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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
忠順衛公諱礩墓碑銘(충순위 휘 질 묘비명)
공(公)의 휘(諱)는 질이요 자(字)는 중임(重任)이시며 본관(本貫)이 안동(安東)으로 신라 경순왕(新羅 敬順王)의 二十三世 손(孫)이며 고려 삼중대광 첨의 세자사 상락군(高麗 三重大匡 僉議 世子師 上洛君)으로 시(諡)가 충렬공(忠烈公)이요 휘(諱)가 방경(方慶)이신 분의 구세소(九世孫)이며 이조 인수부윤 집현전 직제학(李朝 仁壽府尹 集賢殿 直提學)으로휘(諱)가 돈(墩)이신 분의 사세손이고 고(考)의 휘(諱)는 정건(廷建)으로 관(官)이 충순위(忠順衛)이며 비(?) 정부인탐진최씨(貞夫人 耽津崔氏)는 첨사(僉使) 감(?)의 따님이며 조고(祖考)의 휘(諱) 석정(石精)은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묘소는 고다지(古多只) 간좌(艮坐)이고 조비(祖?)는 의인 인천이씨(宜人 仁川李氏)로서 묘소는 쌍봉(雙封)이다.
배위 숙부인 해주오씨(配位 淑夫人 海州吳氏)는 진사(進士) 팽수(彭壽)의 따님으로 묘는 공묘(公墓)의 좌측(左側)에 합장(合葬)하였고 아드님 휘 흥업(興業)은 직장(直長)으로 만력정유(萬曆丁酉)(一五九七)十月十一日에 왜란(倭亂)을 만나 칼을 뽑아들고 힘을 다해 싸우다가 왜병(倭兵)의 괴수에게 살해(殺害)되었는데 묘는 남산동 술좌(南山洞 戌座)이며 손자의 휘는 서봉(瑞鳳)으로 참봉(參奉)인데 부친이 왜적(倭賊)에게 살해(殺害)당하심을 보고 칼을 뽑아들고 적진(敵陣)에 돌입하여 같은 날 피해를 입었고 묘는 부묘(父墓)의 밑이다.
공께서 선산(先山)이 계신 고장에서 타향살이를 하셨으니 이도 역시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유풍이며 충효(忠孝)의 행실(行實)이라> 도향(道鄕)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자랑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선행(善行)의 자취와 아름다운 지략(智略)은 감히 거듭하지 못하는 고로 이에 그 대충대충을 들어서 소목(昭穆)을 기록하고 그 사실만을 모아서 삼가 썼노라.
崇禎紀元後五回甲 丙申十月日(西紀一九五六年)
十二世孫 誠烈 謹記
十二世孫 東鉉 삼가 쓰고 東煥 檢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