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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옹유고(醒翁遺稿)에서 (2007. 2. 21. 태영(군) 제공)
(1) 寄金都事子中時讓(金時讓穩城) 기김도사자중시양(김시양온성) 細谷新晴 流下水 세곡신청 류하수 涪溪今日 何時過 부계금일 하시과 過時須報 傷離恨 과시수보 상리한 西岸疎籬 第二家 서안소리 제이가
시간을 할애해 준 김도사에게(김도사는 이때 온성에 머물렀다) 막 비 갠 작은 도랑에 물이 흘러 물방울을 일으키는 지금의 저 냇물이 언제 다시 오겠는가. 시간이 지나며 이별의 한을 상처로 남기게 되니 강 서안(西岸)에 가시 울타리를 두 번 치게 되네.
(2) 其二 그이 八月江陵 十五夜 팔월강릉 십오야 韓張宿昔 論詩過 한장숙석 론시과 誰知今日 還多事 수지금일 환다사 不聽君歌 與我歌 불청군가 여아가
그 두 번째 팔월 강 언덕 깊은 밤에 잠자리 짬을 내 지난 일을 헤아리고 시를 읊으며 보냈네. 누구나 잘 알듯 많은 일 하고 오늘 돌아가게 되니 임금이나 내 말에는 귀조차 기울이지 않았네.
(3) 次金子中韻 차김자중운 離騷多小草 今日直爲蕭 이소다소초 금일직위소 獨抱一蘭臭 行經萬歲橋 독포일란취 행경만세교 鍾山看暮暮 暘谷對朝朝 종산간모모 양곡대조조 斗血明初旭 猶堪遺혈廖 두혈명초욱 유감유혈료 문소리 혈
김도사의 심중 따라 헤어지느라 다소 소란한 중에 오늘 붓을 잡으니 올곧음이 곧 쓸쓸함이라 홀로 난을 품고 냄새를 맡으니 보내는 길은 벌써 만세교(萬歲橋)로 가는구나. 잇닿은 연봉을 살피니 어둠 깔리며 계곡은 해 돋는 아침을 대비하고 북두(北斗)에 밝은 빛 드리우니 아침 첫 햇살이 오히려 공허한 문밖의 괴기 한산세를 집어삼키겠구나.
* 주1.만세교; 함흥시 성천강 가에 걸린 조선에서 가장 긴 목조다리로 원산-회령을 연결하게되며, 함흥차사(咸興差使) 고사(古事)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다리에서 낙민루(樂民樓)를 쳐다보는 맛이 특히 아름답고, 다리를 건너면 옥야천리(沃野千里) 함흥평야 경치가 펼쳐진다고 한다.
* 주2. 김덕함 [金德諴, 1562~1636]
본관 상주. 자 경화(景和). 호 성옹(醒翁). 시호 충정(忠貞).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내외직을 거쳐, 임진왜란 때에는 연안(延安)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조달하였으며, 1594년 군공청의 도청(都廳)이 되어 공을 세웠다. 그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광해군 때 군기시정(軍器寺正)을 지냈다. 1617년 이항복(李恒福)과 함께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되고, 명천 ·온성(穩城) ·사천 등지에 이배(移配)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대사성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끝난 뒤 여주목사 ·춘천부사 등을 지내고, 1636년 청백리에 녹선되고 대사헌에 올랐다. 사천의 구계서원(龜溪書院), 온성의 충곡서원(忠谷書院), 안주의 청천사(淸川祠)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성옹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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