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10) 송여해 묘비 (2005. 6.9. 태서(익) 제공)
宋汝諧 墓碑 有明朝鮮國 通訓大夫 安東大都護府使 兼 安東鎭兵馬僉節制使 宋公之墓 淑人 延城李氏之墓 庭左 侯諱汝諧 字虞卿 恩津縣人 考諱順年 禮曹正郞 祖諱繼祀 司憲府持平 曾祖諱愉 虎賁衛司正妣金氏 直提學金孟獻之女 侯性敏而文 旣冠 中司馬試 歲丁酉 以門蔭補叅奉 歷奉事直長 由漢城府叅軍 陞司憲府監察 分司全羅 按事明允 遷刑曺戶曺佐郞 所在擧其職 同列視之爲先輩長者而不敢狎 侯位彌顯務益煩 然猶力學不怠 卒擢甲寅別科第四人 旣拜司憲府持平 遷司諫院獻納 自是聲名藉甚 凡朝廷大事 大臣爭引爲佐 累陞禮曺叅議 階通政 燕山惡直言 誅黜無問久近 侯謫沃川郡 今 上踐位 例除職 猶落通政階不復 物論頗稱屈 會 安東新經廢朝 政殘民瘵 擧侯爲府使 由濟用監正以出 侯務先寬惠 所以爲民除害靡不周 公私按堵 不自知其彫敝之餘也瓜期尙隔五歲 庶幾一境得延其賜 而天道不佑 大命奄至 嗚呼痛哉 侯性平易寬靜 不爲表襮 處昆弟以和 接朋友以信 親戚隣里有窮獨無所歸 撫之若不及 其卒也 哭之者必哀盡焉 夫人 延城府院君李石亨之女 生二男二女 長世忠 次世良 竝進士 世忠娶宗室朱溪君深源之女 生子女 皆幼 世良娶柳承陽之女 生二男一女 曰龜壽麟壽 女幼 女長適別提尹伯齡 生三男 曰溪 餘幼 次適黃世健 生一女 幼 侯之生 壬申十月二十一日 卒在庚午五月十九日 享年五十九 用庚午十二月二十七日 葬懷德縣食藏山之原 光弼纔免幼 娶婦忝同門 承侯之誨 慕侯之德 其叙歷官顚末 非光弼誰任 銘曰 德之厚位之嗇而 而又不壽 何負于天 蒼蒼之不可恃也有是夫 資憲大夫 兵曹判書 兼 同知 經筵事 鄭光弼 □□□□弘文館□校理 知製 敎 經筵侍讀官 春秋館記注官 □文院校理 金希壽 正德 六年 六月 二十八日 立石
【성 명】 송여해(宋汝諧) 【생몰년】 1452(문종 2)∼1510(중종 5) 【본 관】 은진(恩津) 송(宋) 【자·호】 우경(虞卿) 【시 호】 충숙(忠肅)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452(문종 2)∼1510(중종 5). 본관은 은진(恩津)으로 자는 우경(虞卿)이며 예조 정랑 송순년(宋順年)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성품이 민첩하였으며 20세에 이미 문사(文士)가 되었다. 성종 8년(1477)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음직(蔭職)으로 참봉이 되고 봉사 · 직장을 거쳐 한성부 참군 · 사헌부 감찰이 되었고, 형조 · 호조의 좌랑을 지냈다. 14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 사간원 헌납이 되었는데 이로부터 조정의 대사(大事)와 대신들의 쟁론(爭論)을 맡아 그 명성과 칭송이 높았다. 예조 참의가 되었으나 연산군이 직언을 싫어하므로 미움을 사서 옥천에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지내고 안동 부사로 나갔다가 죽었다. 예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 참고 리플 : 宋汝諧는 문온공의 손자인 직제학공(맹헌)의 외손주(父: 宋順年)이며 문익공 鄭光弼(宋順年의 사위)의 처남이다. (2005. 6. 9. 영윤(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