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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英祖)51년(1775년)문과, 별시(別試) 병과16(丙科16). 자(字) 경눌(景訥) 호(號) 우헌(偶軒), 미호문인(渼湖文人). 김원행
거주지(居住地) : 죽산(竹山)
부(父) : 김광익(金光翊)
조부(祖父) : 김담(金湛)
증조부(曾祖父) : 김수기(金壽基)
외조부(外祖父) : 박필수(朴弼脩)
처부(妻父) : 어용우(魚用雨)
관직(官職) : 승문정자관지사련원헌납(承文正字官止司練院獻納),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 봉상정(奉常正),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
※ 봉상정(奉常正)은 시호(諡號)를 관장하던 기관으로 옥당의 관직을 역임한 사람만 봉상정에 올랐으나 유일하게 金晦彬만 옥당의 관직을 거치지 않고 奉常正이 되었다.
※ 간찰(簡札) - 옥계미술관 소장
435 金晦彬 - 姜生員 - 친지姜生員에게 보낸 안부서한 - 丙午 2월 - 528?14권
七陽 - 塡 - 三老 - 坤 - 允粹 - 謙 - 彦鐸 - 珣 - 俊元 - 樞 - 壽基 - 湛 - 光翊 - 晦彬 -
※ 미호(渼湖) : 김원행(金元行) [1702~1772] 조선후기학자의 호(號)
본관 안동(安東). 자 백춘(伯春). 호 미호(渼湖) ·운루(雲樓). 시호 문경(文敬). 종조부 김창집(金昌集)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사사(賜死)되고 온 집안이 귀양가게 되자 어머니의 배소(配所)에 따라가 있으면서 《맹자(孟子)》,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의 저서를 탐독하였다. 1754년書筵官에 임명 되었으나 응하지 않았다. 1759년 왕세손(王世孫: 正祖)이 책봉되자 세손의 교육을 위하여 영조英祖)가 그를 불러들였으나 사퇴하고 응하지 않았다. 1761년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 세손유선(諭善)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사양하였다. 문집에 미호집(渼湖集)》규장각도서, 국립중앙도서관소장20권10책이 있다. 그의 사상과 이론은 李珥, 金長生, 宋時烈등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용강서원> <석실서원>에 배향되었다.