 <~만력 무신년(1608)에 옛 정승 완평(完平-이원익), 백사(白沙-이항복)가 김공이 출생한 마을에 정표문려(旌表門閭)를 세우도록 건의하여 이제 그 마을에 충신 효자 열녀의 정문이 서 있고~>란 기록으로 보아 1608년 이후 능촌리에 정려각이 세워졌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현판이 있었는데, 문숙공께서 1711년(숙종37년) 문숙(文肅)이란 시호와 함께 영의정에 재추증되자 1787년(정조11)에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원판 재질은 적송으로 보관상태도 양호하다. 정려각을 새로 세워 보관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이 현판은 현재 괴산읍 능촌리에 문숙공 14대손인 김성수(金成銖)님이 보관중이다.
<현판 조사내용> (1)조사일 : 2003. 10. 3 (2)조사자 : 김항용, 김상석, 김규문(제) (3)보관처 : 소장처 :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金成銖(문숙공 14대손) 보관중 (연락처 : 011-481-3968) (4)제작연대 : 1787년(정조11). * 1711년(숙종 37)에 문숙공(김제갑)이 영의정에 추증된 후 일차 정려 현판을 받았다가 1787년에 다시 중건된 것으로 보임. 가) 현판의 제작 연대 기록 : <上十一年丁未重建>(1787.정조11)이라 기록 나) 원주의 충렬비(1670.3.원주역전 건립. 생원 鄭錫衡 찬)에 의하면 “만력 무신년(1608)에 옛 정승 完平(이원익), 白沙(이항복)가 김공이 출생한 마을에 정표문려(旌表門閭)를 세우도록 건의하여 이제 그 마을에 충신 효자 열녀의 정문이 서 있고--” 로 보아 1670년 전부터 정려와 현판이 괴산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됨.(현재 그 정려각은 찾지 못함) (5)현판 재질 및 보관상태 : 적송 같으며 현재 보관 상태는 양호함. (6)수량 : 3개 (7)규모(크기) : 3개 각 27Cm×212Cm (8)기록 내용
가) 문숙공 김제갑 정려 현판 : 忠臣 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兼 經筵 弘文館 藝文館 春秋館 觀象監 世子師 行通政大夫 守忠淸道觀察使 兼 兵馬水軍節度使 巡察使 贈諡 文肅 金悌甲之門 上十一年丁未重建 나) 정경부인 전주이씨 정려 현판 : 烈女 贈貞敬夫人 贈領議政文肅公 金悌甲妻 全州李氏之門 다) 참의공 김시백 현판 : 孝子 贈 通政大夫 戶曹參議 金時伯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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