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희수(金希壽)1475(성종6)∼1527(중종22)--(서)

(목록 제목을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1. 유연재공 소개

2. 묘소 사진

3. 주요 시문 소개

 

4. 주요 필적 자료 소개

1) 이가서법

2) 시첩

3) 간이벽온방(簡易벽瘟方)

4) 친필 법첩

5) 이색영정기

6) 동국명필

7) 탁본첩(이가서법)

 

5. 유연재공 친필 각종 비갈 소개

 1) 이인 신도비

 2) 운산군 신도비

 3) 성경온 묘갈

 4) 경기 양주지역(박건,성희안)

 5) 양성지 신도비

 6) 심응 신도비

 7) 홍상 신도비

 8) 정미수 신도비

 9) 소자파 묘비

10) 송여해 묘비

11) 김감 신도비

12) 이손 신도비

13) 정충량 묘갈

14) 안자성 묘갈 *광주지역 미 탁본 묘갈 소개

6. 안사연 탁본대회

1) 유연재공,동고공 묘비 탁본

2) 성희안 신도비 탁본

7. 이가서법 경매 입수기

8. 각종 문헌 자료

 

본문

p11.png 3. 주요 시문

1) 悠然齋 金希壽  

 

江上日多雨 / 강상(江上)에는 종일 많은 비가 내리고

蕭蕭荊楚秋 / 소소(蕭蕭)한 형초(荊楚)의 가을일세

高風下木葉 / 높은 바람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永夜攬貂구 / 긴 밤에 초구(貂 求+衣=貴人之服)를 움켜잡네.

勳業頻看鏡 / 훈업(勳業)을 거울보듯 회상(回想)하고

行藏獨倚樓 / 행장(行藏)은 홀로 누대에 의지하네

時危思報主 / 시위(時危)에 임금에 향한 충성은

衰謝不能休 / 노쇠하야 물러간들 버릴수 없네.

  *주회(안) 종친이 소개한 유연재공의 친필<詩帖>(출전 : 한국미술전집11. <서예> 동화출판사. 임창순 저. 87P)에 대한 번역.

 

2) 金山郡題영二首 (言永) (2003. 10. 25. 태영(군) 제공)

三春堪惜夢中回 / 삼춘(三春)이 몽중(夢中)에 지나감이 심(甚)히 아쉬운데

客路還誇四月來 / 객로(客路)에 도리혀 4월옴을 자랑하네

盡日風薰香擁鼻 / 훈훈한 향풍(香風)은 종일 코밑을 스치고

靑林處處野棠開 / 청림(靑林) 곳곳에는 야당(野棠)이 피었네.

 

南薰化逐使星回 / 훈훈한 남국의 풍화는 사자(使者)를 따라오고

騎竹兒迎刺史來 / 죽마타던 아이는 자사(刺史) 오신다고 맞아주네.

去後甘棠猶戀戀 / 가신뒤 감당(甘棠)의 풍화는 오히려 연연한데

況今香案賦花開 / 하물며 지금 향안(香案)에서 꽃피움을 읊음이랴.

 *감당(甘棠): 주(周)의 감당수하(甘棠樹下)에서 덕화(德化)를 베푼 곳

 

3) 김감사(金監司) 희수(希壽)에 대한 輓詞 (2003. 10. 25. 태영(군)제공)

용재(容齋) 이행(李荇)

往歲城南別 / 지난해 성남에서 이별할 적에

臨分更一口 / 이별 앞서 다시 술한잔 마셨지

歸來未數月 / 돌아온지 몇 달이 채 못되어

奄忽見長辭 / 갑자기 세상 길을 떠나다니

故舊終誰在 / 친구래야 마침내 누가 있느뇨

生涯己可知 / 이내 생애 이미 알수 있겠군

西風吹瀣露 / 서풍이 이슬맺힌 염교에 부니

悽斷不成詞 / 너무도 비통하여 글이 안되누나

 

才名推早歲 / 재명은 어릴적부터 알려졌고

施用適當時 / 세상에 쓰임은 마침 당시였어라

際遇官方達 / 임금의 지우를 입어 관직이 높으니

驅馳病敢辭 / 병든 몸인들 외직을 감히 사양하랴

傳家一子足 / 가업을 전하는 덴 한 아들로 족하고

遺筆四方知 / 남긴 필적은 사방의 사람들 안다네

更爲斯文慟 / 다시금 사문을 위해 통곡 하노니

遊塵鎖墨池 / 먼지가 가득하여 묵지를 가렸어라  

 

*묵지(墨池) : 후한(後漢)의 장지(張芝)와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못(池)가에서 붓글씨 연습을 많이 하여 못(池) 물이 모두 먹빛이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김희수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집의 처량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출전: 容齋集>

 

*이행 李荇 [1478~1534] : 본관 덕수(德水). 자 택지(擇之). 호 용재(容齋)·청학도인(靑鶴道人). 시호 문정(文定). 1495년(연산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校理)에 기용되고, 이듬해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4년 사성(司成)이 되어 지제교(知製敎)를 겸하고 이듬해 대사간과 1517년 대사헌이 되었으나 신진사류의 득세로 중추부첨지사로 좌천되자 사직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趙光祖) 일파가 거세되자 부제학이 되고, 이어 대제학· 공조참판 ·이조판서를 거쳐 1527년 우의정에 올라 대제학을 겸하였다. 1529년 《여지승람(輿地勝覽)》 수찬당상(修撰堂上)이 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찬진(撰進)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어 김안로(金安老)를 논박하다가 중추부판사로 전직되고, 이어 함종(咸從)에 귀양가서 죽었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였다. 후에 신원(伸寃)되고 중종 묘정(廟庭)에 배향, 문헌(文獻)으로 개시(改諡)되었다. 문집에 《용재집(容齋集)》이 있다.

 

4) <영가지(永嘉誌)> 수록 시-관찰사 김희수(金希壽) 시(詩) (2005. 6. 2. 태영(군) 제공)

       출전: 국역(國譯) -영가지(永嘉誌)

망호루(望湖樓)는 10칸으로 객사 동쪽에 있다. 부사 박호겸(朴好謙)과 판관 박암이 지었다.

 

관찰사 김희수(金希壽)의 시(詩)에

石陵巡到思難任 / 안동땅 돌아와도 그리움은 어쩌지 못하고

陶亮千年何處尋 / 도연명 간지 천년 어느곳에 찾을까

喬木尙含住氣老 / 높은 나무는 오히려 아름다운 기운을 품은채 늙어가고

澄江長賴活源深 / 맑은 강은 길이 솟는 샘에 의지하여 깊었더라

 

郊原動色如蘇面 / 들판에 움직이는 빛들은 깨어날 모습 같은데

民物無情未會心 / 백성들은 정이 없어 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幸値高樓新炳熄 / 다행이도 높은 누대에서 새 불꽃을 만났으니

擬將華表獨登臨 / 망주석 처럼 홀로 높은산 오르리라

     

 

 

 

b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