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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대관(大觀). 승지 준원(俊元)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담(湛)이다.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41년 지평(持平)이 되었으며 이듬해 정언(正言)을 거쳐 장령(掌令)·주서(注書)·헌납(獻納)을 역임하고 1755년에 서장관(書狀官)이 되었다. 이듬해 사간(司諫)에 이어 1759년에 승지(承旨), 1760년에 황주목사(黃州牧使),1766년에 회양부사(淮陽府使)가 되었다. 1769년 도승지(都承旨)가 되고 이어 병조참판(兵曹參判)이 되고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卒하였다.
시호(諡號)는 정숙(貞肅)이다.
편저 <선배수간(先輩手柬)>, <간독(簡牘)> 1778년(정조2) 무술보 편찬 서문 찬(戊戌譜 編纂 序文 撰)墓 : 용인시 원삼면 분지촌.配:정부인 昌原黃씨. 配:정부인 竹山安氏
七陽(郡事公) - 塡 - 三老 - 坤 - 允粹 - 謙 - 彦鐸 - 珣 - 俊元 - 樞 - 壽基 - 湛 - 光國
公八次佩符哥君竭忠一朝所推每侍
上和韻詩曰百年鴻渥煥重明此日宸心慕更功
上命賜御筆三十券又特
諭曰勉我中子爲聖爲賢惟在于爾事見祖訓正宗朝遺祀官
李崇運致祭賜送御筆輓章
간독 (簡牘)
조선시대 연산군∼영조 까지 명현들의 서간문을 10여 년 동안 모아 1750년(영조 26)에 병조참판 김광국(金光國)이 편찬한 책.
구분 : 필사본
저자 : 김광국
시대 : 조선시대
소장 : 규장각
필사본이다. 간독은 편지라는 뜻으로 원이름은 《선배수간(先輩手柬)》이다. 본래는 명현들의 서간문을 차례를 정하여 8첩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현재 규장각에는 4첩만이 보존되고 있다. 이는 후에 다시 표구한 것으로 여기 4첩에는 고간찰(古簡札) 71편이 실려 있는데(목록상에는 99편), 이것이 김광국이 편찬한 8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지 또는 없어지고 4첩만남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권두에는 1750년에 김광국 자신이 쓴 소서(小敍)를 붙였다.
제1첩에는 용재(容齋) 이행(李荇)의 서찰을 비롯하여 이황, 성혼, 김성일, 김상용, 한준겸, 이정구, 김유, 심즙, 김상헌, 권필, 장유, 이명한, 한호, 강석기, 오준, 심지원 이조한, 김장생, 원두표, 이경석, 찰유후, 김육, 강백년의 서찰이 순서대로 실려 있다. 서찰 옆에 그의 관등 성명 등 필자의 약전을 실었는데 이 약전은 김광국이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 실린 24명은 대개 유명한 명현과 경상(卿相)들로서 그 서찰의 내용보다는 그들의 필적을 보는데 더욱 가치가 있다. 내용은 대부분 문안·시사에 관한 것으로 보이며 필체는 초서가 대부분이고 행서도 있다.
첫째장 책머리에는 붉은글씨로 서찰 순서에 따라 호와 인명이 실려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26명의 이름이 실려 있는데, 실제로는 정홍익(鄭弘翼) 등 2명의 서찰이 빠져 있다. 제2첩 권두의 목록에는 역시 붉은글씨와 노란글씨로 20명의 이름이 실려 있는데, 실제로는 15명(허목, 이유태, 이유상, 이단하, 박세채, 윤지완, 조사석, 이선, 유상운, 이 , 조지겸, 임영, 윤증, 최석정, 유명천)의 서찰만이 실려 있다. 제3첩에는 23명의 목록이 권두에 실려 있는데, 실제의 서찰은 11편(이인엽, 권중경, 권업, 이인병, 윤두서, 최창대, 이의현, 이만성, 심댁현, 이태좌, 김흥경)만이 있고, 민진원, 윤지인, 이관명, 김유 등의 것은 없다. 그 이외 5명(김신겸, 조도빈, 임방, 이재, 김동필)의 서찰은 제4첩에 실려 있다.
제4첩에는 위의 5명의 서찰이 먼저 실려 있고, 다음 20명의 목록은 잘려진 채로 실려 있다. 20편은 심수현, 오명항, 홍치중, 어유구, 이하곤, 서명균, 김재로, 이진망, 김진상, 조문명, 이덕수, 조관빈, 유척기, 이성룡, 정석오, 송인명, 조현명, 이유, 홍세태, 오원의 것으로 목록과 일치하나 목록이 잘려져서 여기 저기에 붙여 놓았으므로 본래의 서찰 수효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범례에 ‘문이홍, 무이청, 남이황’이라 하여 문관은 붉은글씨, 무관은 푸른글씨, 남대는 노란글씨로 목록에 표시했음을 설명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